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 소설 펴낸 '청룡기 MVP' 고려대 야구선수.."인생은 낫아웃 같아"

김상윤 기자 2020. 9.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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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 펴낸 현역 야구선수의 소설 같은 '야구 인생 10년'
성장소설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 쓴 고려대 졸업반 강인규
대학 통산 타율 0.310 OPS 0.989..올해 타율 0.413 기록 중
고려대 야구부 4학년 강인규가 9일 모교 덕수고 훈련장에서 자신이 쓴 자전 소설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을 들고 서 있다. /박상훈 기자

고려대 졸업반 강인규(23)는 오는 21일 열리는 KBO(한국야구위원회) 2차 신인 드래프트에서 프로의 문을 두드리는 선수 중 하나다. 대학 4년 통산 타율 0.310, OPS(출루율+장타율) 0.989를 기록 중인데, 4학년 들어 타율 0.413, OPS 1.211로 한층 더 날카로운 타격을 보이고 있다.

특이한 이력이 많다. 학점은 4.5 만점에 평균 4.3. ‘운동부 프리미엄’을 감안하더라도 높은 편이다. 그는 최근 자전 소설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을 펴냈다. 현역 야구선수가 소설을 출간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글쓰기를 따로 배운 적도 없는 20대 초반 어린 선수가 자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장편 소설을 써낼 수 있었던 건 그만큼 그의 야구 인생에 부침이 많았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뒤늦게 제대로 야구를 시작한 그는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동안 많은 어려움도 겪어야 했다.

덕수고를 졸업한 그는 3학년이던 2016년 팀의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와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청룡기에서는 최우수선수(MVP), 홈런상, 타점상을 휩쓸었다. 당시 서울고 2학년이었던 강백호(KT)와 함께 가장 주목받은 선수였다. 강백호를 두고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이자 천재라는 게 뭔지 알려준 선수”라고 한 강인규는 청룡기 결승에서 마운드에 오른 서울고 강백호에게 2타점 2루타를 뽑아내는 등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강인규는 대학 진학을 택했다.

―4년 전 프로 진출 도전 대신 대학 진학을 택한 이유는 뭔가.

“고등학교 때 상을 많이 받고 대회 우승도 했지만 실력이 부족했다. 정윤진 덕수고 감독님과 상의해 ‘대학에 가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도전하자’고 결론 내렸다. 야구를 제가 좀 늦게 시작한 것도 있고…. 프로에서 이 실력 갖고는 금방 잘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강준혁에서 강인규로 개명했다.

“작년 말에 개명 신청을 해서 올해 초 이름이 바뀌었다. 야구계 선배들이 이름을 바꾸고 잘되는 걸 봤다. ‘올해가 대학 마지막이니까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는 마음을 갖고 있다.”

―대학 진학을 후회한 적은 없나.

“아, 대학 생활이 정말 좋았다. 4년 동안 수업도 듣고, 운동 안 하는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고려대를 택한 걸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학점이 좋다고 들었다.

“체육교육과 전공 수업은 일반 학생들과 같이 듣고, 일반 과목은 학교에서 학사 관리 지원이라고 해서 도움을 많이 준다. 교양 과목은 운동부끼리 듣는데, 단체 구기 종목 학생만 있는 게 아니라 골프나 수영 같은 개인 종목 학생도 있다. 개인 종목 학생들이 전체적으로 공부를 잘한다. 열심히 하기도 하고, 우린 팀 훈련이 많아 시간 관리를 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다. 어떤 운동부 학생들이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공부 기초가 없었는데 어렵진 않았나.

“일단 시간이 없었다. 밤 9~10시에 운동이 끝나면 씻고 11시에 과제를 시작해야 했다. 체력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부모님께서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허락하는 조건으로 내게 시키신 게 공부에 도움이 됐다. 고1까지 일주일에 신문 기사나 칼럼을 하나씩 베껴 쓰고, 속독학원도 다녔다. 또 그 덕분에 글쓰기를 따로 배우지 않았는데도 소설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강인규가 고려대 유니폼을 입고 야구공을 든 모습. 졸업반인 그는 오는 21일 KBO 2차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있다. /박상훈 기자

강인규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국어 교사이자 1998년 등단한 시인이다. 김요안 북레시피 대표는 “소설창작론을 배우지 않은 학생이 서사를 써낸 것이 놀랍고 대단했다”며 “'역시 아버지의 피가 흐른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초고를 읽고 ‘어떤 부분에서 이런 이야기가 더 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한 달 만에 내용을 많이 덧붙여 왔다. 공부하는 운동선수라고 느꼈다”고 했다.

―부모님이 왜 신문 베껴 쓰기와 속독을 시키셨나.

