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버려졌지만 여전히 반짝이는 것을 발굴하는 일"..노벨문학상 수상자 토카르추크 인터뷰

선명수 기자 2020. 10. 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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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다시 돌아온 ‘노벨상의 계절’을 앞두고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올가 토카르추크(58)의 책 두권이 나란히 국내 출간됐다. 토카르추크는 한국 언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세계, 여성 인권과 동물권 등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Karpati&Zarewicz/ZAIKS

“오늘날 우리는 윈도우의 창을 여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고합니다. 머릿 속에서 다양한 사안들이 한꺼번에 창문을 여닫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그 창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애쓰지 않습니다. 실제로 관계의 연결고리들은 엄연히 존재하고, 우리의 정신은 흩어져 있는 개별적 사안들을 얼마든지 연결할 수 있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별자리 소설’을 고안하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발표된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58)는 한국 언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별자리 소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별자리 소설은 노벨상 수상 직후 그에게 맨부커상을 안긴 대표작 <방랑자들> 등에서 선보인 작가 특유의 기법이다. 연대기적 흐름을 거부하고, 단문이나 짤막한 에피소드를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빚어내는 내러티브 방식이다.

추석 연휴 이후 다시 돌아오는 ‘노벨상의 계절’을 앞두고 지난해 수상자 올가 토카르추크의 소설 2편이 나란히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작가가 <방랑자들>을 발표한 지 일 년 만에 내놓은 범죄 스릴러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민음사)와 별자리 소설 <낮의 집, 밤의 집>(민음사)이다. 작가 인터뷰는 출판사 민음사를 통해 진행됐으며, 폴란드어 번역은 최성은 한국외대 폴란드어과 교수가 맡았다.

■인간에 대한 동물의 복수…범죄 스릴러 속 생태주의

“동물이 인간에게 복수를 하고 있어. (…) 이건 그렇게 괴상한 이야기가 아니야. 동물들은 강하고 지혜로워. 그들이 얼마나 영리한지 우리가 모를 뿐이지.”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동물권, 생태주의, 채식주의 등의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온 토카르추크의 신념과 가치관이 오롯이 담긴 작품이다. 2009년 폴란드 실롱스키 바브진 문학상 수상작으로, 지난해 맨부커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로도 올랐다. 2017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아그니에슈카 홀란드 감독의 영화 <흔적(pokot)>으로도 만들어졌다. 토카르추크는 폴란드 출신 거장 홀란드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했다.

한때 교사로 근무하다가 폴란드의 외딴 고원에서 별장 관리인으로 일하는 주인공 ‘두셰이코’ 주변에 어느날 기이한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사망한 피해자들은 모두 동물 사냥과 연관돼 있고, 시신 주변에는 어김없이 사슴 발자국들이 찍혀 있다. 점성학 애호가인 두셰이코는 일련의 살인 사건을 지켜보며 “동물이 복수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라는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의 시구를 읊조리며 불길한 미래를 예감한다.

이 시구는 블레이크의 연작시 <천국과 지옥의 결혼>(1790~1793)중 ‘지옥의 격언’(1793)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소설 제목을 포함해 각 장의 도입부에도 블레이크의 시가 인용돼 있다. 블레이크가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물질적 타락을 비판하며 시를 통해 예언자적 전망을 피력한 생태주의 시인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소설의 제목으로는 다소 긴 이 구절은 출판사 편집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끝까지 제목으로 고수했다고 한다. “너무 아름다운 시구”이며, “무엇보다 이 한 줄의 문장이 바로 작품의 모토이자 메시지이고, 상징이자 메타포이기 때문”이라고 토카르추크는 출간 당시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 있다.

