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올 한해 사회 각 분야의 경제활동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생계는 벼랑끝으로 내몰렸고 기업도 영업이익 감소와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부동산만은 예외. 세계 각국은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도 부동산 폭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세계적인 불황에 주요국은 금리 인하를 단행해 경제에 돈이 돌게 했다. 이는 빠르게 부동산으로 흡수돼 집값 불안을 키우고 있다. 누군가에겐 재테크의 영역이지만 대부분 ‘삶의 수단’인 부동산. 지구촌을 덮친 전염병은 삶의 터전인 부동산을 혼돈 속으로 밀어 넣고 주택 실수요자와 노후 재테크를 준비하는 이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소위 ‘영끌 대출’(영혼을 끌어모을 만큼 무리하게 받은 대출)을 이용해 ‘패닉 바잉’에 나선 실수요자와 자영업 붕괴로 공실 상가가 급증하는 상황에 놓인 투자자들은 언제 경제의 뇌관이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 머니S는 투자자가 재테크의 올바른 기준을 세울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업계 전문가와 학계 교수들에게 설문을 진행했다.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올 한해 지구촌을 삼킨 코로나19 사태가 부동산에 대체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10명 중 6명(60%)은 ‘심각하다’고 했고 ‘매우 심각하다’는 응답자도 1명(10%) 있었다. 코로나19 영향이 ‘적다’고 답한 응답자는 2명(20%)이었고 나머지 1명(10%)은 ‘보통’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올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에 아파트값 전망을 묻는 질문엔 ▲강보합 4명(40%) ▲약보합 3명(30%) ▲보합 2명(20%) ▲하락 1명(10%) 등으로 낙관적인 전망이 많았다.
눈에 띄는 부분은 ‘상승’을 예상한 응답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최근 서울 강남의 일부 고가 아파트값이 신고가를 경신할 정도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지 않는 상황에서 경계할 대목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가장 변동성이 큰 투자시장을 묻는 질문(3개 복수응답)에는 ‘주식’이란 응답이 10개로 가장 많았다. 이어 ‘부동산’과 ‘외환’이 각각 7개, ‘금융상품’과 ‘대체투자’가 각각 2개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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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값 ‘하락’…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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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자 중에 유일하게 아파트값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한 강은현 EH경매연구소 대표는 “거시·실물경제의 침체에도 부동산이 오르는 이유는 풍부한 유동성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며 “코로나19 장기화로 부동산이 꺾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어 “대출 규제로 레버리지 이용이 불가해 반복적인 부동산 구매가 어려워졌다”며 “세금을 인상해 진입 장벽을 높였고 처분해도 양도소득세율이 올라 이익 달성이 힘들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법정 지상권이나 지분 등 특수물건도 보유 자체만으로는 차익 실현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게 강 대표의 설명.
다만 그는 “경매시장에서 남들이 꺼리는 물건은 낙찰가가 낮아서 가격하락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며 “개발 호재가 있는 지역의 토지나 신탁·수탁재산 공매시장도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진입 장벽은 높지만 매입원가가 낮다”고 투자 대안으로 추천했다.
아파트가격 보합을 전망한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임대차3법) 시행으로 전세를 안고 갭투자할 경우 팔기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투자하라”고 경고했다. 그는 “부동산은 이미 충분히 과열된 상태라 공격적인 투자는 매우 위험하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변서경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도 보합을 전망했다. 변 연구원은 “집값 대비 대출 규제장벽이 높고 다주택자를 겨냥한 각종 대책으로 인해 국내 부동산은 투자환경이 나쁜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만약 노후 대비 투자를 한다면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수도권 아파트나 행정수도 이전 이슈가 있는 세종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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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마켓리츠 등 ‘간접투자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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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이 폭락까진 아니지만 사실상 내릴 가능성에 무게를 둬 ‘약보합’을 전망한 응답자도 적지 않았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는 “정부가 주택공급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투기수요를 억제하는 규제를 강화함에 따라 지금 나타나는 집값 상승은 이후 제한적일 것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정흔 감정평가사는 “부동산 투자자는 대출 레버리지가 반드시 필요한데 현재의 한도로 투자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다”며 “월세를 받는 수익형 부동산 역시 임차인 지위가 갈수록 강화돼 임대료 인상이 제한되고 기대수익률이 낮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후 주요상권도 유동인구가 급감하고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는 추세라 소상공인 매출 부진이 상가 임대료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만약 투자를 생각한다면 온라인마켓 확대로 수요가 늘어난 물류창고에 대한 투자리츠 등 간접투자상품이 안전한다고 조 감정평가사는 조언했다.
이창동 밸류맵 리서치팀장 역시 대출 규제를 최대 변수로 꼽았다. 이 팀장은 “과거 투자 패턴과 다르게 대출이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법인도 보유세가 증가해 수익률이 악화되고 언택트(비대면) 문화가 소비시장의 변화를 가속화시켜 1층 상권마저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매시장에 대해선 “경기불황으로 물건이 늘어나지만 대출 규제로 인해 낙찰가율을 하락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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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타이밍… 자산구매 신중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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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이 강보합 상태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 응답자도 자산구매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의견을 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부동산 세금 증가와 매각 시 양도소득세 인상으로 자본이득이 제한된 상황”이라며 “규제지역의 3주택 이상 보유자는 과세 강화 시점인 내년 6월1일 이전에 매각이나 증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대출 제한으로 인해 중저가 아파트의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며 “중형면적 오피스텔은 대출과 세금 및 임대사업 면에서 아파트에 비해 유리하다”고 추천했다.
이용만 한성대 교수는 “부동산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코로나19 자체보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과정에 나타나는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이라고 지목했다. 이 교수는 “정책 불확실성이 부동산 전망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임대차시장의 물량 부족과 그로 인한 임대료 상승으로 주택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민승 모바일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금리와 세후 수익률이 계속 낮아져 경기권 토지와 대출 규제가 없는 지식산업센터가 투자 대안으로 각광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토지의 경우 정부 교통대책으로 도로가 개설되는 지역에 투자자가 몰릴 것이란 게 그의 전망이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지방광역시의 전매제한이 확대돼 분양권 시장이 위축되고 일부 지역은 미분양 발생 위험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