[경제석학 인터뷰] 우석진 교수 "한국형 재정준칙, 공무원끼리 만든 말의 성찬"

세종=이민아 기자 2020. 10.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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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불신 기조가 만들어 낸 재정준칙
전반적으로 상당히 이상하고 실망스러워
민간은 혁신에 보상을 원하는데 약하다 생각
혁신 제일 못 하는 공무원이 선수로 뛰어"

"기획재정부가 이달 초 발표한 ‘한국형 재정준칙’은 전문가 손을 많이 거친 결과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각 연구기관의 연구원들과 함께 끈질긴 토론과 논의를 통해 만들지 않고 공무원들끼리 일하다 만든 ‘말의 성찬’일 뿐이다."

재정 전문가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형 재정준칙에 대해 "전반적으로 상당히 이상하고 실망스럽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번 정부 들어 이어지고 있는 ‘전문가를 불신하는 기조’가 맹탕 재정준칙을 탄생시켰다"고 했다. 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 출신인 우 교수는 재정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는 대표적인 소장학자로 평가 받는다.

지난 5일 발표된 한국형 재정준칙은 국가채무비율과 통합재정수지 관리 범위를 각각 국내총생산(GDP) 대비 60%와 -3%로 제시해 재정 운용의 원칙을 세우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발표 직후 ‘맹탕’ ‘고무줄’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준칙 적용 예외 조건이 광범위하고, 재정준칙의 구속력이 너무 느슨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적용 시기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준칙이 2025년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현 정부에서 급증한 재정지출은 규율 대상에서 제외된다.

특히 재정학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부분은 ‘곱하기 산식’이었다. 정부는 국가채무비율 한도인 60%, 통합재정수지 적자 한도인 -3%를 일시적으로 초과해도 서로 곱해서 ‘1 이하’일 경우 준칙을 준수하는 것으로 인정한다고 했는데, 이는 한국형 재정준칙에만 있는 내용이다. 우 교수는 "정부가 이 산식으로 무엇을 이루려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면서 "이 산식으로는 재정의 상태가 어떤 상황인지도 가늠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우 교수는 자신을 ‘재정준칙 도입론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자동차에 비교한다면, 돈을 쓰는 행위인 ‘엑셀’과 함께 ‘브레이크’인 재정준칙을 같이 밟아줘야 적절한 속도 조절이 가능하다"는 그는 국가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재정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지금이 재정준칙을 도입하기에 적기라고 말했다. 그는 "증세하지 않고 채권을 발행해 때우는 방식이 만성화되기 시작하면 나라 살림을 제대로 세울 수 없다"고 우려했다.

-기재부가 발표한 재정준칙이 IMF(국제통화기금)가 재정준칙의 3대 구성 요건으로 지목한 단순성, 강제성, 유연성이라는 잣대에 부합하다고 볼 수 있나.

"우선 우리 재정준칙은 단순하지 않다. 국가채무비율과 통합재정수지 두 개념을 곱셈으로 엮어놨다. 국민들이 봤을때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수학적으로 잘 정의가 된 것도 아니다. 강제성도 부족하다. 구체적인 내용을 시행령에 넣는다고 했는데, 시행령은 행정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준칙을 어겼을 때의 불이익도 명확하지 않다. 다른 나라는 관련 내용을 법으로 정의했다.

도입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유연성은 굉장하다. 국가부채비율 60%, 통합재정수지 -3%를 기준으로 제시했으나, 정작 적용 시기인 5년 뒤엔 아마 이 기준이 각각 80%, -5% 정도로 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새 정권이 시작하는데 국가채무비율 한도에 임박해 이를 지키고자 현상 유지만 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재정준칙 적용 면제 요건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제성 대신 유연성을 택한 것으로 보면 된다. 앞으로 재정준칙 예외조항을 만들때 ‘등’이라는 단어를 넣을 것이냐 말 것이냐가 쟁점이 될 것이다. 상황을 판단할 때 ‘천재지변 등’이라고 ‘등’이 들어가면 기술된 사항 외에도 기재부 판단에 따라 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재정준칙 산식이 국가채무비율과 통합재정수지의 곱셈으로 엮인 것에 대한 의견은. 기재부에서는 두 목표가 적절히 상호 통제되도록 설계한 유연성이 강점이라고 했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이 산식으로 정부가 무엇을 이루려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국가채무비율이 60%면 마지노선이니 위험하다’ 등 명확한 의미가 없다. 정부가 이 곱셈식에서 오른쪽 항의 분모를 ‘△3%’라고 했는데, 양수인지 음수인지 정의내리지 않았다. 만약 음수로 칠 경우 분자인 통합재정수지가 흑자라면 국가채무비율이 어떻게 돼도 1보다 작기 때문에 이 식을 충족한다. 수학적으로 엉망이다."

-최근 정부 정책에서 어떤 것이 한계로 느껴지나.

"내실이 없다. 최근 정부 정책들을 보면 ‘후지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우리는 정책 생산을 매우 잘 하는 국가였다. 외환 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빠른 시간 내 극복한 힘은 양질의 정책을 생산해내는 역량이었다. 그런데 이번 재정준칙만 봐도 ‘말의 성찬’만 있을 뿐이다."

-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나.