“부모님이 두 분 다 교직에 계신다. 운동부 선수가 학교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 잘 알고 계시고, 그게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다. 야구부에 들어가고 나선 선생님들이 나를 이름으로 안 부르고 ‘야, 야구부’라고 불렀다. 그걸 듣고 ‘아, 부모님이 생각하신 게 이런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런 (운동선수가 공부를 전혀 못한다는) 인식을 깨보고 싶어서 열심히 했다.”

―소설을 쓸 생각은 어쩌다 하게 됐나.

“대학교 1학년 때 시작했다. 고3 때 나쁘지 않은 대회 성적을 냈는데, 난 그때 오히려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몸에서 끌어냈지만 벽에 부딪힌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대1 때 진지하게 야구를 관두려고 했다. 구력(球歷)도 너무 짧아 힘들었다. 그랬더니 부모님께서 ‘야구에 대한 열정이 넘쳤던 시절의 이야기를 소설처럼 한번 써보라’고 하셨다. 마침 중2 때부터 매일 야구 일지도 썼었다. 속는 셈치고 시작했는데 덕수고 시절을 쓸 때쯤 정말 달라졌다. ‘내가 이렇게 고등학생 때 열정이 넘치고 즐거웠구나’ 생각이 들어 마음을 다잡았다.”

―작성은 언제, 어떻게 했나.

“훈련장이 있는 송추(경기 양주)에서 잠실역까지 지하철만 1시간 넘게 타야 한다. 거기서 노트북으로 썼다. 쓸 시간이 없기도 했고, 그전까지 지하철에서 모바일 게임을 하다가 그게 무의미한 거 같아 그 시간을 아끼고 싶었다. 훈련이나 연습 경기가 밤 9시에 끝나고 씻으면 역에 한 9시 반쯤 도착한다. 그때부터 썼다.”

―힘들었을 것 같다.

“육체적으론 힘들었는데 정신적으론 좋았다.”

강인규는 원래 테니스를 했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7살 때 테니스를 시작해 초등학교 6학년까지 라켓을 잡았다. 유소년 국가대표에도 선발됐다.

―테니스를 그만두고 야구를 시작한 이유는.

“집안에서 내가 처음으로 운동을 했다. 부모님이 운동계 현실이 열악한 걸 아시고는 그만두라고 하셨다.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제가 져서 관뒀다. 공부를 시작했는데, 운동을 할 때만큼 심장이 뛰지 않아서 중1 때 (심적으로) 방황했다. 잠신중에 다닐 때 ‘나도 야구부에 들고 싶다’고 생각이 들어 부모님께 말씀을 계속 드렸다.”

―계기가 뭔가.

“베이징올림픽 결승이다. 찜질방에서 수백명이 다 같이 봤다. 병살로 경기가 끝나는 순간 난리가 났다. 어떤 아저씨는 아이스크림 수백개를 사서 돌렸다. ‘이게 야구구나’ 했다.”

―부모님은 뭐라고 하셨나.

“부모님도 지치셔서 ‘그래, 테스트 한 번 봐라’고 하셨다. 당연히 떨어질 줄 아셨던 거다. 근데 타석에 서보니 테니스랑 야구랑 치는 게 비슷하더라. 공이 잘 보였다. 너무 잘 쳐서 테스트에 그만 붙고 말았다. 부모님은 ‘절대 안 된다’고 선을 그으셨다.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가시기도 했다. 결국 잠신중에서 8월에 야구를 시작했는데 고작 6개월 만에 큰 부상을 당해 그만뒀다. 몸이 만들어지지 않고 하는 방법도 모르니까 힘으로만 하다가 무릎 연골이 다 상했다.”

―허무하게 선수 생활이 끝날 뻔했다.

“'야구는 내 길이 아니구나'하고 학원에 다니며 공부를 했다. 도무지 즐겁지가 않았다. 1년 정도 그렇게 보냈는데 무릎이 금방 회복됐다. 부모님께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만 해보면 안 되느냐’고 다시 졸랐다. A4 용지에 장문의 편지를 써서 책상 앞에 올려놓기도 하고…. 딱 한 번, 제발 한 번만 시켜달라고 했다. 부모님이 결국 다시 두 손 드셨다.”

―어떻게 야구부에 복귀했나.

“잠신중 감독님은 ‘너무 늦어서 못 받아준다’고 하셨다. 신월중이 그때만 해도 해체 위기 팀이었다. 지금은 장재영(2021년 키움 1차 지명)을 배출한 학교가 됐다. 거기 가서 2학년을 다시 시작했다. 1년을 유급한 거다. 집이 잠실인데, 화곡역 부근에 있는 신월중까지 가는 데에 두 시간이 걸렸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지하철을 타고 가서 훈련을 했다. 밤 9시 넘어서 끝나고 집에 오면 자정이 다 됐다. 얼마 지나니까 지하철만 타면 눈물이 나왔다. 그렇게 다니는 걸 부모님이 한두 달 보시더니 차를 태워주시더라. ‘믿어줘도 되겠다’ 생각하신 거다.”

