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쇳물' 챌린지 이끈 하림 "노래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냐고? 한 번 불러보면 알게 될 것" [커버스토리]

김민아 선임기자 2020. 10. 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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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모두가 ‘중대재해기업 처벌’ 노래하는 그날까지

토요일, 이 기사를 종이신문 혹은 스마트폰이나 PC로 보는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주 5일 근무하는 직장에 다니고, 종사하는 일도 위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기사를 쓰며 떠올린 분들은 조금 다릅니다. 주말에도 일하러 나가거나, 일터에서 위험을 무릅써야 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다치고, 때로는 사랑하는 가족과 영영 이별하기도 합니다.

해마다 약 2400명이 산업재해로 세상을 뜹니다. 2010년 충남 당진의 철강업체에서 김모씨(당시 29세)가 용광로(전기로)에 빠져 숨졌습니다. 2018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에서 김용균씨(당시 24세)가 기계에 끼여 사망했습니다. 올해 4월 경기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로 3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달 8일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김원종씨(48세)가 배송 업무 중 숨졌습니다.

사고가 날 때마다 시민은 분노하지만, 이내 잊곤 합니다. “계층 양극화로 (산재 사고가) 중산층에겐 잘 안 보이고, 피해자들은 사회적 스피커가 없어 그들의 서사가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 “산재는 비정규직, 그중에서도 하청노동자, 업종으로는 제조·건설 분야에 집중됩니다. 정책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과 거리가 먼 이들이지요.”(이상헌 국제노동기구 고용정책국장)

김용균씨가 숨진 태안화력에서 또다시 화물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원청업체와 최고경영자가 처벌받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벌금도 가볍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입니다. 원청기업과 최고경영자의 책임을 명확히 규정해 더 이상의 죽음을 막자는 취지입니다. 법 제정을 요구하는 청원이 최근 10만명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관련 법안은 국회에 회부됐습니다.

10만명의 마음이 모이는 데 거멀못이 된 이가 있습니다. 가수 겸 작곡가 하림(44)은 당진 사고 10주기를 맞아 ‘#그쇳물쓰지마라_함께_노래하기’ 챌린지를 제안했습니다. 추모시 ‘그 쇳물 쓰지 마라’에 곡을 붙이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노래 부르는 영상을 올렸습니다. 그는 “요즘도 일하다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목숨을 잃는다. 일하다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노래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지난 6일 하림을 만났습니다. 자신을 “예술노동자”로 부르는 그는 “음악이 갖는 힘”을 믿습니다.

■산재 추모곡 ‘그 쇳물 쓰지 마라’ 챌린지 제안한 싱어송라이터 하림

하림이 기타 줄을 튕기자 사위가 고요해졌다. 그는 들릴 듯 말 듯 낮은 목소리로 ‘그 쇳물 쓰지 마라’를 읊조렸다. 하림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가장 위험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법”이라 했다. 그 법이 만들어지는 데 음악이 힘이 되기를 바랐다. 지난 6일 서울 시흥동 작업실에서 촬영했다. 권도현 기자
나는 예술노동자이자 소셜테이너…현실 보여주는 노래 쓰고 싶어
음원 대신 라이브 음악의 감정 교류를 위해 ‘그쇳물’ 챌린지 시작
가장 위험한 사람들 구하는 법 통과되면 ‘음악의 힘’이 증명될 것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찰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그 쇳물 쓰지 마라’ 전문)

2010년 9월7일 충남 당진군의 한 철강업체에서 노동자 김모씨(당시 29세)가 용광로(전기로)에 빠져 숨졌다. 김씨는 2층 높이 전기로에서 뚜껑 주변에 낀 쇳조각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주변엔 별다른 안전장치가 없었다. 발을 헛디딘 김씨는 섭씨 1600도가 넘는 쇳물 속으로 추락했다. 청년의 슬픈 죽음을 다룬 기사에 댓글이 달렸다.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추모시였다. 시인은 ‘제페토’라는 필명으로만 알려졌다.

10년이 흐른 2020년 9월 싱어송라이터 하림(44)이 시에 곡을 붙이고 ‘#그쇳물쓰지마라_함께_노래하기’ 챌린지를 제안했다. 고 김용균씨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첫 순서로 참여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 이재명 경기지사, 가수 호란·첼리스트 홍진호·뮤지컬배우 김사랑씨 등이 챌린지에 동참했다. 평범한 시민들의 참여도 이어졌다. ‘그쇳물 챌린지’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국민동의청원에 불을 댕겼다. 청원은 지난달 22일 동의 요건 10만명을 채웠다. 지난 6일 세계 각국의 악기들로 가득한 서울 시흥동 작업실에서 하림의 이야기를 들었다.

