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석의 푸드로지>뜨끈해서 시원.. 투박한 면이 '후루룩'

기자 2020. 9. 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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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칼국수 ‘닭칼국수’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 전국의 칼국수 맛집

바지락으로 닭냄새 잡은 칼국수

매콤하게 찬 김치와 잘 어울려

삶은 면 찬물에 헹궈 얼음까지

영일분식 칼비빔 씹는 맛 일품

달걀 풀어 고소한 전주 베테랑

어죽을 육수로 대전 황해식당

아침저녁 찬바람이 솔솔 분다. 축축하고 뜨거워 잠시 멀리했던 칼국수가 불현듯 떠오르는 가을의 문턱이다. 6·25전쟁 이후 밀가루가 대량 공급되면서 저렴한 가격에 팔 수 있는 다양한 국수 메뉴가 탄생했다. 보통은 칼국수다. 제면 방식으로 보자면 서우궁멘(手工面)인데 제면기가 귀했던 까닭이다. 직접 반죽을 밀어 만드니 공장 소면보다 싸고 푸짐해 인기가 높았다. 국물은 지역마다 구하기 쉬운 재료를 썼다. 멸치·디포리 등 말린 생선육수가 가장 널리 퍼진 방식이며, 소고기·닭고기 등 육류 육수, 심지어 맹물에 장(醬)을 풀어 먹는 방식도 생겨났다.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칼국숫집 몇 군데를 소개한다.

◇일산칼국수 = 닭칼국수의 명가다. 일산 신도시가 생겨나기 전부터 지역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다.

진한 닭육수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는 바지락을 만났기 때문이다. 싱싱한 바지락이 감칠맛을 더하고 닭비린내를 날려버린다. 대파만 썰어 올린 국물이, 아래에 도사리고 있는 면발만 제외하면 딱 닭곰탕 비주얼이다. 면은 가늘지 않은 편이지만 그럭저럭 얇아 잘도 넘어간다. 찢어놓은 고깃덩이도 젓가락에 잘 잡히니 면발을 잡아 한 번에 한 점씩 후루룩 빨아들이면 그만이다. 양도 꽤 된다.

맵싸한 겉절이 김치가 압권이다. 양념장을 넣지 않고 후추만 뿌려 김치와 함께 먹으면 도저히 젓가락이 쉴 틈이 없다. 구수한 국물맛과 매콤한 김치맛, 뜨겁고 차가운 대비가 오락가락하니 입안이 심심할 틈이 없다. 오래 기다려야 하니 더 맛있기도 하겠다. 고양시 일산동구 경의로 467. 닭칼국수 8000원.

◇혜화칼국수 = 무려 40년이 넘었다. 대통령 맛집으로 이름난 곳. 서울 시내에서 안동식 건진국시를 표방한 집이다.

혜화로터리 인근 언덕에 혜화칼국수가 있는데 바깥에는 칼국수라 써놨다. 주변에 비슷한 스타일의 국수를 내는 집이 많다. 설렁탕을 고아내듯 사골과 양지를 오래 고아 진한 육수를 낸 뒤 바지락과 백합조개 등으로 맛을 더한다. 여느 칼국숫집과 달리 면이 세세하면서도 매끈매끈해 고급스럽다. 가느다라면서도 굵기가 일정하다. 고소한 곰국물에 부드러운 면이 들어가니 한 사발을 싹 비워도 속이 편하다. 유명 곰국집의 밀가루 버전이다.

반주 삼아 낮술 한잔하는 사람도 많다. 안주가 하나하나 입맛을 다시게 한다. 양지수육, 바싹불고기, 녹두빈대떡 등 고르기가 망설여진다. 한국식 ‘피시앤드칩스’라 할 만한 생선튀김도 맛이 좋다.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35길 13. 국시 9000원, 생선튀김 1만6000원.

◇영일분식 =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 뒤편에서 칼국수 하나로 이름을 떨친 곳. 특히 여름이면 졸깃한 수제면에 칼칼한 양념을 얹어 비벼낸 ‘칼비빔’이 인기다. 어찌 알고 찾아왔는지 철공소 골목에 작업복이 아닌 차림의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오전 11시 30분부터다.

메뉴는 단출하다. 조개와 멸치를 넣고 시원하게 끓여낸 칼국수, 그리고 면을 삶자마자 소쿠리에 찬물로 헹궈 매콤 달달한 양념과 채소를 함께 비벼 먹는 칼비빔(이 두 가지는 칼국수 대신 소면으로 해주기도 한다). 여기다 곁들여 먹는 메밀만두가 끝이다. 입맛 확 살리는 시원한 국물과 양념, 푸짐한 양에다 가격까지 저렴해 모든 메뉴가 인기 있다.

인근 단골은 물론 멀리서 찾아온 손님도 많다. 비빔양념은 고추장에 깨와 채소를 듬뿍 넣어 칼칼하면서도 고소하고 상큼하다. 압권은 면발. 심이 제대로 박힌 굵은 면이라 씹는 맛이 일품이다. 삶자마자 찬물에 헹구고 얼음을 넣어 내니 존득한 맛이 더욱 좋아진다.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141가길 34-1. 칼국수 6000원, 칼비빔국수 7000원.