강인규가 고려대 유니폼을 입고 책을 손에 든 모습. /박상훈 기자

강인규는 감독과 함께 발로 뛰며 ‘야구를 하게 해달라’고 사정해 팀 해체를 면했다. 전패(全敗) 팀이었던 신월중은 그와 그의 동창의 활약으로 우승팀이 됐다. 그는 신월중 출신 최초로 야구 명문 덕수고에 진학해 은사 정윤진 감독을 만났다.

―책 내용이 신월중을 졸업하고 진학한 덕수고 시절 겪은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각색해서 디테일은 약간 다르다. 예를 들면 주인공이 1학년 때 황금사자기에서 대형 사고를 치는 대목은 내가 실제로 저지른 실수를 토대로 했다.”

―어떤 실수를 했나.

“나 때문에 덕수고가 토너먼트에서 탈락했다. 1사 2루였고 2루 주자가 나였다. 타자가 공을 쳤는데, 더그아웃에선 바로 “됐다” “홈 들어오겠다”고 난리가 났다. 근데 내가 바로 안 뛰었다. 잡힐 줄 알고. 야구를 늦게 시작한 탓에 그때만 해도 판단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3루 밖에 못 가서 1사 1·3루가 됐고, 만루까지 이어졌는데 3루에서 속으로 ‘제발 점수 내라’하며 빌었다. 그렇지만 결국 점수를 못 내고 이닝이 끝났고, 그 경기는 0대1로 졌다.”

―그렇다면 원래는 본인 이야기가 아닌 대목도 있나.

“대회 관련 이야기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그밖에 주인공의 첫사랑 이야기나 주인공을 괴롭히는 선배 이야기, 부상을 당해 운동을 그만두는 친구 이야기 등은 다른 친구들에게 들은 사연을 각색했다.”

―강파치라는 주인공 이름이 특이하다.

“짓느라 고민을 많이 했다. 한자를 직접 찾아가며 어떻게 조합하면 좋을까 연구했다. 깨뜨릴 파(破), 어리석을 치(癡)를 합쳐보니까 입에 착착 감겼다. 그 외에 다른 등장인물은 가상의 이름 수백개를 만들어 줄줄 적어내려간 뒤 이미지에 맞는 이름을 붙였다.”

―강파치의 별명이 ‘깨쓰통’(가스통)이다. 실제로도 본인 별명이 깨쓰통이었나.

“깨쓰통은 야구계 은어다. ‘쟤 때문에 게임 터진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의미다. 내가 중고등학교 때 많이 들었다. 구력이 짧아서 당연히 해야 할 걸 하지 못하고 실수를 저지르곤 했다.”

―그런 일이 트라우마로 남지 않나.

“트라우마로 남은 일이 아주 많다. 그 중 하나는 고환을 다쳐 수술했던 일이다. 대회에서 투수가 공을 몸쪽으로 던졌는데 배트를 그냥 내다가 그대로 낭심에 맞았다. 곧바로 기절했고, 병원에서 ‘수술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또 쓰러졌다. 지금은 다행히도 전혀 문제가 없다. 그날 이후 난 평소 운동할 때도 항상 보호대를 차고 있다. 안 차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러면 내가 ‘큰일 난다’고 내 이야기를 해준다. 그거 들으면 다들 바로 차더라. 하하.”

인터뷰가 진행된 덕수고 감독실 책장에는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이라고 적힌 A4 사이즈 책이 꽂혀 있었다. 그가 스승들에게 돌린 소설 초고다. 덕수고 정윤진 감독은 “성실하고 평범한 아이였는데 대학에 가더니 ‘저, 소설 쓰고 있습니다’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소설 내용에 고사성어가 자주 나온다.

“전화위복과 새옹지마라는 말을 좋아한다. 뜻이 정말 마음에 든다. 내가 직접 겪은 야구 인생과도 비슷한 말이다. 실수하거나 실패해도 그게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반대로 좋은 일이 일어난 뒤 나쁜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다닌다.”

―책 제목은 어떻게 짓게 됐나.

“진부한 제목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내용과 맞는 그런 야구 용어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딱 들어온 게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이다. 결과는 삼진인데 1루로 뛰어서 살면 세이프가 될 수도 있는, 아직 끝이 아닌 상황….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뛰면 사니까. 인생도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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