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우리 시대의 공과 사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2020. 10. 2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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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훈(訓)을 제시하기 어려운 한자 가운데 하나가 공(公)이다. ‘공변될 공’이라고 새기곤 하지만 ‘공변되다’라는 우리말 어휘 역시 낯설어졌기 때문이다. 공(公)의 자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사사로움(?)을 나누는(八) 것을 가리킨다고 보는 설이 다수이다. 사(私)는 내 것을 구분하는 모양인 ‘?’로 쓰이다가 뒤에 재산을 상징하는 곡식인 ‘禾’를 더했다. <시경> <서경> 등의 경전에서부터 공과 사는 상반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

오늘날처럼 공정성이 많이 거론된 때가 있었을까? 그만큼 공정성의 훼손이 심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연일 언론과 누리소통망을 채우는 소식을 보면 도무지 이 땅에 공정성의 원칙이 있기는 한 걸까 의심될 정도다. 공적 영역에 사적 관계들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와 있는 것도 문제이고, 사적 영역에 공적 권력들이 함부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문제다. 이런 구조에서 온라인 매체들에 공인의 사적 영역들이 무차별적으로 공개됨으로써 공정성의 문제는 더욱 민감하고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공정성은 차별을 극복하고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이다. ‘퍼블릭’이 중요하다고 해서 ‘프라이빗’이 무시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이 두 어휘가 각각 ‘공’과 ‘사’로 번역되면서 약간의 혼선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멸사봉공(滅私奉公)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전통적인 공과 사는 영역보다 가치의 개념이다. 사적 이익을 억제하고 공적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논리에는 여전히 공의(公義)와 사리(私利)의 가치로 양분하는 인식이 깔려 있다.

영역은 구분되어 양립할 수 있지만 가치는 우열과 배제를 야기한다. 공적 영역에서 지켜야 할 옳고 그름이 있고 사적 영역엔 거기에 맞는 옳고 그름이 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사적 영역의 확보를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사회에서 가치로서의 공을 모든 영역에 강요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적잖다. 공인들의 사생활을 불문에 부치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끄집어내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르는 이들의 의도가 과연 공정성을 향하고 있는가는 엄중히 살펴볼 일이다. 대소경중의 균형을 잡고 치우치지 않는 공변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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