- 그쇳물 챌린지는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프로젝트 퀘스천’ 쪽에서 당진 사고 10주기를 맞아 음원을 만들면 좋겠다고 제안해왔어요. 그런데 음원을 내고 싶진 않더라고요. 제가 오랫동안 앨범을 내지 않고, 공연을 주로 해오고 있는데요. 개별적으로 소비되는 음악보다, (공연장에 가서) 함께 즐기고 함께 부르고, 실제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지는 라이브 음악으로 소통하는 것을 더 좋아하거든요. 연주하고 듣는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본질적 감정 교류를 통해 메시지가 전파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계속 의견을 나누다 ‘내가 노래를 불러 퍼뜨릴 테니 함께 불러보자’는 쪽으로 됐어요. 사실 너무 낭만적인 이야기죠. 제가 힘 있는 사람도 아니고 SNS 팔로어가 많은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도 노래를 만들면 친구들이 함께 불러주겠지, 나중에는 (집회) 현장이든 노래교실이든 가서 불러보자 싶어 시작했습니다.”

- 노래를 만들며 어떤 부분에 가장 초점을 뒀나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때 음악가들과 함께 나갔는데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고향의 봄’ ‘과수원길’ 등을 아코디언과 기타로 연주했더니, 흥분한 시위대가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장난하세요?’ 하는 거예요. 노래가 사람들을 달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번 곡을 쓸 때,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담담하게, 쉽게 만들려고 했어요. 많이 불러보고, 좀 어렵다 싶으면 또 고치고… 그 작업이 재미있었어요. 버전도 5~6개를 써봤어요. 윤도현 같은 록 스타일, 김광석 같은 포크 스타일 등등…. 챌린지가 계속되면서 사람들이 각자 편한 방식으로 노래를 바꿔 부르는데요, 기대 이상의 광경입니다.”

- 작업이 끝나갈 무렵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현장에 다녀왔다면서요.

“작업실에서 이렇게 저렇게 불러보다가, 갑자기 구의역에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갔더니 현장이 간직한 기억들이 있잖아요. 심장이 두근두근하더군요. 밤 10시반쯤이었는데, 지하철 기다리는 청년들은 지쳐 보이고, 술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도 보이고…. 그 속에서 이어폰을 꽂고 앉아 (작업 중인 노래를) 들었어요. 이 정도면 됐다, 싶어 집에 돌아와 곡을 완성해서 보냈지요.”

하림은 다른 작업을 할 때도 일상의 현장에 가보는 경우가 많다. 2집 앨범을 내고 반응이 좋지 않았을 때다. ‘내 노래를 들으면 여행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끼고 자신의 노래를 들었다. 여행하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음악이 실제 일상에서 어떤 위안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가사나 곡이 좀 더 쉽게 바뀌는 계기가 됐다. 허기진 퇴근길에 맡게 되는 빵 냄새 같은 ‘구체적 삶’이 등장하게 됐다.

- 챌린지가 호응을 얻을 거라고 기대했습니까.

“예를 들어 지코의 ‘아무 노래’ 챌린지는 참여하면서 그저 즐거우면 되는 거잖아요. 근데 ‘그쇳물’은 참여하면, 세상에 대한 ‘관(觀)’을 커밍아웃하는 행동이 될 수 있어요. 그 행동이 불편할 수도 있고요. 프로젝트 퀘스천 관계자에게 ‘챌린지 어렵겠다’고 했더니 그분도 ‘어렵긴 하네요’ 하더라고요. 그런데 (시작한 지) 며칠 있다가 노동자 사망 사고 뉴스가 전해졌어요. 가까운 지인들한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내가 이런 거 하니까 참여 좀 해라. 그 이후 음악가들이 함께 부르는 영상이 신문지에 불붙듯 화르르 올라와서 마음을 써 댓글도 달고…. 그렇게 1주일을 보냈죠. 그 이후엔 사람들이 알아서 계속 각자의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바에 대한 결과를 사람들로부터 확인받는 기분이에요. 음악을 듣는 방식이 바뀌고, 공연이 온택트·언택트로 바뀌어도 기본적·본질적인 것에는 변함이 없음을 알게 됐습니다. 평소 잘 몰랐던 음악가 동료들이 챌린지에 동참하고 ‘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라는 액션을 취해줬어요. 과거 노래패 했던 분들이 다시 모여 노래하기도 하고, 학생이나 아마추어들이 노래를 자기만의 감성으로 부르는데 꽤 잘 어울려서 좋았습니다.”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민동의청원이 진행 중인 걸 알고 있었나요.

