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돌아온 노정명 "할머니 될 때까지 '연기길' 걷고파"

이혜영 기자 2020. 9. 2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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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한 단계씩 성장해 가는 것이 목표"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걸그룹 출신 배우 노정명이 시사저널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배우 노정명(38)이 돌아왔다. 무려 12년 만의 복귀다. 결혼과 동시에 은퇴를 선언하며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진 그는 일일드라마 조연을 꿰차며 안방극장에 나타났다. 홀연한 퇴장처럼 뜻밖의 복귀였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연예계와 무관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마흔을 목전에 두고 '반전'을 이뤄냈다. 

'경단녀'에서 '배우'로 드라마틱한 변화를 만들어 내면서 노정명의 내면은 한층 단단해졌다. 출산·육아를 통해 '엄마'의 시선으로 바라 본 세상에서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배웠다. 노정명 앞에 놓인 것은 공백이 아닌 다양한 경험과 배움이었던 셈이다. 

그가 기나긴 침묵을 깨고 다시 연기에 도전한 것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10대·20대 땐 알지 못했던, 알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대중과 소통하고 나누는 것이 그의 꿈이자 목표다. 중년을 지나 일흔 넘은 할머니가 돼서 그 목표에 다다르게 될지라도, 지치지 않고 묵묵히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갈 준비를 마쳤다. 

1990년대 우리 사회 트렌드를 이끌던 하이틴 잡지 표지모델 노정명은 이제 없다. 그룹 레드삭스 멤버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노정명도 모두 과거의 일이다. 이제 그 자리엔 지치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인생 동료'들에게 손을 내민 30대 노정명이 서 있다.

걸그룹 출신 배우 노정명이 시사저널과 사진 촬영을 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현재 출연 중인 작품과 역할은

"SBS 아침 일일드라마 《엄마가 바람났다》에서 홍수경 역을 맡고 있다. 기업 홍보팀 직원으로 딸을 키우는 30대 워킹맘으로 출연 중이다. 복귀 후 처음 맡게 된 드라마 캐릭터와 두 아이를 둔 내 상황이 비슷하다. 120부작으로 6개월 동안 달려왔는데 종방을 향해 가고 있다. "

일일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2019년 여성지 《우먼센스》에서 주관하는 케이퀸(K-QUEEN) 콘테스트에 참가했다. 당시만 해도 내 직업은 '배우'가 아닌 '주부'였다. '그래도 난 연예인이었으니깐'하는 마음으로 심사장에 갔는데 점점 고개가 숙여졌다. 당장 미디어에 나와도 손색 없을 것 같은 지원자들이 정말 많았다. 점점 낮아지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하려 참가한 대회였는데, 뒷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다시 바닥으로 내려간 느낌이었나 

"맞다. 주변에서 '어머 연예인이었다는데 그동안 관리도 못했나봐'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외모가 전부는 아니지만, 대중에 보여지는 직업을 가졌던 탓에 그런 평가를 받을까봐 내심 두려웠다. 그런데 실제로 그 상황이 닥치니 심적으로 많은 부담이 됐다."

어떻게 극복했나 

"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케이퀸 콘테스트 참가하기 2년 전부터 대회를 유심히 지켜봤다. 그러나 2년 연속 '이제 내가 뭘 할 수 있겠어'란 생각 끝에 도전을 포기했다. 이번에도 물러서면 정말 끝이라는 간절함과 절박함이 있었다. 다행히 본선에 나갈 기회가 주어졌고, 주변의 시선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왔단 생각이 들었다. 대회까지 남은 두 달여간 정말 노력했다.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하며 '나'를 바꾸고 다듬었다. 덕분에 '열정퀸상'을 받았다. 이후 유튜브 등을 통해 자연스레 다시 미디어와 접촉하게 됐다. 드라마 출연까지 이어지게 돼 더할 수 없이 설레는 날을 보내고 있다."

결혼과 동시에 은퇴를 선언한 이유가 있나

"20대 땐 내 앞에 놓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기 보단 회피하려는 생각이 앞섰다. 어린 시절부터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소속사의 불합리한 요구와 치열한 경쟁 체제에 지쳐 있었던 것 같다. 레드삭스 활동을 하며 한 겨울에도 배꼽이 보이는 티셔츠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공연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여자 연예인에게 노출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부담스러웠다. 그 시기에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아이도 생기면서 나만의 울타리를 꾸리게 돼 연예계와는 멀어지게 됐다."

