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급한데 "4년뒤 살 집 내놓는다"는 사전청약.. 효과 있을까
"4년 뒤엔 정말 문제없이 입주할 수 있을까요?"
"그 사이 집값이 더 오르면 어떡하죠? 서울 살 돈으로 수도권 외곽 아파트를 사게 되는 건 아닐까요?"
정부가 8일 사전청약 일정을 발표하며 ‘패닉바잉(panic buying·공포에 질려 매수에 나서는 것)’이 진정될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실수요자들은 빨라도 4~5년 뒤에나 입주될 3기 신도시에 기대를 걸고 몇년 간 전세살이를 해야 하는지에 여전히 의문 부호를 찍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수요를 분산시키는 효과가 일부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집값 하락까지 기대하기는 무리라고 본다. 때문에 상당수 무주택 실수요자는 사전청약만 믿고 매수 계획을 미루기에는 역부족으로 느끼는 상황이다.
① "회사·생활권과 가까운 서울 분양 예정 물량은 적다"는 불만
우선 발표된 사전 청약 물량 중 서울 분양 예정 물량이 적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이날 정부가 일정을 확정해 발표한 곳 중 서울의 사전청약분은 내년 7~8월 분양하기로 한 노량진역 인근 군부지 200가구와 위례 300가구 등 500가구뿐이었다.
나머지는 남양주 왕숙(2400가구), 부천 대장(2000가구) 순으로 많은데 서울에 직장이 많이 몰려있는 것을 감안하면 직주근접과는 거리가 있다. 살고 싶고, 사고 싶은 집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부동산정보 서비스업체 ‘직방’의 최근 조사 결과를 보면 설문조사 대상 인원 중 20%가 "3기신도시에 청약할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거주지와 주된 생활권과 무관해서’를 꼽은 사람이 53.6%로 가장 많았다.
② "기다리다 떨어지면 그땐 손 쓸 수 없다"는 불안감
사전 청약은 내년 7~8월부터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실수요자들의 가장 큰 불안감 중 하나는 ‘청약에서 떨어졌는데 집값이 더 올라있을 경우 영영 집을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대목이다.
이는 분양시장이 청약 가점제로 운영된 데 따른 것이다. 리얼투데이 최근 집계에 따르면 올해 7~8월 서울에 공급된 12곳의 가점 커트라인(최저 당첨 가점) 평균은 62.7점으로, 올해 상반기 평균 당첨 커트라인 55.9점보다 6.8점이나 높았다.
가점 60점은 부양가족 4명·10년 이상 무주택·11년 이상 청약통장에 가입해야 받을 수 있어, 30대의 경우 받기 어려운 점수다. 정부는 이런 점을 감안해 ‘생애 최초 주택 마련 특별공급제’를 늘리겠다고 밝혔지만, 특별공급만 바라보기엔 전체 공급 가구 수의 25%에 그친다.
주택 공급 감소도 실수요자의 걱정을 가중하는 요인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공급 감소를 집값 상승의 주된 요인으로 꼽는데, 최근 서울 분양시장은 분양가 상한제의 영향으로 ‘공급 절벽’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통상 9~10월은 가을 분양 대목으로 분류되지만, 올해의 경우 9월 신목동파라곤 153가구, 10월 강동구 힐스테이트 고덕과 래미안 원베일리 등 2곳 1034가구에 그친다. 지난해 같은 기간 11개 단지 2621가구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서울에서 전세살이를 하는 김모(33)씨는 "당첨 확률을 높이려면 경기도로 이사를 나가야 한다. 이것도 쉽지 않을 결정인데, 문제는 당첨이 될지 안 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주위에서 ‘오늘이 제일 싸다’고 자꾸 말하는데, 그럼 지금 사는 게 낫지 않냐는게 내 고민"이라고 했다.
③ "전세값은 오르는데 전세살이를 얼마나 더 해야 하나"는 걱정
멈출 줄 모르고 치솟는 전세값도 3기 신도시 청약만을 느긋하게 기다릴 순 없게 한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의 전세가격은 62주 연속 상승했다. 특히 지난 7월 말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등 주택임대차보호3법이 시행된 이후 전세 시장의 매물이 줄고 가격이 치솟는 중이다.
