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재확산에 또 끊긴 배움길..문 닫힌 '장애인 야학'

박동해 기자 2020. 9. 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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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원 줄이고 '야외교실' 고육지책에도..결국 셧다운
모든 장애인 사회관계망 끊겨..탈시설 준비도 중단
지난달 27일 휴교 중인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실 불이 꺼져 있다. © 뉴스1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수도권 일대를 강타하면서 성인 장애인들의 학습공간인 야학이 다시 문을 닫았다. 학습 시기를 놓친 장애인들의 유일한 배움의 터이자 네트워크 역할도 중단됐다.

1일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에 따르면 수도권 일대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노들장애인야학은 정부지침에 따라 지난 17일부터 9월11일까지 휴교에 들어갔다. 지난 8월 초 2학기가 시작된 지 2주만에 다시 문을 닫게 된 것이다. 또 최근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조치로 전국 대부분의 장애인 야학이 휴교 팻말을 내걸었다.

◇성인 장애인 절반 중졸 이하인데…배움의 길 끊길까 우려

장애인들에게 야학은 단순히 취미로 다니는 평생교육시설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지식을 배우는 공간이다. 많은 수의 장애인들이 공교육의 틀 안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장애가 원인이 돼 교육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17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약 250만여명의 장애인 중 140만명이 중졸 이하 학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체 장애인의 절반 이상이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장애인들은 교육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고 생계를 위한 지식을 배우기 위해 야학을 찾는다.

하지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올해 야학의 수업은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았다. 감염 우려로 '밀집 수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 야학의 특성상 대부분의 학생이 휠체어를 타고 등교하고 활동보조인들도 동석하기 때문에 수업은 항상 교실에 사람이 꽉 찬 상태로 진행된다.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실내공간에 몰리는 것이 금지되면서 노들야학은 수업인원을 평소의 3분의 1로 축소했다. 평소에도 공간부족으로 연간 70여명 정도밖에 수업을 못했는데 그마저도 인원을 줄여야 했다.

노들야학은 공간을 마련해 보고자 학교가 입주해있는 건물 1층 주차장에 천막을 치고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 2008년 재정난으로 수업공간을 마련하지 못해 마로니에공원에 천막을 세우고 수업을 진행한 이후 다시 천막 교실이 등장한 것이다.

지난해 발표된 '장애인 평생교육 중장기계획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에 따르면 장애인들의 평생교육 프로그램 참가율은 0.2%~1.6%에 그쳤다. 1%의 장애인들이 야학 등 평생교육에서 교육을 받는 것인데 그마저도 코로나19 사태로 위기에 놓였다.

지난 5월 임시 교실 마련을 위해 노들장애인야학 관계자들이 주차장에 천막을 치고 있다.(노들장애인야학 홈페이지서 갈무리) © 뉴스1

◇평생교육시설 방역 지원 미흡…"이제는 별도 예산 제정 필요"

문제는 코로나19가 확산세가 줄어들어 수업을 재개하려고 해도 방역을 위한 시설 마련을 위한 재정적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가 장애인 평생교육시설이 설치된 전국 11개 시도의 방역관련 지원현황을 파악한 결과 예산을 배정해 방역을 지원하는 곳은 서울과 인천, 경기, 울산 지역뿐이었다.

노들야학이 위치한 서울에서는 시교육청에서 반마다 100만원씩의 예산이 편성됐다. 하지만 이외의 지원은 없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정부의 지원은 마스크와 손소독제, 일회성의 방역 소독 지원 등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장애인야학협의회에서는 방역물품과 체온계 방역용 칸만이 등을 마련하기 위한 모금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배승천 노들야학 사무국장은 "코로나19로 현재 사용하고 있던 2인용 책상도 사용하지 못할 것 같다"라며 "수업 공간 마련과 장비 교체 등으로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시도교육청이나 지자체에서 장애인 평생교육시설에 대한 방역예산을 향후 별도로 배정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비용의 문제로 일반 학교에서 진행하는 온라인 원격수업도 장애인 야학에는 꿈같은 일이다. 배 국장은 원격교육을 위해서는 인프라를 설치하는데 비용이 들뿐만 아니라 장애인 학생들에게 컴퓨터 사용 방법들을 교육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 휴교 중인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실 모습© 뉴스1

◇야학이 장애인들 '연결망'인데…이마저도 끊어질까 우려

장애인 야학의 휴교는 단순히 학습이 중단된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야학에 등교하는 학생들은 학교를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만들고 생활하고 있어 휴교로 인해 이들의 사회적 연결망이 차단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배 국장은 "근원적으로 고립되어 살고 있던 장애인분들이 사회적으로 더욱 고립되고 있다"라며 "최근 학생들 집에 방문했는데 2주간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많은 장애인들이 야학을 다니며 인간관계를 구축하고 생활과 관련한 정보를 얻고 취업도 하는데 모든 관계망이 끊어지면서 큰 타격을 입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12년째 야학에서 다니고 있는 장애경씨(52)도 야학이 문을 닫으면서 집밖에 나설 일이 줄었다. 애경씨는 앞서 코로나19로 학교 수업이 중간중간 취소됐을 때도 학교를 찾았다. 애경씨는 "너무 답답하다"며 "학교가 문을 닫으니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

애경씨의 활동보조인은 "친구들도 만나고 학교에서 모든 것이 이뤄지는데 애경씨가 많이 답답해한다"며 "애경씨의 경우 학교가 방학을 하지 말았으면 바라기도 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면서 탈(脫)시설을 준비하고 있던 장애인들에게도 코로나19의 확산은 직격탄이다. 자립 생활을 앞두고 야학에 나와 수업을 들으며 준비를 해왔는데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외출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배 국장은 "시설에 사는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면회를 요청했지만 거부 당해 만날 방법이 없었다"며 "평소에도 고립된 생활을 하는 장애인들이 더욱 고립돼 고통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유금문 장애인야학협의회 상임활동가는 "감염병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시설에서 집단으로 생활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며"장애인들을 집단 거주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유럽장애포럼(the European Disability Forum)은 유럽연합 국가들에게 전염병이 확산한 상황에서 장애인 시설의 거주자들을 줄이는 것을 권고하며 "시설에 장애인을 격리하는 것은 인권 침해일 뿐만 아니라 감염 가능성을 더 높이는 설정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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