“챌린지를 시작하고 나서 알았습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법 제정을 촉구하며 부르는 걸 보고서 청원 내용을 읽어봤어요. 청원인이 ‘김미숙 어머님’(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란 말을 듣고, 돕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마감이 2주 정도 남았는데 동의인원이 6만~7만명 될 때였어요. 원래 SNS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닌데, 며칠 동안 SNS 중독자처럼 몇 명이 동의했는지 체크하고 또 체크했습니다. 챌린지 영상에 청원과 관련된 댓글도 너덧 개씩 달고요.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9만명인 겁니다. 되겠다, 싶더라고요.”

제페토 시인의 시에 하림이 곡을 붙인 ‘그 쇳물 쓰지 마라’ 악보. 프로젝트 퀘스천 제공

- 산업재해는 계속되지만 대중의 관심은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요즘 들어 이 부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산재 피해자를 ‘돈 벌다 그렇게 됐겠지’ 하고 바라보는 게 원인인 것 같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국경없는 음악회’를 열어왔는데요. ‘어차피 돈 벌러 온 사람들 아냐’라는 반대의견이 많이 달려요. 어차피 돈 벌러 왔으니 무리하게 되고, 그러다 산재 입은 것 아니냐는 거죠. 돈을 노동과 등치시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은 아름다운 일인데, 오로지 돈을 위한 비루한 행위로 전락시킵니다. 비루한 일 하다 죽거나 다쳤으니 네 책임이라는 거죠. 교통사고를 입으면 ‘무고한’ 피해자가 되는데, 산재 피해자는 ‘네 책임’이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지요.”

-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예술노동자’라는 말을 즐겨 씁니다. 예술은 오랜 시간 공부해야 이를 수 있는 아름다움의 경지입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믿기가 쉽지 않아요. 일종의 신앙 같은 거죠. 교회 다니는 사람에게 ‘보이지도 않는 신을 왜 믿는지…’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우리의 모든 상상체계를 부정하는 무식한 소리가 되겠죠. 예술을 노동 개념에 접목시키기 위해 이런 인식을 불식시켜야 했어요.”

하림은 사회적 이슈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의견을 표명해온 뮤지션이다. 세월호 참사 추모곡을 만들었고, 서울 성북동의 이주노동자 무료진료소 라파엘클리닉과 함께 ‘국경없는 음악회’도 계속해왔다. 2018년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왔을 때는 “당신의 삶만 마냥 힘들다 생각한다면 주변을 둘러보세요. 힘든 사람들도 도와줍시다. 약한 사람들을 돕는 모든 마음을 응원합니다”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가 공격을 받기도 했다.

- 한국 사회에서 ‘소셜테이너’로 산다는 건 고단한 일입니다.

“소셜테이너 맞습니다. 사람과 사회에 관심이 있다는 의미에서요. 많은 대중음악가들이 사랑이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대중에게 희망과 환상을 주기 때문이죠. 그런데 가끔은 현실을 보여주는 노래도 필요하거든요. 저는 그런 작업을 할 때 즐겁고 보람 있습니다. 제가 뭔가를 이슈화하려고 한 게 아니라,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것들이 이슈가 됐어요. 예멘 난민 문제 때도 그랬어요. 제집과 작업실이 있는 금천구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삽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진 것뿐이에요. 사람들이 걱정하며 ‘하림아, 안 그러는 게 좋아’ 하는데요. 글쎄요, 왜 안 그래야 하죠?”

- 이번에도 악플에 시달렸다고 들었습니다.

“DM을 통해 악플이 많이 왔어요. 기사에 달리기도 했고요.”

- 어떤 내용이었나요.

