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설명회서 치맥하고, 자소서엔 MBTI 묻고.. MZ세대 '맞춤' 채용공고 쏟아진다

정민하 기자 2020. 10. 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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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MBTI 결과를 입력해 주세요. (예시: ENTJ 대담한 통솔가)"

지난 5일 접수를 마감한 LS전선의 자기소개서에는 다소 파격적인 문항이 실렸다. 기성세대에게는 낯설지만,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열풍을 일으켰던 ‘MBTI’가 그것이다.

성격검사의 일종인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마이어스 브릭스 유형 지표)는 개인의 타고난 심리 경향을 4가지 양극 지표에 따라 분류, 이를 조합해 총 16가지 성격 유형으로 구분한다. 에너지의 방향에 따라 외향형(E)과 내향형(I), 인식 유형에 따라 감각형(S)과 직관형(N), 판단 기능에 따라 사고형(T)과 감정형(F), 생활 양식에 따라 판단형(J)과 인식형(P)으로 나누는 식이다.

이 항목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자기소개서 첫 번째 문항은 ‘본인을 3가지의 해시태그로 표현해본다면? (예시: #○○자격증보유자 #○○네이티브스피커 #운동매니아 등)’이다. 해시태그는 검색을 쉽게 하기 위해 문구 앞에 ‘#’을 붙이는 것으로, MZ세대가 선호하는 소셜미디어(SNS)에서 주로 사용된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채용시장 ‘큰 손’으로 부상하면서 이들을 사로잡기 위한 기업들의 이색 채용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기업들이 기존의 정형화된 구인 형태에서 벗어나 MZ세대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 채용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MZ세대 취업준비생들은 채용공고를 통해 기업 문화와 분위기 등을 파악하고, 해당 기업에 지원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지난 3월 20~39세 남녀 17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취업포털 기업 정보 서비스(67.2%, 복수 응답)와 채용공고(42.4%) 등을 보고 어떤 기업에 지원할지 정한다고 답했다. 채용공고를 비롯해 이에 포함된 전형내용이 취업포털에 올라오기 때문에 사실상 절반이 넘는 취업준비생이 기업 지원 시 채용공고를 중요시하는 셈이다.

이에 MZ세대의 특징이나 유행 등을 적극 반영하는 공고를 내걸고 이들과 소통할 수 있음을 적극 어필하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 제주항공(089590)은 객실 승무원 모집 인원의 20%를 지원서나 자기소개서 대신 90초짜리 동영상을 보고 뽑는다. 일종의 블라인드 채용 형태인 ‘제주캐스팅’ 전형으로, 일반 공채 전형과 달리 동영상에서 ‘OK’를 받으면 곧바로 임원 면접으로 직행한다.

글보다 영상에 익숙한 MZ세대들을 겨냥한 제주항공은 지난 2016년 이 전형을 처음 만든 당시엔 아예 SNS 인스타그램을 통해 접수를 받았다. 스펙과 자기소개서에 드러나지 않는 지원자의 재주와 능력, 열정을 좀 더 세밀하게 파악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전통적인 가치관을 뒤엎는 시도도 있다. 화장품 기업 러쉬코리아는 2016년 첫 공채 전형 중 면접에서 회사의 막내 사원들이 직접 면접관으로 나섰다. 반면 대표와 임원은 최종면접 대신 청소와 안내를 맡았다. 인성과 열정을 평가 기준으로 삼고 대표와 임원이 모든 평가과정에 일절 참여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다음 해에도 이같은 행보는 이어졌다. 2017년 러쉬코리아는 공채에서 경력직을 다수 선발했는데, 보통 기업들의 근무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사이로 제한되던 면접 일정을 바꿨다. 지원자 대부분이 다른 회사에 재직 중임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이에 지원자들은 출근하기 전인 오전 6~7시나 퇴근한 뒤 오후 8~9시에 면접을 볼 수 있었다.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채용 과정에 전면으로 내건 경우도 심심찮게 보인다. 단체급식 및 식음 서비스를 하는 삼성웰스토리는 지난 2018년부터 신입사원 채용 면접에 ‘손 씻기’ 심사를 도입했다. 지원자 전원에게 올바른 손 씻기 방법이 담긴 영상을 보여주고, 실제로 세면대에 가서 손을 씻어보는 과정이다.

삼성웰스토리 관계자는 "위생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기업 철학을 채용 과정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라면서 "점수에 포함돼 당락을 결정 짓진 않지만, 지원자들이 우리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느껴볼 수 있는 체험 기회로 삼고 있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채용공고에 앞서 채용설명회에서부터 이같은 바람이 불고 있다고 말한다. NHN은 지난해 서울의 한 카페를 빌려 진행한 채용설명회에서 취업준비생들이 현직 선배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컴투스(078340)도 루프탑 카페에서 치킨과 맥주를 마시고, 인디밴드의 힐링콘서트 등이 포함된 채용설명회 ‘컴투스 지니어스 겜성(게임과 감성의 합성어) 파티’를 진행했다.

한 인사팀 관계자는 "기존 취업설명회는 대학이나 박람회장 등에서 정장을 입은 인사팀 관계자가 일방적으로 PT를 진행했다면, 요즘은 취업준비생과 직원들이 자유롭게 직무와 채용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즐기는 일종의 ‘파티’ 형식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취업준비생들도 소통을 늘리는 기업들의 행보를 반기는 모양새다. 사기업 취직을 준비하고 있는 양모(26)씨는 "천편일률적인 기존 공고들 사이에서 신선하고 재밌는 채용공고를 발견하면 조직 분위기가 보다 수평적이고 자유로울 것 같아 눈길이 간다"며 "다만 간혹 지나치게 영상 능력 등 스펙을 요구하는 경우 부담이 가기도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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