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헤일런이 없었다면 마이클 잭슨 'Beat it'도 없어

김고금평 기자 2020. 10. 8. 11: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태핑 주법으로 속주의 새 흐름 선보인 기타리스트 반 헤일런..무대에선 늘 '활짝' 웃는 '흡연가'
기타리스트 반 헤일런(왼쪽)이 마이클 잭슨의 'Beat it' 노래 중간 솔로 부분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춤출 수 있는 댄스 스타일의 곡 ‘비트 잇’(Beat it)에 강렬한 로킹 스타일의 기타 연주를 넣은 건 ‘신의 한수’였다. 마치 서태지가 힙합곡에 헤비메탈 기타 연주를 넣은 파격으로 세상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것처럼.

마이클 잭슨의 명반 ‘스릴러’를 프로듀싱한 퀸시 존스는 ‘Beat it’이라는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추기 위해 당대 최고의 속주 기타리스트 에드워드(에디) 반 헤일런에게 전화를 걸었다. 반 헤일런은 퀸시의 전화를 받고 어린애처럼 좋아하며 기꺼이 참여했다.

예상대로 댄스곡은 심장에 직격탄으로 내리 꽂는 시원한 록 베이스로 다시 태어났다. 단순한 댄스풍으로 나왔다면 한순간 히트하고 끝날을 지도 모를 곡이 1980년대 주류였던 록의 물결을, 그것도 최고 속주 기타리스트의 현란한 기예를 등에 업고 채색되면서 록과 팝 역사에 지울 수 없는 명작으로 길이 남게 됐다.

반 헤일런의 중간 기타 솔로는 그의 전매특허인 태핑(tapping, 오른손으로 찍어 누르는 라이트핸드 주법으로 피크를 이용한 연주보다 더 부드럽고 유연한 연주를 할 수 있다)이 어김없이 사용됐는데, 무대에 오른 자와 무대를 감상하는 자의 혼연일체를 극대화하는 연출 효과로 더할 나위 없었다.

마이클 잭슨도 당시 무대에서 그의 솔로 연주가 나오면 ‘에디, 에디’를 외치며 그의 폭발적인 연주를 응원하기도 했다.

반 헤일런이 없었다면 ‘Beat it’의 인기와 가치도 오랫동안 유지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6일(현지시각) 65세 일기로 사망한 반 헤일런은 기타라는 분야에서 자기 색깔과 독창성을 확보한 선각(先覺) 뮤지션이었다.

그가 선보인 주법 하나하나가 록계의 연주 방식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시작점이었기 때문. 속주를 할 땐 왼손 새끼손가락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태핑을 통해 속주의 흐름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 등을 선보이며 전파한 영향력은 ‘제2의 지미 헨드릭스’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지미 헨드릭스가 음을 밀어 올려 효과를 내는 ‘벤딩’(Bending) 주법으로 블루스 연주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면, 반 헤일런은 태핑이라는 현란한 주법으로 헤비메탈계의 속주 연주에 새 바람을 일으킨 셈이다.

자신의 상징인 줄무늬 기타로 태핑(tapping, 오른손으로 찍어 누르는 라이트핸딩 주법)하는 반 헤일런. /사진=유튜브 캡처


네덜란드 출신의 반 헤일런은 형 알렉스와 밴드 ‘반 헤일런’을 결성하고 1978년 첫 음반을 발표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엔 두 사람의 연주 포지션은 달랐다. 형은 기타, 동생은 드럼을 맡았지만, 서로 바꿔 연주하면서 각자 재능을 비로소 ‘찾기’ 시작했다.

동생의 기타 연주 실력은 출중해 당시 성공가도를 달렸던 밴드 ‘키스’의 리더 진 시몬스가 탐을 낼 정도였다. 진 시몬스는 최근 트위터에 “가슴이 무너진다. 에디는 기타의 신이었을 뿐만 아니라 진정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였다”고 애도했다.

1978년 첫 음반 수록곡 ‘이럽션’(eruption)은 2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곡인데도 그를 세상에 알리는 대표곡이 됐다. 이전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태핑의 향연’을 가감 없이 맛볼 수 있었기 때문. 기타의 라이브 소리를 그대로 싣는 게 ‘뮤지션의 본분’이라고 믿었던 그도 마이클 잭슨의 녹음 기법, 키스로부터 받은 신시사이저 제작 흐름의 영향 등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음반 ‘1984’에 수록된 ‘점프’(Jump)로 나타났다. 신시사이저를 전면에 도입한 구도는 헤비메탈 속주 기타리스트를 사랑한 마니아들에겐 ‘충격’이었지만, 사운드 자체는 ‘미국적 팝’의 향기를 그대로 머금고 1000만장 넘게 팔리는 상업적 결실을 맛봤다.

그는 자신의 연주가 증명하듯 암울한 아티스트는 아니었다. 무대에선 언제나 활짝 웃는 치기 어린 모습으로 팬들을 즐겁게 했다. 그의 상징인 줄무늬 기타를 앞세우며 화려한 기교를 선보이면서도 너트(nut) 바로 옆 6번 줄 아래 공간에 피우던 담배를 끼워 넣는 익숙한 장면으로도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시켰다.

그렇게 오랜 흡연으로 발 헤일런은 혀 일부를 절단하는 등 심각한 건강위기를 겪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비보가 날아들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기타 1프렛(fret)에서 24프렛까지 종횡무진 쓸고 다니는 그의 ‘아름다운 풍경’이 아직 눈앞에 아른거린다.

[관련기사]☞ 스타 남친 침대에서 미모의 여성과 성관계…여자친구의 배신13세 식모, 성폭행 실패하자 기름 부어 전신 70% 화상 입힌 도련님24살 연하 제자와 떠난 아내, 영부인이 된 뒤…잠적한 전 남편은 쓸쓸히 사망[단독] "네가 왜 거기서 나와"…수억 물게 된 전속계약 '1타 강사'강경화 "남편, 말린다고 들을 사람 아냐"…"맞아 내 남편도 그래" 폭풍공감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