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중 잡초 엉겅퀴가 스코틀랜드 국화라고?

박태해 2020. 9. 19.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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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정원 속 꽃 15가지 소개하며 우리들이 몰랐던 의미 등 이야기
"해바라기 굴광성은 정절의 상징.. 향수의 원료 라벤더는 저항 뜻해"
1873년 클로드 모네의 ‘양귀비 들판’. 오월의 햇살과 어우러진 양귀비꽃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클 제공
꽃은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지만, 자연의 부활과 싱그러운 성장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위태롭게 존재하고, 또 변함없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류의 삶과 문화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생일이나 기념일을 축하하는 선물로, 결혼식에서 신부를 돋보이게 하는 부케로, 죽은 자와 무덤까지 동행하는 화환으로 호출된다. 수많은 예술작품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어느덧 피어 있는 꽃들에서 발견되는 삶의 경이로움을 담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저자 피오나 스태퍼드는 ‘덧없는 꽃의 삶’을 통해 꽃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특유의 유려한 문장으로 직조해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꽃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보여준다. 일상 곳곳에서 생생하게 피어나 우아한 자태로 감탄을 자아내는 15가지 꽃에 관한 이야기이다. 야생에서 혹은 정원에서 피는 이 꽃들은 문학, 신화, 예술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1967년 10월 프랑스 사진작가 마르크 리부가 미국 펜타곤 앞에서 열린 베트남전 반대시위 장면을 찍었다. 꽃무늬 옷을 입은 젊은 여성 얀 로즈 카스미르는 손에 꽃 한 송이를 들고 총검으로 무장한 군인들의 행렬 앞에 버티고 서서 평화를 호소한다. ‘궁극의 대결’로 불리는 이 사진은 총검을 든 이가 오히려 꽃을 무서워하는 장면을 포착함으로써 꽃의 강력한 힘을 보여준다.

‘꽃의 사자’로도 불리는 해바라기는 태양을 향하여 태양이 가장 밝은 방향을 따라 움직인다. 해바라기의 이런 굴광성은 정절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17세기 결혼 초상에서 해바라기는 사랑과 복종의 상징으로 등장했다. 당시 인류 초상화가였던 바르톨로메우스 판 데스 헬스트가 그린 ‘해바라기를 들고 있는 젊은 여자’는 흰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는 한편 왼손으로 해바라기를 높이 들어올린 모습을 보여준다. 많은 씨앗을 약속하는 해바라기는 충실한 복종과 다산을 암시한다. 화병에 담긴 해바라기를 그린 고흐의 연작은 오늘날 그의 그림 가운데 가장 사랑받고 가장 높이 평가되는 작품들이지만, 고흐는 해바라기가 얼마나 빨리 시들어버리는지 잘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고흐는 이 꽃들을 그리는 내내 다급했고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 해바라기 그림을 언급하면서 “그림들이 꽃처럼 시든다”고 슬프게 말하기도 했다.

질긴 생명력을 상징하는 풀이 엉겅퀴다. 잡초 중의 잡초라 불리는 엉겅퀴는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먹은 뒤 땅은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내도록 저주 받았다’고 구약성경에 기록돼 있다. 반면에 끈질긴 생명력 때문에 외침에 시달리던 스코틀랜드인들에게는 사랑받았다. 이 땅을 약탈하려던 바이킹이 엉겅퀴를 밟고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주민들이 깨어나 이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는 전설을 낳으며 스코틀랜드의 나라꽃이 됐다. 스코틀랜드 로열마일에서는 온통 보라색 꽃이 그려진 티타월과 티셔츠, 머그잔, 엽서로 북적인다. 스코틀랜드 ‘국민 시인’ 로버트 번스(1759~1796)는 그의 시에서 보리밭에 엉겅퀴가 퍼져가지만 ‘스코틀랜드의 소중한 상징을 살리기 위해 낫을 치웠다고 자랑스럽게’ 노래했다고 할 정도다.
피오나 스태퍼드/강경이/클/1만5000원
향수와 화장품의 원료로 사용하는 라벤더도 빼놓을 수 없다. 저자는 어떤 날씨에도 색을 유지하고 여러 해 동안 향기를 간직하는 ‘감미로운 라벤더’의 능력 덕택에 라벤더는 세상이 어떤 시련을 퍼붓든 오래도록 굴하지 않는 저항의 상징이 됐다고 설명한다. 화단 가장자리에 어울리거나 더 화려한 꽃들 사이에 녹아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저력을 갖고 있다. 여러 시대에 걸쳐 라벤더는 무척 잘 견디며 적응력 좋은 식물임이 증명됐다. 중세의 구급상자와 엘리자베스1세 시대의 화려한 장식 정원에 등장하기도 했고 우아한 시골 저택의 잔디밭을 가득 채우기도 했으며 20세기 전환기의 편안한 코티지 가든 스타일과 21세기의 흐트러짐 없는 기하학적 조경정원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또 제1차 세계대전 때 시신으로 뒤덮인 격전의 현장 플랑드르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양귀비꽃은 설명할 길 없이 짧은 삶,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죽은 젊은 남자들의 이미지가 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수많은 시인과 화가의 시와 그림에서 때로는 덧없음의 상징으로, 때로는 자연의 부활과 싱그러운 성장을 떠올리게 하는 강렬한 이미지로 꽃들이 소개된다. 책 제목은 저자의 전작 ‘길고 긴 나무의 삶’에 대응하여 지었다. 전작에서 느낄 수 있었던 나무의 숨결과는 또 다른 꽃의 무궁무진한 매력을 담고 있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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