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숲 가이드가 발견한 '덩굴식물의 미니온실'

곽노필 2020. 10. 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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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삶의 재미를 자연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해발 고도가 더 높고 기온이 더 낮은 곳일수록 울타리가 두텁게 형성되는 것도 울타리의 미니온실 기능에 확신을 갖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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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장의 잎이 열매를 울타리처럼 감싸
식물학자와 함께 공동연구해 논문 발표
산외의 잎들이 씨앗을 품은 열매를 울타리처럼 감싸안고 있다. 이 울타리는 열매가 잘 자라도록 온실 기능을 한다. 사카이 쇼코 제공/뉴사이언티스에서 인용

은퇴 후 삶의 재미를 자연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숲해설가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숲해설가협회에 따르면 이 제도가 생긴 지 20년만인 2019년 말 현재 숲 해설가는 1만2000여명에 이른다. 숲길을 자주 다니다 보면 평소엔 무심코 지나치던 자연의 미세한 현상까지 눈에 들어올 수 있다. 호기심을 갖고 더 자세히 관찰하면 새로운 자연의 비밀을 알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일본에서 그런 사례가 하나 나왔다.

야마가타현에 거주하는 90세의 숲 가이드가 한해살이 덩굴식물 산외(학명 Schizopepon bryoniifolius)에서 번식을 위한 독특한 구조를 발견해 논문까지 발표하는 결실을 맺었다. 그가 발견한 것은 씨앗을 품은 열매를 여러 장의 잎이 울타리처럼 감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식물학자들과 함께 이 잎 울타리가 열매가 잘 자라도록 따뜻한 온도를 유지해주는 미니온실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나가오카 노부유키라는 이름의 이 노인이 산외에서 특이한 구조를 확인한 것은 2008년 가을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잎 울타리 속에는 한창 자라는 열매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그는 다음해 가을에도 똑같은 현상을 다시 확인했다. 잎 울타리가 우연히 생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이, 호박과 같은 과에 속하는 산외는 동아시아 낙엽수림 가장자리에 서식하는 가느다란 덩굴식물로 흰색 꽃을 피우며, 8~9월에 꽃가루받이를 해 10월에 열매를 맺는다. 각 열매 안에는 한 개의 씨가 들어 있다.

한국의 산외. 국립수목원

_______ 울타리 속 온도가 5도 더 높아...자체 온실 기능 하는 듯

호기심이 발동한 나가오카는 교토대 생태연구소에 이 사실을 알렸다. 연구소의 사카이 쇼코 교수팀은 야마가타현 데와산맥 갓산산의 덩굴식물을 연구하고 있던 중이었다.

연구진은 이 울타리가 미니온실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연구진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온전한 형태의 잎 울타리 속 온도와 잎을 벗겨냈을 때의 온도를 측정해 비교했다. 그 결과 햇빛이 내리쬐는 날 정오의 울타리 내 온도가 섭씨 5도 안팎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또 울타리가 없을 경우엔 지름 1cm 이상으로 자라는 열매 수가 훨씬 적다는 걸 발견했다. 해발 고도가 더 높고 기온이 더 낮은 곳일수록 울타리가 두텁게 형성되는 것도 울타리의 미니온실 기능에 확신을 갖게 해줬다.

교토대 연구진은 산외 잎 울타리의 미니온실 효과를 규명한 내용을 영국의 국제 학술지 `왕립학회보 B' 10월7일치에 발표했다. 이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해 알린 노익장의 나가오카는 당당히 논문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연구진은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 인터뷰에서 “산외의 잎 울타리는 식물이 견디기 어려운 추운 날씨에서도 씨앗을 보호해 번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하는 걸로 보인다"고 밝혔다.연구진은 잎이 만든 울타리는 열매가 서리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역할도 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아직 이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산외가 이런 미니온실을 만드는 유일한 식물은 아니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대황의 일종인 레움 노빌레(Rheum nobile)는 옅은 노란색 잎을 포개서 최대 높이 2미터의 속이 빈 기둥을 만든다. 이 기둥 안쪽 온도는 바깥보다 최대 10도 더 높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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