"이번 정부 들어 전문가를 불신하는 경향성이 생겼다. 정치권의 힘이 지나치게 커지고, 전문가를 믿지 않는다. 재정준칙도 연구원과 밀접하게 협의해서 만든 게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재정준칙도 보도자료를 보면, 말만 많고 이 산식을 제시한 근거 그리고 이를 적용했을 때의 시나리오 등이 전혀 담겨있지 않다."

-재정준칙 적용을 2025년부터 하도록 하는 게, 현 정부에서는 마음껏 재정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란 비판도 있다.

"이 정부 뿐 아니라 다음 정부까지도 마음껏 재정을 쓸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준칙이다. 2025년까지 국가채무비율 60%까지 재정을 쓸 수 있도록 정당화시켜줬다.

여당이 이런 논리를 못 알아듣고 홍 부총리를 타박하는 것이다. 기재부 안에서도 이 내용에 대해 반대가 많았을 것이다. 재정 관리가 되지 않는 재정준칙이기 때문이다. 지키기 어렵더라도 엄격한 선을 정한 후, 달성하기 어려울 때 조금씩 여지를 주는 식으로 만들어야했다."

-재정 준칙을 두고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재정 여력을 굳이 제한해야 하느냐는 여당의 비판도 있다.

"재정준칙은 향후 정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 필요하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지금 유로화를 엄청나게 찍어대고 있지만, 정상화 계획을 내놨다. 이처럼 정상화 계획을 경고해야 사람들도 마음의 준비를 한다. 정부가 국가채무를 계속 일으키면서 쓰기만 하는 것은 책무성이 떨어진다. 재정학자들은 ‘항구적 지출은 조세로, 일시 지출은 국채로 충당하라’고 얘기한다. 그런 원칙을 미리 확립하지 않으면 때가 와도 못한다."

-재정준칙에 정부가 재정을 쓰는 사업을 담은 법안을 제출하는 경우 구체적인 재원조달 방안을 첨부하도록 하는 규정도 있는데 ‘페이고’ 원칙이 담겼다고 볼 수 있을까.

"국회의 반발을 의식한 정부가 ‘페이고(pay as you go·지출계획을 짤 때 재원 확보안까지 마련하도록한 원칙)’ 원칙이 아니라며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충분히 ‘페이고 원칙’ 수준으로 강화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페이고 원칙이 사실 재정준칙보다 훨씬 강력하다. 지출 증가를 통제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사업 내용만 있고 재원 조달 방법이 없으면 법안 통과가 어려워 지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채무비율이 8%P나 올랐는데.

"처음에는 정부의 저출산 정책 등 확장재정 지출에 대해 좋게 봤다. 정부 고유의 색깔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간 우리나라는 국가가 해야할 것들도 민간을 활용한다는 명목 하에 보조금만 투입해 방기했던 분야가 많다. 어린이집이나 요양병원 등이 대표적이다. 문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이 이를 해소해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실상은 ‘돈을 쓰기만 하고 쓸 돈의 실탄인 세금을 거두지는 못하는 책무성이 떨어지는 정부’라고 생각한다. 가령 근로소득자의 40%는 면세자고, 전체 자영업자의 80%는 소득이 2000만원 이하라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 이들이 정말 1년에 2000만원만 벌까. 탈세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정부가 세금을 내야할 사람들을 제대로 발라내지 못 해 과세 기반이 너무 취약하다. 과세 기반을 확장해 세입 충당과 사업 확장을 함께 해야 정부가 유지될 수 있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재정준칙이란.

"우리 재정준칙은 고령화로 인한 재정지출의 자연증분을 고려해야 한다. 재정준칙에 담긴 국가채무비율 60%, 재정수지 3%는 유럽 기준인데, 유럽은 인구구조가 이미 안정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우리와 맞지 않다. 기재부가 당초 국가채무비율 45-50% 를 얘기했던 것은 ‘60%’를 염두에 둔 것이다. 고령화로 인한 자연 증분이 약 15%P 더해지면 60%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매년 예산을 8~9%대로 증가시키면서 돈을 많이 썼지만 성장률은 크게 떨어지고 있다. 특히 GDP 성장률에 민간의 기여도가 낮은 상황이고 마이너스(-)를 나타낼 때도 있는데,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오히려 민간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구축 효과를 낸 게 아닐까.

"민간 기여도를 살리는 건 기업에 대한 정부 태도다. 민간은 혁신에 보상을 바라는데, 그 보상이 약하다고 보는 것이다. 정부가 다 틀어 쥐고 디지털 뉴딜을 하겠다면서 심판이 아닌 선수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공무원들이 혁신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무원이 제일 못하는 게 아마 혁신일 것이다. 그래서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고용 지표가 맥을 못추는 것이다. 일자리 수를 늘리는 게 지상 과제처럼 제시되는데, 그래봐야 큰 의미 없다. 질이 좋은 일자리가 늘어야 한다. 나쁜 일자리만 수십만개 만들면 뭘 하나."

◇우석진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 학사·석사를 졸업한 후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교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서 전문연구위원으로 일하다, 명지대 사회과학대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응용데이터사이언스 등 계량경제학 분야에 능통해 ‘경제분석을 위한 STATA’라는 저서를 내기도 했다. 한국재정학회 이사로 활동 중인 그는 정부의 재정 정책에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인 소장파 경제학자다. 저서 ‘88만원 세대’를 쓴 경제학자 우석훈 성결대 교수가 친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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