“‘기업들이 돈 못 벌면 어디서 돈 벌래?’ ‘누구 하나 죽었다고 난리 치네’ ‘연예인 주제에, 가수 주제에…’ ‘저렇게 노래만 부르다 말걸?’ 그런 악플들 보면 심장이 두근두근 뛰죠. 노래 부른다고 세상이 달라지느냐고 하는데요. 월드뮤직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노래로 세상이 바뀐 사례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음악 자체는 정치적이지 않지만, 음악이 사람의 마음에 불을 지핀 사례는 정말 많습니다. 가난을 잊게 하고, 나라 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나라를 찾게 해주고…. 블루스, 레게, 탱고, 삼바가 다 그런 음악들입니다. 그러니 노래하면 세상이 달라지느냐는 말에 불끈할 수밖에 없어요.”

하림은 자신의 음악을 비난하는 악플에 ‘제 노래 안 불러보셨죠? 한번 불러보세요. 불러보시면 좋아지실 거예요’라고 댓글을 달기도 한다. 예멘 난민 문제로 그의 SNS가 시끄러울 때도 반대의견을 다는 사람들과 1주일간 댓글을 교환하며 소통했다. 세상은 ‘아롱이다롱이’이며 모두의 생각이 똑같을 수 없다고 여긴다.

- 그쇳물 챌린지가 국민동의청원을 견인해낸 걸 보면, 노래가 세상을 ‘아주 조금은’ 바꿨습니다.

“희망을 품고 있어요. 지금 같은 때 하나의 드라마가 만들어진다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가장 위험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법이잖아요. 법안 내용이 너무 많이 수정되지 않고, 다수 시민들이 바라는 내용으로 통과되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음악은 무용해, 힘이 없어,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음악은 중요해, 좋은 거야’라고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부자가 갑질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세상에서, 부자가 아닌 우리들도 권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계기요.”

- ‘국경없는 음악회’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면서 어떤 걸 느낍니까.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못하고 있는데요. 라파엘클리닉에서 열리는 음악회에선 이주민 환자들에게 노래할 기회를 줍니다.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면 같은 나라 사람들이 따라 불러요. 주눅 들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펴지죠. 다른 나라 사람은 박수쳐주고요. 국경없는 음악회를 통해 잠깐이라도 커뮤니티를 이룬 사람들이 친구가 되고 서로 돕기도 합니다. 판타지 같지만 현실이에요. 그쇳물 챌린지를 제안하는, 밑도 끝도 없는 용기를 낸 데는 국경없는 음악회에서 ‘함께 노래함’의 효능을 목격한 게 밑바탕이 돼줬습니다.”

■“음악의 본질적 부분 확인한 기회…음악가로서 또 다른 보람 느껴”

하림은 소셜테이너 이전에 노래하는 사람,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음악에서 위로를 찾고 싶다면 직접 불러보라”며 “노래를 부를 때와 들을 때 우리 마음은 다르게 움직인다”고 했다. 지난 6일 서울 시흥동 작업실에서 하림이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코로나19로 음악가들이 연주할 기회를 잃고 자부심을 잃는 게 걱정
비대면 불가피하지만 어떻게든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방안 연구해야
앨범 위주 활동 벗어나 지역 가리지 않고 ‘공공재’로서의 음악 펼칠 것

그쇳물 챌린지 이후 하림은 신문 문화면보다 사회면에 더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의 본질은 노래하는 사람,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저도 사랑과 낭만을 이야기하고 싶다. 평범한 40대 남자로서 먹고사는 일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한다”고 했다. 2001년 낸 1집 앨범 <다중인격자>에선 R&B·발라드 스타일을 추구했으나, 2004년 2집에선 세계의 다양한 악기를 활용한 음악을 들려줬다. 이후엔 월드뮤직 아티스트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 배낭여행이 변화의 계기가 됐다고 들었습니다.

“1집 이후 아일랜드 여행을 가서 버스커들을 만났어요. 길에서 연주하는 모습이 낭만적으로 보였어요. 2집을 낸 뒤 다시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많은 로컬 음악가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잘 살고 있었어요. 프랑스의 거리음악가들은 꽤 괜찮은 음악을 하더군요. 스페인에선 촛불 하나 켜놓고 플라멩코 연주하고…. 현지에서 배운 새 악기를 갖고 버스킹에 도전했습니다. 독일에선 인종차별을 당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내준 유로화로 푸짐한 저녁을 사 먹은 기억도 있고요. ‘예술노동자’로서의 경험이었죠. 큰돈을 벌려고 대중음악시장에서 일하는 걸 펀드매니저에 비유한다면, 유럽에서의 경험은 전통 농군이라고 할까요. 귀국한 뒤 벼랑 같은 시장에 매달려 있느니, 공부를 좀 더 해보자 싶어 월드뮤직 밴드를 만들고 공연을 했습니다. 그리스, 몽골 등에도 가서 새로운 음악과 악기를 배워왔고요.”

