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전세 찾기' 해법이 안 보인다

송진식·김희진 기자 2020. 10. 1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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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 물량 20~30% 감소..공급부족 지표, 3년 만에 '최고'
새 임대차법 영향..내년 신축 입주 적어 전세난 장기화 전망
물량 늘려도 대출 막혀, 대출 풀면 임대료 상승..정부 '고심'

[경향신문]

서울 마포구 부동산 중개업소에 14일 전세 물량은 거의 보이지 않고 매매 물건 중심으로 게시판이 빽빽하게 채워져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순번 정해 전셋집 보러 다니는 게 드문 일이 아닙니다.”

15일 서울 양천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 물량은 적은데 구하는 사람은 많다 보니 전세가 나오길 대비해서 순서를 정해달라고 세입자분들이 먼저 요청을 한다”며 “1년 단기 전세나 2년 뒤 집주인 실거주 예정 물건 등 예전에 잘 안 나가던 전세도 요즘은 금세 나간다”고 말했다.

가을 이사철에 전세 공급물량이 예년보다 줄면서 전세를 구하는 세입자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새 임대차보호법 시행 등의 여파로 유통되는 전세 물량이 일시적으로 감소하는 ‘유동성 부족’이 초래됐다고 분석한다. 당장 전세 물량을 늘릴 방안이 마땅치 않고, 내년에는 신축 입주물량도 올해보다 적어 전세난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올가을 전세 공급이 평년 대비 20~3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본다. 서울 마포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를 찾는 사람이 예년보다 크게 늘진 않았으나 공급량은 20% 이상 줄었다”면서 “이사철에 전세를 구해 나가고 들어오고 하면서 물건이 돌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병목 현상도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의 한 공인중개사도 “20~30% 이상 전세 물량이 줄면서 학군이나 교통이 좋은 서울 도심은 특히 전세가 거의 없다”며 “새 임대차법이 기존 세입자한텐 좋지만 집을 새로 구하는 세입자들에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단지가 많은 목동이나 강남 지역의 경우 ‘집주인 2년 이상 실거주’ 규제가 생기면서 집주인 실입주로 전세 공급이 줄어들었다.

KB국민은행의 주택가격동향 자료를 보면 전세 수요 대비 공급량을 나타내는 ‘전세수급지수’(100을 넘을수록 공급 부족)가 지난 9월 187.0을 기록해 최근 3년 내 최대 수치를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임대차법 시행을 전세 공급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 동시에 내년에도 전세난이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임대차법 시행으로 계약연장 사례가 많아지면서 유통물량이 줄어든 데 반해 3기 신도시 청약 등으로 전세 수요는 늘면서 엇박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위원은 “1989년 전세를 1년에서 2년으로 늘렸을 당시엔 4개월 정도 지난 뒤 시장이 안정됐지만 지금은 유통물량 자체가 적다는 게 문제”라며 “내년에는 신축 아파트 입주물량도 올해보다 22%가량 줄기 때문에 생각보다 전세난이 길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최근 매매가 상승폭보다 전세가격 인상폭이 더 커지면서 세입자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서울의 경우 내년엔 입주물량이 줄고 보유세 부담 등을 이유로 임대차 수익을 높이려는 임대인들이 늘 것으로 보여 전세가 인상 압박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공급은 효과가 2~3년 뒤에야 나타나기 때문에 단기적인 처방이 되기 어렵다”며 “당분간 임대시장 불안정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남기 부총리는 지난 15일 관계장관회의에서 “새로 전세를 구하시는 분들의 어려움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대책 마련을 예고했지만 정부가 당장 쓸 수 있는 카드는 마땅찮다. 거래세를 완화해 다주택자 매물을 늘린다 해도 대출규제가 강화돼 전세 수요를 매매 수요로 돌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비어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활용하려 해도 전세 수요가 높은 주요 도심엔 물량이 없어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서민 전세대출이나 주거비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오히려 임대료 인상을 자극할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임대차법이 취지는 좋았을지 몰라도 정부가 이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선 안이하고 성급하게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송진식·김희진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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