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3' vs '트레일블레이저', "주유를 내셨거늘 제갈량은 왜?"

강희수 2020. 10. 2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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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

[OSEN=강희수 기자] “나는 엄마 친구 아들을 모른다. 한번도 같은 반이 된 적도 없고, 같은 목표를 놓고 경쟁한 적도 없다. 그런데 엄마는 자꾸 엄마 친구 아들 얘기를 한다. 모름지기 전생에 우리는 원수지간이었나 보다.”

르노삼성 ‘XM3’와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가 ‘엄마 친구 아들’의 고뇌를 앓고 있다. 둘은 세그먼트로 보면 서로 맞붙을 상대가 아닌데, 사람들은 자꾸 둘을 비교한다. 양측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은근히 마음이 쓰이는 처지가 됐다.

르노삼성 XM3는 CUV 즉, 크로스오버 유틸리티 차량(Crossover Utility Vehicle)이다. 세단과 SUV의 중간적 존재로 르노삼성에서도 “세단의 안락함과 SUV의 실용성을 겸비한 차”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에 비해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는 콤팩트 SUV다. 차체는 작지만 엄연히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port utility vehicle)이다. SUV의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뛰어난 실용성이다. 

둘의 결정적 차이는 ‘스포츠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험로 주파에 필수적인 사륜구동의 탑재 유무가 두 세그먼트를 판가름한다. 쉐보레는 XM3가 트레일블레이저와 같은 경쟁 모델로 꼽히는 상황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모델이 경쟁자처럼 자주 언급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XM3과 트레일블레이저는 공통적으로 진정한 다운사이징 엔진을 장착한 차량이다. 다운사이징을 표방한 종전의 차량들은 저배기량의 엔진에 터보 장치를 부착한 수준이었다. 배기량이 적어 연료 소모를 줄이면서, 터보 장치를 이용해 그때그때 고출력을 뽑아내도록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운사이징’은 한계가 있었다. 어쩔 수 없는 배기량의 벽이다. 터보 장치가 있다고는 하지만 원하는 출력에 도달하기 위해 ‘터보 래그’를 겪어야 하고, 터보로 뽑아낸 출력도 쥐어짜낸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XM3와 트레일블레이저는 출생부터가 다르다. 업계의 대세인 다운사이징을 위해 독자적으로 개발된 엔진을 심장으로 앉혔다.

르노삼성 XM3.

XM3는 고성능 ‘TCe 260’과 경제적인 ‘1.6 GTe’, 두 가지 가솔린 엔진 라인업으로 출시됐는데 ‘TCe 260’이 바로 주목할 주인공이다. TCe 260은 르노그룹과 다임러가 공동 개발한 신형 4기통 1.3리터 가솔린 직분사 터보 엔진이다. 실린더헤드와 직분사 인젝터를 수직 장착한 델타 실린더 헤드 같은 신기술로 성능과 경제성을 모두 잡았다. 델타 실린더 헤드는 엔진 경량화와 공간 최적화를 가능하게 했다. 

최고출력 152마력, 최대토크 26.0kg.m의 역동적인 성능을 구현하면서도 복합연비가 13.7km/l에 달한다. DCT 명가 독일 게트락(GETRAG)의 7단 습식 듀얼클러치 트랜스미션, 전 트림 기본사양으로 들어앉은 패들 시프트도 매력적이다.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도 두 종류의 엔진 라인업을 갖고 있다. 3기통 1.2리터 가솔린 E-Turbo Prime엔진과 1.35리터 가솔린 E-Turbo 엔진이다. GM은 단순히 배기량을 줄인 수준을 넘는다는 뜻에서 ‘라이트사이징(Rightsizing) 기술’이라고 불렀다. 

경량 알루미늄 소재를 기반으로 중량을 낮추고 터보차저와 초정밀 가변 밸브 타이밍 기술로 불필요한 연료 소모를 줄여 최적의 배기량을 만들어 냈다.

여기서도 ‘1.35리터 가솔린 E-Turbo 엔진’이 주목된다. 최고출력 156마력, 최대토크 24.1kg.m의 성능을 뽑아낸다. E-Turbo 엔진은 상위 모델인 RS, ACTIV 트림의 역동성을 책임진다. 전륜구동 모델은 VT40 무단변속기와 결합해 13.2km/l의 복합연비를 낸다. 사륜구동 모델에는 하이드라매틱 9단 자동변속기가 탑재되는데 Z-링크 리어 서스펜션 시스템과 어울려 오프로드에서도 자유로움을 준다.

주행 중 간단한 온/오프 버튼 조작만으로도 FWD(전륜구동) 모드와 AWD(사륜구동) 모드 사이를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스위처블 AWD(Switchable AWD)' 시스템은 트레일블레이저만의 자랑이다. 트레일블레이저의 AWD 시스템은 불필요한 연료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반적인 AWD와는 달리 FWD 모드 주행 시 프로펠러 샤프트의 동력 전달을 차단해 한층 효율적인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게 한다.

XM3와 트레일블레이저에 장착된 엔진은 ‘무늬만 다운사이징’과는 확연히 달랐다. 성능 좋고 경제적인 콤팩트 차량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택지가 됐다. XM3는 CUV의 특장점을 살려 쿠페형 디자인을 택했다는 것도 구매자들에게 어필했다. 트레일블레이저는 정통 SUV의 속성을 다 갖추고 있으면서 ‘탈디젤’을 실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르노삼성 XM3.

매력적인 신종족들이 시장에 나타났으니 이들이 받아들 성적표에 업계의 관심이 쏠렸다. 트레일블레이저가 1월에, XM3가 2월에 출시됐지만 시장에 물량이 제대로 공급되기 시작한 건 3월부터다.

경쟁 초기엔 XM3가 분위기를 주도했다. 3월 5581대, 4월 6276대, 5월 5008대, 6월 5330대로 강세를 보인 사이, 트레일블레이저는 3월 3187대, 4월 1757대, 5월 956대, 6월 3037대로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런데 7월에 들어서면서 이상 기운이 감지됐다. XM3에 시동꺼짐 결함이 발견됐고, 결국은 리콜조치를 취해야했다. 쿠페형 디자인에 매료됐던 초기 수요도 김이 빠지는 모습이었다. 결국 7월 1909대, 8월 1717대, 9월 1729대로 실적이 급락했다. 

묘하게 트레일블레이저는 상대가 흔들리는 틈을 파고 들었다. 7월 2494대, 8월 1780대, 9월 1593대로 격차를 좁혀나갔다. 

9월까지 총누적 판매량은 XM3가 2만 7550대, 트레일블레이저가 1만 4804대로 차이가 벌어져 있지만 7월 이후 성적표만 보면 XM3가 5355대, 트레일블레이저가 5867대로 트레일블레이저가 오히려 앞서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차박열풍도 트레일블레이저에 유리한 국면으로 작용했다. 사륜구동 없이 오프로드로 나서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XM3와 트레일블레이저, 둘의 경쟁을 지켜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같은 세그먼트가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트렌드가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 지 파악할 수 있다. 둘 중 하나는 죽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콤팩트 세그먼트의 파이 확장을 기대할 수도 있다. 

‘삼국지연의’에서 대륙 통일을 꿈꾸며 건곤일척했던 강동의 주유는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으며 이렇게 탄식했다. “하늘이시여, 이미 주유를 내셨거늘 제갈량은 왜 내셨습니까?”

어떤 차가 주유가 될 지, 제갈량이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엎치락뒤치락 드라마틱한 경쟁을 지켜보는 소비자들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쫄깃하다.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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