◇전주 베테랑분식 = 전주 한옥마을 으뜸 맛집으로 소문난 곳.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겐 명실상부한 순례코스가 됐다. 학교 앞 분식집으로 출발했지만 정갈하기가 일류 한정식집 메뉴 같다. 달걀을 풀어 고소함이 가득한 육수는 다른 곳에선 찾아볼 수 없는 ‘베테랑’만의 스타일이다. 고소한 첫맛 뒤엔 멸치 등 건어물의 시원한 맛이 바로 따라와 첫인상이 끝이 아니었음을 일깨워준다. 서로 다른 풍미가 섞여 각각의 매력을 뽐내니 만족도가 급상승한다. 고춧가루와 함께 김과 깨를 가루 내어 얹은 것도 ‘금상첨화’다.

굵은 칼국수 면발과는 다른 중면 면발도 존득하고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간다. 국물을 머금은 매끈한 면발이 슬라이드처럼 식도를 타고 넘어갈 때면 행복감을 느낀다. 저렴하고 양도 푸짐하지만 만두를 빼놓는다는 건 무척 어려운 결정이다. 전주시 완산구 경기전길 135. 칼국수 7000원, 만두 5000원.

◇강릉 벌집 = 장칼국수란 육수를 낼 거리가 풍족하지 못한 강원도 해안가 주민들이 얼큰하게 한 끼 즐기기 위해 개발해낸 국수 요리다. 고추장을 잘 담가 육수로 쓴다. 그래서 동해안 곳곳에는 어김없이 장칼국숫집이 있다.

강원도 동해안에서 가장 큰 도시인 강릉에는 장칼국수를 파는 맛집이 많은데 이 중 벌집은 현지 주민들의 맛집이었다가 지금은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광객까지 몰려 기나긴 줄을 세우는 곳이다. 정말 벌집처럼 작은 방들로 마당을 빙 두른 한옥집이다. 담장을 따라 줄 선 손님을 빼면 그냥 주택가의 오래된 집인데 더우나 추우나 비가 오나 인산인해를 이룬다.

얼큰한 국물에 애호박과 김가루, 고기 다짐 등이 들었다. 직접 반죽을 밀어 칼로 썬 면발은 굵직한 게 억센 강원도의 산세를 닮았다. 한두 가닥만 집어 먹어도 입안이 꽉 찬다. 국물은 얼큰하면서 제법 묵직하다. 그리 달지도 않은 것이 풍성하면서도 시원하다. 심이 박힌 듯 고들고들한 국수도 씹는 맛이 좋다. 밥을 말아도 여느 국밥과 견줘 손색없다. 강릉시 경강로2069번길 15. 칼국수 7000원.

◇공주 용궁칼국수 샤브샤브 = 충남 공주는 칼국수 등 분식의 도시로 꼽힌다. 그 이유는 공주가 교육도시다 보니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학생이 많아서다. 곳곳에 칼국수 잘하는 곳이 많아 ‘칼국수계의 메이저리그’라 불린다. 공주는 내륙이지만 용궁칼국수는 해물 베이스 육수다.

칼국수는 각자 그릇에 담아내는 게 아니라 국수전골식으로 낸다. 먼저 냄비와 칼국수 사리를 가져다준다. 그곳에 상호처럼 갖은 해물에다 애호박, 배추 등 제철 채소를 가득 넣고 샤부샤부처럼 맛볼 수 있다. 홍합, 동죽, 미더덕 등 조개와 해산물이 많이 들어가 시원한 맛을 낸다. 칼국수를 먹은 뒤 밥을 넣어 죽을 해먹어도 좋다. 육질이 존득한 수육도 맛있어 대부분 테이블에서 곁들여 먹는 것을 볼 수 있다. 공주시 이인면 검바위로 221. 해물칼국수 7000원.

◇대전 황해식당 =‘칼국수 도시’를 내세우는 대전에서도 이 집은 가장 독특한 육수를 쓴다. 바로 어죽을 끓여 칼국수를 낸다. 황해식당의 어죽칼국수는 전국구로 입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이 일부러 찾아온다.

국내산 붕어와 메기 등 민물고기를 갈아서 오랜 시간 끓여낸 육수에 칼칼한 양념을 넣은 뒤 김치도 썰어 넣어 칼국수를 끓이는데 이 맛이 아주 뛰어나다. 당연히 비린내는 없고 구수하고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매콤한 맛이 입안에 맴돈다. 졸깃한 국수를 씹다가 국물을 들이켜면 여름철 잃어버린 입맛이 당장 되살아난다. 생선이 녹은 국물이 아까우니 밥을 말아서 바닥을 싹싹 비워야 한다. 대전 동구 한밭대로 1238. 어죽칼국수 6000원.

