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밤중에 읽다간 라면 물을 올리고 말걸

2020. 10. 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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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다니던 출판사에서 청소년 문예지 창간 일을 맡았는데, 시화집 <반가워요 팬더댄스> 를 보고 조경규 작가님에게 그림을 청탁하면서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후 2007년 만화잡지 <팝툰> 의 편집기자로 일하면서 <차이니즈 봉봉클럽> 이라는 초유의 중화요리 미식만화의 탄생을 목격했다.

<팝툰> 에는 작가들이 돌아가며 쓰는 '아무거나 베스트 5'라는 꼭지가 있었는데, 그때 조경규 작가님이 고른 '아무거나'는 일본식 서양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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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음식에서 찾은, 경이로운 '사는 맛'
[책&생각] 책이 내게로 왔다

오무라이스 잼잼 11

조경규 지음/송송책방(2020)

2006년 다니던 출판사에서 청소년 문예지 창간 일을 맡았는데, 시화집 <반가워요 팬더댄스>를 보고 조경규 작가님에게 그림을 청탁하면서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후 2007년 만화잡지 <팝툰>의 편집기자로 일하면서 <차이니즈 봉봉클럽>이라는 초유의 중화요리 미식만화의 탄생을 목격했다.

로맨스, 판타지를 탈피해 전문성 있는 만화를 발굴하는 게 당시 잡지의 숙제였다. <팝툰>에는 작가들이 돌아가며 쓰는 ‘아무거나 베스트 5’라는 꼭지가 있었는데, 그때 조경규 작가님이 고른 ‘아무거나’는 일본식 서양요리였다. 돈가스, 고로케, 카스텔라, 카레라이스, 오무라이스가 그 ‘베스트 5’였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음식이지만, 소개 글에서 지식의 깊이와 먹어온 세월과 남다른 애정이 느껴졌다. 이 작가라면 음식을 소재로 재미있는 만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고, 예감은 적중했다. <차이니즈 봉봉클럽>은 고등학생들이 중국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비밀 동아리라는 설정으로, 서울에 실제로 있는 중식당을 소개했다. 작가님, 동료들과 함께 2주에 한 번씩 중화요리 맛집을 찾아다니며 기름지고 행복한 한 시절을 보냈다.

몇 년 후, 일 때문에 가족과 함께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간 작가님은 동갑내기 아내, 딸 은영이, 아들 준영이 네 식구가 ‘먹고사는’ 이야기인 <오무라이스 잼잼> 연재를 시작했다. 다음웹툰에서 1년에 1시즌씩 20화가량 연재하고 이듬해 책을 묶고 있는데, 올해 11권이 나왔다. 12시즌은 절찬 연재중이다. 이제는 흔해진 음식을 소재로 한 만화들의 조상님 격으로, 여전히 이 장르 최고 인기작이다. 나무로 치면 은행나무쯤 되려나.

이 책은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고 하는데, 과장이 아니라 학교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너무 많이 봐서 책이 쪼개졌다는 전화를 여러 번 받았고, 초등학생 자녀가 10독 이상 했다는 제보도 꽤 있다. ‘먹고사는’에서 ‘먹고’가 7할, ‘사는’이 3할 정도 비중인데 이 두 가지를 엮는 솜씨가 기막히다. 아이들 이야기로 시작하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특정 음식의 역사, 조리법을 지나 과학상식까지 아우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훈훈한 마무리. 읽을수록 지식도 늘고 먹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경이로운 일상 음식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모두가 아는 그 맛을 ‘경이로운’ 경지까지 승화시키는 것이 이 작품의 최고 매력이다. <오무라이스 잼잼>을 보고 점심 메뉴를 고른다는 사람도 있고, 밤중에 봤다가 라면 물을 올렸다는 리뷰도 흔하다. 이 책의 담당 편집자였던 후배는 교정을 보다가 가스활명수를 사먹은 적도 있다. 그만큼 음식 그림이 뛰어나고 그림을 뒷받침해주는 스토리텔링도 튼튼하다.

독자로서 내가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작가님과 가족들이 좋아하는 걸 열심히 좋아하며 살아가는 모습이다. 좋아하는 음식, 영화, 음악, 책, 놀이, 동물, 여행지… 좋아하는 것들을 먹고 보고 듣고 읽고 하고 가고 사랑하다보니 좋은 추억이 쌓이고 좋은 취향이 생기고 좋은 인생이 된다. 싫은 걸 싫어하는 걸로 정체성을 쌓아왔던 내겐 이 가족의 삶이 신선한 충격이었고,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은영이 3살부터 연재를 시작했는데, 아이가 중학생이 되는 동안 나도 이 가족과 함께 성장한 것 같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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