소설에서 두셰이코는 ‘사냥 달력’을 만들어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마을 사람들, 동물 사냥을 옹호하는 가톨릭 교회, 모피를 불법으로 거래하는 농장, 권위적인 경찰 등 불의와 모순으로 가득찬 세력과 맞선다. 토카르추크는 인터뷰에서 두셰이코라는 인물의 탄생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따금 저는 세상에 온갖 불행이 난무한 것을 볼 때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바꾸기에는 우리가 너무나도 무력하다는 것을 실감할 때마다 두셰이코와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주인공 두셰이코는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세상이라는 건, ‘이렇다’라고 단정 지을 수도, 또는 ‘그렇지 않다’라고 부정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압니다. 세상이란 그저 존재할 뿐이니까요. 그렇기에 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세상에 대한 우리 인간의 책무가 막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동물 존엄성 법적으로 보장해야”

짤막한 에피소드를 엮어 곱씹어 읽어야 연결고리가 보이는 ‘별자리 소설’과 달리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이 유지되며 단숨에 읽히는 스릴러다. 하지만 소설 말미 범인의 정체를 핵심 반전으로 설정한 일반적인 스릴러와 달리 이 작품은 사회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하찮은 인물이 자신보다 나약한 존재를 지키기 위해 세상과 맞서는 ‘이야기’ 그 자체에 방점이 찍혀 있다.

토카르추크는 “(소설을 발표한) 2009년 때마침 제게 반년이라는 자유시간이 주어졌고 그래서 뭔가 가벼운 작품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며 “막상 범죄 추리물의 구성을 띤 스릴러류 작품을 써보겠다고 결심하고 나니 장르의 외형적 조건을 충실히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소박한 의도로 시작했지만, 이 책을 쓰면서 저는 작품에 깊이 빨려 들어갔고 한동안 그 속에서 살았습니다. 등장인물을 창조하고, 그들에게 다양한 상황을 부여하면서 이따금 저는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거대한 신화적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작품이 본래 제 스타일에서 그리 많이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Karpati&Zarewicz/ZAIKS

토카르추크는 작품에도 녹아든 자신의 가치관, 동물권에 대한 생각도 분명히 밝혔다.

“더 이상 동물을 물건이나 몸뚱이, 혹은 신경계를 가진 기계적인 대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동물의 권한을 헌법에 명시할 때가 왔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동물을 독립적인 주체로 기본법에 명시함으로써 그들의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동물의 존엄성을 법적으로 인정해줘야 합니다. 또한 육류의 대량 생산을 위해 만들어진 대규모 사육장을 폐지해야 합니다. 그러한 사육장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악몽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잔혹한 행태를 끊임없이 외면하고 부정하는 동안 우리의 내면 또한 파괴되고 황폐화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만나는 ‘별자리 소설’

국내 초역된 <낮의 집, 밤의 집>은 토카르추크가 노벨문학상까지 거머쥐는 결정적 이유가 된 소설 <방랑자들>보다 10년 전에 쓴 작품으로 작가의 서사적 기법 실험의 모태가 된 작품이다. <방랑자들>에 이어 국내 독자들이 만날 수 있는 작가의 또 다른 ‘별자리 소설’이기도 하다.

과거 폴란드와 독일, 구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였던 실롱스크의 작은 도시 ‘노바루다’와 접한 피에트노 마을. 이곳으로 이주한 주인공 ‘나’는 이곳에서 신비로운 인물 ‘마르타’를 만나게 된다. ‘나’는 마르타를 통해 노바루다의 역사와 인물, 콧수염을 지닌 성녀 ‘쿰메르니스’의 전설과 그 성녀의 일대기를 기록한 수도사, 한 다리는 체코 땅에 또 다른 다리는 폴란드 땅에 걸친 채 죽어간 독일인 병사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나’는 마르타와 교류하며 끝없는 이야기의 타래로 빠져든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자 폴란드와 체코 국경지대에 위치한 노바루다는 작가가 매년 여름마다 머무는 집필 공간이라고 한다. 소설의 주요한 키워드는 ‘집’이다. ‘나’에게 집은 낮에는 특별할 것 없는 생활의 공간이지만, 밤에는 서서히 되살아나는 집의 숨소리를 듣게 된다. ‘나’의 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집은 주인공의 내면과도 같다. 집은 마르타의 이야기처럼 낮과 밤이 혼재된 비현실적인 공간이며, 소설 속 노바루다는 현실과 꿈 사이에 멈춰 있는 세상,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장소다. 토카르추크는 “이 작품을 통해 특정한 공간 속에 아로새겨진 개인의 경험에 대해 말하고 싶었고, 그런 경험들을 다양한 관점과 다양한 방식으로 조명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사실적인 방법으로만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경험들은 훨씬 폭넓고 방대해서 그 안에는 언어로는 표현되지 못하는, 불확실하고 이성적인 부분들, 나아가 신비주의에 가까운 요소들도 내포되어 있으니까요. 바로 그런 영역을 탐험하는 것이 문학의 역할 아닐까요?”