◇대구 서문시장 칼국수 골목 = 영남의 중심도시 대구는 예로부터 분식 선호가 강한 곳으로 정평이 났다. 떡볶이와 만두, 잔치국수 등 많은 분식 전문점이 곳곳에 성업 중이다. 이 중에서도 대형 시장인 서문시장에 위치한 칼국수 골목은 대구시민은 물론 관광객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곳이다. 이름은 골목이지만 골목이 아니라 시장 내부에 길게 좌판이 이어져 있는 형태다. 점포 안으로 들어가 있는 곳도 많다.

많은 가게가 있지만 공통적인 특징은 사발에 가득 차있는 면발과 건더기다. 젓가락만 찔러 넣어도 넘칠 기세다. 멸치와 채소 등 재료만 보충해 종일 육수를 끓여내고 여기에 금세 삶아낸 국수를 말아내니 그 맛도 뛰어나다. 끝맛 시원한 육수에 양념장을 휘휘 섞어 저으면 마법처럼 칼칼한 풍미가 살아난다. 맛은 대체로 비슷비슷하니 좋아하는 맛을 골라 가면 된다. 손님 좌석 사이사이에 ‘땡초’(매운고추)가 수북이 놓여 있는 것도 잊을 수 없는 특징이다. 대구 중구 큰장로26길 45 서문시장. 손국수 4000원.

◇울진 칼국수식당 = 1978년부터 울진 읍내에서 칼국수를 간판으로 내걸고 영업하는 집. 새벽부터 진하게 우려낸 멸치국물에 건면을 삶아서 낸다. 그릇에 담은 뒤 들깻가루와 김가루만 뿌려 차린다. 묵직해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맛은 명랑하다. 계란을 풀어 부드럽고 고소하게 퍼지는 첫맛이 일품이다. 소다를 넣지 않은 면발 또한 묵처럼 부드럽다. 졸깃졸깃 씹는 맛은 없지만 국물과 함께 매끈하게 들어가는 목 넘김이 다른 곳에선 느껴볼 수 없는 맛이다. 곁들여 내는 ‘동해안식’ 김치와 다진 양념장은 자칫 밋밋할 수도 있는 작은 국수 한 사발에 포인트를 혀끝에 남긴다.

시장 어귀라 주민이 많이 몰리는데 오후 1시에 문을 닫을 때도 있으니 미리 연락해야 헛걸음치지 않는다. 당일 가져다 썰어내는 싱싱한 생선회를 올린 회국수와 회밥도 인기다. 경북 울진군 울진읍 읍내1길 9. 칼국수 5000원.

놀고먹기연구소장

■ 각양각색 칼국수

경남 - 건어물육수

서해안 - 해물육수

수도권 - 사골곰국

값싸게 재빨리 먹을 수 있는 현존 최고 간편식이 국수다. 예상과 달리 국수는 한자가 아니고 우리말이다. 한자로는 면(麵)이라 부른다. 국물을 뺀 면만 따로 ‘사리’라고도 하는데 이는 비단 국수뿐 아니라 실타래나 새끼 등을 동그랗게 포개어 감은 뭉치를 통틀어 지칭하는 말이다.

국수를 만드는 제면 방식으로는 밀가루 반죽을 늘여서 빼는 납면(拉麵), 틀에 구멍을 뚫고 눌러 뽑는 압출면(壓出麵), 넓적하게 밀어 칼로 썰어내는 삭면(削麵) 등이 있다. 납면은 이른바 수타 제면법이며 중국집 수타 짜장면에서 만날 수 있다. 압출면은 냉면과 소면, 삭면은 칼국수와 우동이 대표적이다. 다만 한국은 끈기가 높은 밀가루가 귀했기 때문에 납면 방식은 사용할 수 없었다. 국수틀을 만들어 메밀 반죽을 뽑아 먹거나, 밀가루에 섞은 반죽을 밀고 썰어서 국수를 해먹었다.

칼국수는 제면 방식에서 나온 이름이니 국수(소면을 삶은)와 원리나 육수, 재료 등은 비슷하다. 하지만 소면보다 면발이 더 두꺼운 칼국수는 일반적으로 멸치육수로 내는 잔치국수보다는 국물을 더 진하게 쓴다. 소면은 수십 가닥을 함께 집으니 국숫발 사이에 국물을 품는 공간이 많은 데 비해, 칼국수는 엉기성기해 국물이 묻지 않아 맛이 나지 않는다.

바지락, 해물, 닭고기, 소고기, 메기, 고추장 등 전국적으로 이름난 칼국수가 입소문을 타고 퍼져 나갔다. 건어물 육수는 주로 경남도, 해물 육수는 서해안, 고추장은 강원도, 팥앙금 국물은 전남도에서 맛볼 수 있다. 내륙은 민물고기를 쓰고 서울과 경기도에선 닭고기나 사골 곰국을 쓴다. 칼국수는 서로 붙지 말라고 밀가루에 섞은 면을 넣고 삶는 까닭에 전분이 국물 속에서 풀어져 울면처럼 걸쭉해진다. 그 맛에 칼국수를 더 선호하는 이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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