- 시장에서 탈출한 건가요.

“아닙니다. 다만 앨범을 내는 일 같은 게 우선순위에서 밀린 거죠. 방송이나 행사는 회사(미스틱스토리) 스태프와 함께 일하고, 그밖의 월드뮤직 공연은 밴드하고만 다녀요.”

- 화제가 된 KBS 나훈아 콘서트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했습니다.

“15년 전 선생님 앨범에 참여해 하모니카를 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식사를 같이했는데 다정하셨어요. 이후 2006년 MBC 공연에서도 하모니카를 연주했고요. 이번 만남은 14년 만이었죠. 녹음을 하고 인사를 드리는데 ‘이번에도 하림씨한테 신세를 또 졌네…’ 점잖게 말씀하셨어요. 공연 보면서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음악을 전공한 청년이 묻습니다. “음악이 진짜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그 질문을 하고 싶네요.

“음악에서 위로를 찾고 싶다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러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노래를 부를 때와 들을 때 우리 마음은 다르게 움직입니다. 연인에게 프러포즈하기 위해 피아노곡 한 곡 배우는 것도 괜찮습니다. 아기에게 자장가도 불러봐주고요. 어린 시절 들었던 음악을 찾아 다시 들어보는 것도 좋아요. 늙어서 그 노래를 듣고 불러보면 위안이 됩니다.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음악은 즐기는 게 우선입니다.”

- 코로나19 사태로 음악을 비롯한 공연 분야의 타격이 큽니다.

“저는 블루카멜 앙상블, 아프리카 오버랜드 두 팀과 함께 주로 지역문화재단 등이 주관하는 초청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비대면 공연이죠. 횟수는 5분의 1 정도로 줄었어요.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든 사람들이 예술활동을 접하게 해야 합니다. 비대면이 불가피한 측면은 있으나 핵심이 되어선 곤란합니다. 두려움은 당연하지만, 어떻게 하든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 만나야 합니다. 예술인복지재단이나 서울문화재단 등이 공연 이벤트를 만들어 음악가들의 자존심이 무너지지 않고 존재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으면 해요.”

-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뭔가요.

“음악 하는 친구들, 공연기획 하는 친구들을 잃어버릴까봐 걱정돼요. 그들과 함께 연주할 기회가 사라질까봐서요. 음악, 연극, 무용 등 반드시 무대에 서야 하는 예술가들은 돈을 못 버는 것도 문제이지만, 무대에 서지 않아 스스로 자부심을 잃게 된다면 그게 더 큰 문제입니다. 고민에 빠진 후배 뮤지션에게 ‘버텨라. 내년까지 이럴 수도 있다’고 말해요. 그러면 ‘음악 안 할래요’ 합니다. 저는 ‘하지 마. 너희들이 음악을 안 한다고 세상이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음악이 너를 선택하는 거지, 네가 음악을 선택하는 거야?’ 하지요. 사회는 밸런스예요. 어느 한 분야가 무너지면 싱크홀이 발생합니다. 문화예술이 싱크홀이 되면, 공연하는 사람들이 단체로 훅 빠져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희망을 말하자면, 음악의 고고학적 역사가 바퀴벌레보다 좀 덜 될 만큼 오래됐어요. 그런데 유럽에서 제일 오래된 공연장 역사는 200년 정도밖에 안 돼요. 집에서 음악 하던 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겠죠. 어떻게 해서든 다시 무대는 돌아올 거예요.”

- 3집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습니다.

“음악이 앨범 형태로만 소비된다는 생각을 버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오케스트라의 교향곡을 레코드 한 장에 못 넣으니까 나눠서 넣은 게 앨범의 시작이에요. 지금은 한 곡 한 곡씩 발표되는 음원이 더 많죠. 음악가가 좋으면 그 음악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관심을 갖고, 공연에 오고, 그렇게 능동적으로 음악을 즐기면 어떨까요. 제가 하는 공연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서 이뤄집니다. 공공재로서의 음악을 열심히 펼칠 테니 찾아오세요.”