연예계 생활에서 많은 압박을 받았나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방송에선 드러나지 않는 엄청난 기싸움과 경쟁이 늘 나를 짓눌렀고, 그랬기에 일 자체는 좋았지만 점점 지쳐갔다. 연예인으로 데뷔하고 활동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고, 고마운 것이지만 정작 나는 그걸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대중의 관심을 많이 받을 수록 부담도 함께 커진다는 걸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 경험이 있는데도 복귀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

"나이를 먹고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쌓아 온 경험의 가치를 믿고 있다. 스스로를 관리하고 주변 상황과 조율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예전엔 그 상황을 회피했다면, 이제는 정면돌파를 할 수 있는 내공이 생겼다. 큰 아이가 13살, 둘째가 7살이 되면서  이젠 나를 위한 '무언가'에 더 몰두하고 싶다는 열망도 컸다. 어릴 땐 그저 내가 잘나서 연예인이 되고 가수와 배우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나고보니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 배려 등이 모여서 나라는 사람이 그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단 사실을 알았다. 이젠 겸손한 태도와 자세를 갖추고 기고만장함, 무모함이 아닌 정말 일을 즐기고 제대로 할 수 있는 준비가 됐다고 생각해 복귀를 선택했다."

다시 세상에 나온다는게 쉽진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 결혼생활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행복했다. 지금도 행복하다. 그런데 늘 해결되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나와 함께 하이틴 잡지 모델을 했거나 연예계 생활을 했던 동료 중 누군가는 톱스타가 됐고, 자신의 영역에서 뚜렷한 커리어를 만들어 가는걸 보면서 부러웠다. 우울과 좌절, 포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어느 순간 TV조차 보기 싫어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엄마인 내가 행복하지 않으니 그 영향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그 말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됐다. '주저 앉지 말고 다시 깨고 나가보자. 안 되면 어때.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고, 안 되면 또 시도하면 되지'라는 용기가 생겼고, 더 늦기 전에 그걸 실행으로 옮겼다."

SBS 일일 드라마 《엄마가 바람났다》 촬영 현장에서 노정명이 동료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 노정명 제공

다시 현장에 선 느낌은 어떤가

"매 순간이 벅차 오르고 감사하다. 촬영장 카메라에 불이 들어 오면 첫사랑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운이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 감사한 기회에 보답하는 길은 작품에 누가 되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에 이렇게 겸손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에라도 느껴서 정말 다행이다. 대사를 제대로 외우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민폐인지 부끄럽게도 인기가 많았을 땐 몰랐다. 드라마 한 장면을 찍기 위해 수 십명의 스태프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준비하는지 무지했다. 이제는 한 인간으로서, 연기자로서, 직업인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을 다하며 최선을 다해야 겠다는 각오를 매일 한다."

복귀에 대한 자녀와 가족들 반응은 

"첫째 딸이 얼마 전 '엄마가 이렇게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일을 다시 시작하고 나서 활기 넘치는 표정과 연기를 즐기는 모습에 아이도 만족하고 좋아하는 걸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서로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응원하면서 가족 간 애틋함도 더 깊어졌다고 생각한다. 내 일을 하느라 아이에게 잔소리를 할 시간이 줄어든 점도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엄마들의 고충을 절감했다. 한 번은 육아 공백이 생겨 둘째 아이를 촬영 현장에 데려가게 됐다. 스탭들과 동료 연기자들에게 너무 미안해 걱정했는데 다행히 촬영하는 동안 손이 비는 분들께서 아이를 봐주고 함께 있어 줘서 무사히 고비를 넘겼다.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엄마라는 자리가 주는 책임감의 무게를 뼈저리게 느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위대한 존재이며 소중하다. 힘을 내라는 응원의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차기 작품 계획은

"6개월 간 달려 온《엄마가 바람났다》 촬영이 막바지에 접어 들었다. 종영 이후 다음 작품에 출연하기 위해 오디션을 보며 준비 중이다. 일일 드라마는 대사량이 정말 방대하다. 난 조연이어서 상대적으로 대사가 적었지만, 주연 배우들의 대사량을 보면 존경심이 절로 솟아날 정도였다. 함께 출연하는 박순천 선생님께서 잠시 쉬는 틈에도 대본을 일일이 필사하며 완벽에 완벽을 기하는 모습을 봤다. 그 장면을 보고 다시 한번 의지를 다졌다. 배우 이정은 선배님도 긴 무명 생활을 묵묵히 견뎌내며, 작은 역할에도 요령을 부리지 않는 열정과 성실함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나 역시 묵묵히, 겸손하게, 최선을 다하며,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배우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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