작가는 신비로운 소설 속 인물 ‘마르타’가 “<낮의 집, 밤의 집>의 혼(魂)이나 다름없다”고도 했다. “작품의 구상 단계에서 이미 ‘마르타’라는 인물이 제 머릿 속에 떠올랐고, 작품을 쓰는 내내 제게 커다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가끔은 마르타가 제 귀에 대고 이 모든 이야기를 속삭여 주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소설은 버려진 것, 눈에 띄지 않는 것 발굴해 간직하는 일”

토카르추크는 소설 쓰기를 ‘까치의 일’에 비유했다. “언젠가 제가 좋아하는 작가인 필립 딕의 책에서 아름다운 비유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작가는 까치와 같다’고 했습니다. 까치는 쓰레기더미를 뒤지며 그 속에서 장신구나 사탕 포장지 등 온갖 반짝이는 것들을 찾아내어 자신의 둥지로 물고 옵니다. 저는 그 비유가 마음에 듭니다. 왜냐하면 이따금 저도 제가 까치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저는 버려졌지만, 여전히 반짝이는 것, 하지만 다른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을 발굴해서 오랫동안 간직합니다. 그리고 적절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것들로 소설을 엮어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의무와 역할이 많아”져 한동안 작품을 쓰지 못했다는 그는 최근 조금씩 집필을 시작했다고도 밝혔다. 한 번에 여러개의 텍스트를 작업하는 것을 즐긴다는 작가는 세 편의 작품을 동시에 집필하고 있다고 한다. “벌써 수년 전부터 써오고 있고 계속해서 제 곁에 있는 작품들”이라고 했다.

Karpati&Zarewicz/ZAIKS

여성, 인권, 난민문제, 환경오염, 동물학살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해온 그는 노벨문학상 상금 일부로 자신의 이름을 딴 ‘토카르추크 재단’을 설립했다. 폴란드 문화와 예술을 홍보하고, 여성인권과 환경운동 등 그가 고민해오던 문제들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서다. 그는 전 세계 문학계에 영향을 미친 페미니즘에 대해 “제 작품들 속에서 여성들에게 자신의 지위를 되돌려 주고 싶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항상 궁금했어요. 우리의 삶에서 여성의 역할이 너무나도 큰데, 왜 역사에는 여성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걸까. 무엇 때문에 역사는 여성들에 대해서 그처럼 쉽게 잊어버리고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걸까. 역사 교과서에 주로 남성들만 등장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렇다면 여성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저는 제 작품들 속에서 여성들에게 자신의 지위를 되돌려 주고 싶습니다. 여성이 없는 세상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아, 군대나 교회는 예외일 수 있겠네요.”

2006년 한국문학번역원이 주관한 ‘서울국제작가축제’ 참가차 한국을 찾았던 그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벌써 수년 전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의 방문이 지금까지 내내 제 기억 속에 아름답게 간직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계기가 마련되어 여러분께 갈 수 있기를, 그래서 한국 독자분들을 직접 만나 뵐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여러분께 진심을 담아 안부 인사를 전합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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