하림은 ‘음악가’를 이렇게 정의했다. “음악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가닿고, 사람들을 어떻게 고양으로 이끌거나 위안을 주는지 같은 본질적 부분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

하림에게 그쇳물 챌린지는 음악의 본질적 부분을 확인하는 기회였다. 그는 “챌린지를 하며 짜릿했다. 노래가 대중적으로 히트했을 때와는 또 다른 음악가로서의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기업에 대한 보복 아닌 ‘산재 사망은 중범죄’ 인식 강화가 목적

지난 8월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산재사망·재난참사 피해자 증언 기자회견’에서 시민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Q&A


국회에 계류 중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은 두 가지다. 지난 6월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과 지난달 국회 국민동의청원에서 10만명의 동의를 받아 국회에 넘어간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 법률안’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둘러싼 쟁점들을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직업환경의학 전문의)와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법 전공)의 조언을 바탕으로 짚어본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입법 목적은

근본적으로는 심각한 산재 사망을 예방하자는 취지다. 미시적으로 보면 두 가지다. 첫째, 기업 최고경영자의 처벌 강화다. 대표이사가 안전에 무관심해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최고경영자의 처벌과 관련한 별도 규정을 두게 된다. 둘째, 기업(법인)에 대한 처벌 강화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보다 벌금 액수를 높이고, 다른 제재도 함께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

현행 산안법으로는 원청 기업이나 최고경영자의 책임을 물을 수 없나

법 규정상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사람이 산안법 위반으로 처벌되려면 그 위반행위를 ‘직접’ 해야 한다고 돼 있다. 대기업 대표가 안전규제 위반 행위를 직접 저지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실제로 말단 안전관리자들만 처벌받고 최고경영자는 법망을 빠져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련 공무원의 경우는 직무유기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공무원이 감독을 소홀히 했다고 직무유기죄가 인정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일종의 보복입법 아닌가

산재 사망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형벌로 해결할 수 있는가, 특정 기업이나 행위자를 엄벌할 경우 카타르시스는 있겠지만 전체 공익에 도움이 되겠는가 등의 반론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법을 도입하는 목적은 모든 기업을 엄벌하자는 게 아니다. ‘산재 사망은 중범죄’라는 인식에 사회적 동의를 받고, 산재 사망의 책임은 말단 직원이 아니라 최고경영자와 기업에 있다는 공감대를 확립하려는 것이다. 양형 강화만이 목적이라면 대법원 양형위원회와 검찰에 각각 양형기준과 구형량을 높이라고 압박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새로운 법 제정을 추진하는 핵심적 이유는, 최종 책임이 최고경영자와 기업에 있음을 분명히 하자는 데 있다.

중대재해 기준은

강은미 의원 대표발의안에선 현행 산안법의 정의를 따른다. 산안법에선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발생한 재해, 부상자 또는 직업병 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재해를 ‘중대재해’로 규정하고 있다. 국민동의청원으로 국회에 회부된 법안에선 “사망 등 재해 정도가 심하거나 다수의 재해자가 발생한 경우로서 다음 각 호(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1명 이상 발생, 부상자 또는 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의 결과를 야기하는 것을 말한다”고 적시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제정될 수 있을까

열쇠는 집권당이 쥐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의 조속 처리” 입장을 밝혔다. 최근 취임 인사차 방문한 김종철 정의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도 “상임위에서 빨리 논의해서 결론 짓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그러나 당론으로 적극 추진할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소속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하면 이를 바탕으로 논의하겠다는 흐름이다.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과 이해충돌방지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개정안 처리에 대한 태도와는 온도차가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산재 예방’의 만능키인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디딤돌이다. 그동안 수사기관(주로 검찰)과 법원은 산재 사망사고를 교통사고와 비슷한 과실범으로 간주해왔다. ‘어떤 기업이나 대표이사가, 자기 회사 노동자가 죽기를 바라겠느냐’는 식의 온정주의가 작동해왔다. 새로운 법이 제정되면 검찰과 법원도 입법 취지에 맞춰 달라져야 한다. 행정부 역할도 중요하다. 영국에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모델인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을 제정했지만, 이 법과 별개로 산업안전감독관의 감독 기능도 산재 예방에 큰 몫을 하고 있다. 노동당 집권기에는 감독관들의 작업개선 조치나 중단 요구 등이 연 3만건에 이르렀다. 보수당이 집권한 현재도 연 1만건 정도나 된다. 한국의 고용노동부도 마음만 먹으면 작업중지명령 등 행정처분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김민아 선임기자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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