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첩보원 뺨치는 베트남 선원 2명, 감천항 밀입국 사건

박주영 기자 2020. 10. 1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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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감천항 부두 지하 배수관로로 잠입
만조에 맞춰 배에서 헤엄쳐 이동
맨홀 뚜껑 열고 지상으로 탈출

바닷물 수위가 항구 부두 지하의 빗물 배수관로 높이로 차오를 시간을 맞춰 탈출하고, 지하 배수관로에서 평상복으로 갈아 입은 뒤 항구 밖 도로 맨홀 뚜껑을 열고 위로 올라와 유유히 사라지고….

부산 감천항에 정박 중인 어선의 베트남 선원 2명이 영화 속 첩보원의 행동을 뺨치는 ‘밀입국 작전’에 성공했다가 이틀 만에 당국에 붙잡혔다.

부산출입국·외국인청은 “부산 감천항에서 밀입국해 도주한 베트남인 선원 2명을 9일 검거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 7일 새벽 1시20분쯤 하루 뒤 출항 대기 중이던 부산 감천항 동측 부두의 400t급 원양어선 S호에서 선박 갑판 난간에 묶어 놓은 고무호스를 타고 바닷물 속으로 들어갔다. 배에서 바다로 뛰어 내리면 “첨벙” 소리가 나서 들킬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때는 부산 앞바다가 만조에 가까워 부두 지상에서 1~2m 아래에 나 있는 빗물 배수관로 높이까지 바닷물이 차오르는 시각이었다. 반바지, 반팔 셔츠 등 작업복 차림으로 어선에서 탈출한 이들은 20여분간 헤엄을 쳐 이 빗물 배수관로 입구에 이르렀다.

지난 7일 오전 1시 20분께 출항 대기를 위해 부산 감천항에 정박해 있던 400t급 원양어선 A호에서 베트남 선원 2명이 호스를 타고 선박을 빠져나왔다. 사진은 밀입국한 베트남인 도주 영상/부산출입국외국인청

이들이 헤엄쳐 간 방향은 어선에 설치된 방범TV가 찍히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또 배수관로는 철창살이 소금물에 부식되고 파도에 부딪혀 일부가 휘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개구멍’이 나 있었다. 이 부두의 우수 배수관로는 대개 철창살로 막혀 있어 안팎에서 드나들 수 없도록 돼있다.

이 개구멍으로 들어간 2명은 부두 지하의 배수관로를 따라 200~300m를 나아갔다. 배수관로 지상은 감천항 3부두. 베트남을 비롯,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선원들이 수시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탓에 감시가 삼엄하다. 지하 배수관로를 이용해 이 감시망을 뚫은 것이다.

2명의 베트남 선원이 지상으로 나온 곳은 항구 바깥의 도로. 차로와 인도 사이에 있는 맨홀 뚜껑을 열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이들은 배수관에서 나오기 전에 물에 젖지 않도록 비닐봉지에 싸놓았던 평상복을 꺼내 갈아 입고, 배에서 입고 나온 작업복은 버렸다.

그러나 지상으로 올라와 택시를 잡으려 했으나 워낙 외진 곳이라 실패했다. 도심 쪽으로 1시간 가량을 걸어 나가 겨우 택시를 타고 서구 남부민동 공동어시장에서 미리 연락해 놓은 동향 베트남인을 만났다. 이어 이들 3명은 택시를 타고 경북 경주시로 갔다.

이들 가운데 1명은 경주 감포항에서, 나머지 1명은 경북 영덕항에서 어선에 취업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방범카메라 분석 등으로 추적해온 부산출입국·외국인청 이민특수조사대 수사관들에게 밀입국 2일 만인 지난 9일 체포됐다.

지난 7일 새벽 부산 사하구 감천항에 정박 중이언 원양어선에서 무단 이탈, 밀입국한 베트남인 선원 2명이 부두 지하 빗물 배수관로를 타고 감천항 보안구역을 빠져나와 지상으로 올라온 맨홀. /부산출입국외국인청

이민특수조사대는 “이들 베트남 선원 2명과 조력자인 베트남인 1명 등 3명을 같은 혐의로 붙잡아 조사 중”이라며 “추가 조사를 거쳐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감천항에선 지난 7월에도 정박 중인 선박에서 베트남 선원 4명이 바다로 뛰어내려 헤엄을 치는 방식으로 무단이탈, 밀입국한 뒤 아파트 건설 현장이나 다른 항만에서 취업해 일하다 부산외국인청에 검거됐다.

이민특수조사대 측은 “이번 베트남인 선원 2명의 수법은 지난 7월 밀입국해 2개월 만에 붙잡힌 베트남인 선원 4명이 썼던 것과 동일하다”며 “지난 7월의 4명 중 2명이 이번에 검거된 2명과 동향으로 서로 밀입국 정보를 공유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최인호(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양수산부로부터 제출받은 국감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무역항 보안사고는 인원은 23명(16건)에 이른다. 2018년 10명(8건)에서 2019년 1명(1건)으로 줄어들었다가 2020년 12명(7건)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 보안사고 12명 중 감천항 사례가 9명으로 가장 많다.

이 때문에 “감천항이 지난 6~7월 러시아 선원발 코로나 집단감염 확산의 진원지가 됐던 것 같은 일을 되풀이 하는 온상이 되거나 탈레반 등 국제 테러의 잠입 루트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라며 “실제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지금 대비해야 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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