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트모던'의 건축가, 헤르조그와 드뫼롱(上)

효효 2020. 10. 1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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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라우펜의 리콜라 창고(Ricola Storage Building. Laufen. 1987) /사진=flickr
[효효 아키텍트-57] 1978년 스위스 바젤에 자크 헤르조그(Jacques Herzog. 1950~)와 피에르 드뫼롱(Pierre de Meuron. 1950~)이 헤르조그 & 드뫼롱(HdM) 건축 사무실을 열었다.

헤르조그와 드뫼롱은 유년 시절부터 친구다. 1950년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난 이들은 스위스 연방공과대학(ETH. Zurich)을 졸업하였다. 장소성과 역사성을 중시하는 이탈리아 거장 알도 로시(Aldo Rossi. 1931~1997)의 가르침을 받았다. 알도 로시는 1971~1975년 ETH에서 건축디자인을 가르쳤다. 지역적·교육적 배경이 같았던 두 사람은 동일한 건축적 사상을 공유하게 됐다.

복수의 오브제들의 '쌓기(stacking)'는 이들의 초기 작품에서부터 실험돼 온 것이다. 스위스 라우펜의 리콜라 창고(Ricola Storage Building. Laufen. 1987)의 외피는 창고 건축의 보편적 방식인 건축 구조에 지탱되는 커튼월이 아니라 석면 시멘트 패널들을 자체 하중에 의존해 수직·수평 반복 배열로 축조해 완성된 것이다. 건축가는 이를 용지 주변의 목재 보관 방식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밝힌다. 목재 패널의 절제된 외관과 이를 구현한 섬세한 디테일이 특징이다.

쌓기 구축에 있어 또 다른 핵심은 단위 요소의 선택이다. 건축이 선택한 재료의 표준 치수와 조합 방식에 의존해 결정된다. 전체 속에서 각 요소들은 독자적 정체성이 부각돼 레디메이드(readymade) 예술과 흡사한 방식으로 '전시'된다.

역사도 이론도 형식도 없이 각 프로젝트의 대지와 기능, 재료에 대해 탐구해서 매번 다른 해답을 창조한다. 초기에는 현대적이면서도 단순한 건축 설계를 주로 하였다. 단순히 표피를 조정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구조와 시공과 형태를 결합해내는 근원적인 건축으로 회귀하려 했다.

건축 재료의 물성을 이용하여 정교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을 반영한 건물의 외면을 만들어 낸다. 이들이 초창기에 지은 건축물들은 최근에 준공한 듯한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건축 재료의 성질을 잘 이용하여 놀라운 외피의 건축물을 설계해낸 것이 성공의 발판이다. 헤르조그와 드뫼롱은 유행처럼 번졌던 건축물 트렌드와 3차원 프로그램에 의존한 자유곡선의 구현에 기대지 않는다. 건축 본연의 속성에 충실한 실용주의 건축을 추구한다.

재료의 형태적인 잠재성을 표현한 미국 캘리포니아 도미누스 와인 저장 창고(Dominus Winery. Yountville. 1998)로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이 건축물은 그냥 긴 박스가 옆으로 누워 있는 단순한 형태다.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벽의 표면이 특이하다. 건물의 벽이 철망 안에 돌이 들어가 있는 재료로 마감되어 있다. 이 '게비온(gabion)'은 토목공사 때 경사지 흙이 무너지지 않을 용도로 쓰는 재료다. 돌은 주변에서 구했다. 철망에 돌을 집어넣을 때 벽의 아래쪽에 작은 돌을 사용하고 위로 갈수록 큰 돌을 넣었다. 작은 돌을 철망에 넣은 밀도가 높은 게비온을 벽의 아래에 위치시켜야 상부벽의 하중을 더 견딜 수 있다. 캘리포니아는 태양광이 강하다. 햇빛이 그 돌 사이를 통해서 안쪽으로 들어온다. 건물의 안쪽 복도에서는 불규칙하면서도 아름다운 빛의 향연이 연출된다.

독일 뒤스부르크 퀴퍼스뮐레 현대 미술관(Museum Kuppersmuhle fur Moderne Kunst. 1999) /사진=wikimedia
독일 뒤스부르크 내항(Innenhafen)은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그 용도가 사실상 효용가치가 줄어들게 되었다. 뒤스부르크 시는 200여 년 전부터 내항 부근의 버려진 건물들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퀴퍼스뮐레 현대 미술관(Museum Kuppersmuhle fur Moderne Kunst. 1999)이다.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제분소 건물을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컬렉터 한스 그로테, 질비아·울리히 슈트리어 부부의 컬렉션 기증으로 조셉 알버스, 게오르그 바젤리츠, 안셀름 키퍼 등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퀴퍼스뮐레 미술관은 헤르조그와 드뫼롱이 국제적으로 호평받은 일련의 미술관 건축 출발의 표준이 된다.

헤어조그와 드뫼롱은 많은 프로젝트에서 레미 조그(Remy Zaugg), 토마스 루프(Thomas Ruff),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Michael Craig-Martin)등 현대 미술가들과 협업한다.

이들이 유명해진 계기는 건축물이 아닌 바젤(Basel) 기차역 부근에 세워진 신호기(Signal Box. 1999)다. 동판에 액체를 넣어 만든 신호기로 물이 차고 빠지는 것으로 신호의 변화를 알 수 있게 만들었다. 물리학의 '패러데이 상자' 원리를 그대로 건물에 적용했다. 건물 내의 각종 신호시설을 외부 전파에서 보호하기 위해 건물 전체를 구리판으로 감쌌다. 발상의 전환으로 신호기 고유의 기능과 더불어 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2000)
본인들은 물론 건축 전문가들은 꼽는 단 하나의 기념비적 작품은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2000)이다. 테이트 모던은 런던을 가로지르는 템스 강변에 위치하며, 세인트 폴 대성당(Saint paul's cathedral·1675~1708)과 마주하고 있다. 테이트 모던과 대성당 사이는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밀레니엄 다리(2000)가 놓여 있다.

테이트 모던의 원래 이름은 뱅크사이드 발전소(Bankside Power station)다. 영국 건축가 길레 길버트 스코트(Giles Gilbert Scott. 1890~1960)가 설계하고 1947~1963년에 건설된 화력발전소였다. 1970년대 유가 파동으로 어려움을 겪은 발전소는 1981년 폐쇄되면서 2000년까지 런던 중심에서 20년 동안이나 기능을 잃고 방치돼 있었다.

1980년대 이후 테이트 재단은 급격히 늘어난 작품들로 인해 고질적인 전시 공간 부족 문제를 안고 있었다. 재단은 새로운 미술관 설계를 위해 국제 공모전을 개최했고, 헤르조그와 드뫼롱 팀이 당선되었다. 이들 설계안은 건축적 가치와 런던의 상징성을 간직한 기존 뱅크사이드 발전소의 모습을 가장 잘 유지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벽돌로 지어진 이 미술관은 길이 152m, 폭 24m, 높이 35m의 직육면체 모양을 하고 있다. 1950년대 지어 근대의 기능주의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곳임을 존중했다. 지난날 연기를 뿜어내던 99m의 높은 굴뚝 윗부분은 반투명 소재를 사용했다. 이 굴뚝은 밤이 되면 단단한 벽돌 건물과는 대조되는 가벼운 투명 박스에서 은은한 빛을 뿜어낸다. 헤르조그와 드뫼롱은 2001년 공동으로 프리츠커상을 받는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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