8월 첫째 주 전세가격 상승률은 0.17%로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8월 둘째주 0.14%, 셋째주 0.12%, 넷째주 0.11% 등 0.10%가 넘는 전셋값 상승세가 이어졌다. 이처럼 전세가격은 계속 오르는데, 3기 신도시를 둘러싼 잡음이 많다 보니 정부 대책의 타깃인 무주택 전세 세입자들은 정작 떨떠름한 반응이다.
결혼 2년차 박모(37)씨는 "올해 전세계약이 끝나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생각인데, 운좋게 3기 신도시 분양을 받아도 2번째 전세계약 종료시까지 입주는 불가능한 것 아니냐"면서 "그것도 운이 좋아 분양받을 수 있을 때 얘기지, 분양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고 했다.
④ "일정대로 집 지어 내놓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
시장 일각에선 이날 구체적인 일정을 발표하지 못한 서울 내 공공택지 공급은 해당 부지 인근 주민들의 반발 등에 밀려 사실상 기약이 없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정부가 대규모 주택을 공급하기로 한 용산·태릉·과천·상암에서는 주민들과 지자체장, 지역구 국회의원 등이 정부에 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종천 과천시장은 "주민들과 협의 없이 정부청사 앞 유휴지에 주택 건설계획을 강행할 경우 모든 행정협조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정순균 강남구청장도 "서울 의료원 부지의 공공주택 공급 계획을 철회하라"고 했다. 유동균 마포구청장은 정부 결정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8일간 단식하기도 했다.
또 2022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다. 집권 후반기인 만큼 정책의 실행 동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신도시와 교통망 건설 정책은 지연되는 것이 더 흔하다고 할 만큼 애초 계획대로 되는 경우가 드물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사전청약은 본청약보다 1-2년 앞당겨 청약하는 것으로 불안심리를 진정시키는 목적이 강하다. ‘조기 내집 보유효과’가 나타나 주택시장 안정에 일부 효과를 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아직 큰 그림이 가시화됐다고 보기에는 이른 만큼 불안감은 여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정부는 사전청약을 통해 부동산 시장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진정시키고 싶겠지만, 사전청약이 단기간내 공급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전세가격이나 매매가격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수 있다"며 "오히려 내년 사전청약 시장이 과열된다면 수도권 인근 집값까지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한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내년 7월 인천 계양을 시작으로 내년 하반기~2022년에 각 3만 가구씩 조기 분양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전청약제도는 본 청약 1~2년 전에 미리 청약을 진행해 입주자를 선정하는 제도다. 사전 청약 당첨자가 본 청약이 실시될 때까지 자격 요건을 유지하면 본 청약에서 당첨이 확정된다. 입주는 본청약이 진행되고도 2~3년이 지나야 할 수 있다.
내년 진행되는 사전청약은 △7~8월 인천계양(1100가구), 노량진역 인근 군부지(200가구), 남양주진접2(1400가구), 성남복정1·2(1000가구), 의왕청계2(300가구), 위례(300가구) △9~10월 남양주왕숙2(1500가구), 의정부우정(1000가구) △11~12월 남양주왕숙(2400가구), 부천대장(2000가구), 고양창릉(1600가구), 하남교산(1100가구) 등이다.
다만 정부는 3기 신도시와 함께 공급대책의 또 다른 축인 8·4대책 중 공공택지 공급안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사전쳥약 일정을 정하지 못했다. 정부는 △서울 용산구 용산정비창 부지는 오는 2022년 하반기부터 △태릉 골프장은 내년도 상반기 교통대책 수립 후 △과천청사부지는 청사활용계획 수립 후 △용산 캠프킴은 미군반환 후 △상암동 서부면허시험장은 면허시험장 이전계획 확정 등의 절차를 거친 후 구체적인 사전청약계획 발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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