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중동천일야화] 이란 위협 앞에 아브라함의 이름으로 손잡는 아랍과 이스라엘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2020. 8. 24.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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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 군사·경제 강국 도약 의지.. 팔레스타인은 궁지 몰려

이스라엘과 UAE가 곧 수교한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재로 이집트·요르단에 이어 세 번째로 아랍 국가와 국교를 맺게 되는 셈이다. 역사적인 사건이라 할 만하다. 내전과 분쟁 소식만 가득하던 중동에서 들려온 양국의 평화협정 추진 소식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생경하기까지 했다.

UAE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명분은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강제 합병을 막고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빈사 상태에 빠진 '두 국가 해법'을 살려냈다고 자찬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동기가 있다. 안보 때문이다. 최대 위협 이란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적국 이스라엘과 손잡은 것이다. 강골 무인 무함마드 빈 자이드 왕세제는 UAE를 군사 강국으로 만들려 한다. 중재자 미국은 UAE에 최신예 전투기 F35를 비롯, 첨단 무기 공급을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무슬림형제단 등 반정부 세력의 발본색원을 위해서 이스라엘 정보기관과의 협력도 절실했다.

한편 국가의 미래와도 맥이 닿아있다. 특히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고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높아졌다.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으로 첨단산업 연구·개발 공동 투자를 통해 석유 의존 경제를 탈피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나타냈다. 전 분야에서의 양국 교류 협력을 의미하는 '완전한 국교 정상화'를 발표한 배경이다. 물론 UAE로서는 이스라엘과 손잡는 부담이 작지 않다. 하지만 실질적 지도자인 무함마드 왕세제는 결단을 내렸다. 견고한 국내 지지를 바탕으로 수교를 성사하고 장기적으로 걸프의 평범한 왕국 UAE를 글로벌 무대에 세우려는 의지로 읽힌다.

경제와 교역·관광 등 전 분야 협력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이스라엘에는 큰 선물이다. 단순히 아랍의 적대 국가 하나를 돌려세운 게 아니다. 무조건 팔레스타인 편을 들던 아랍의 집단적 행태에 변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이란 바로 앞인 UAE에 군사 거점을 확보하게 되면 역내 전략 판도가 바뀐다. 이란 핵시설 타격이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이란의 부담은 상상할 수 없이 커진다. 안보 측면 외에도 득이 많다. 아부다비·두바이~텔아비브 직항편의 상징성은 매우 크다. 이스라엘 국민이 걸프를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은 작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경제와 교역 및 관광 등 전 분야 협력을 의미한다. 정치적인 의미만 부각된 이집트·요르단과의 국교 정상화와는 결이 다르다.

무엇보다 네타냐후 총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부적절한 코로나 대응과 부패 스캔들 재판으로 위기였다. 이번 협정은 재기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양보 없이 평화를 얻어냈다며 연일 생색을 내고 있다. 총리의 정치적 맞수이자 연정 파트너인 베니 간츠는 평화협정 추진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네타냐후 총리의 위상을 높여주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제 정국은 네타냐후가 단독으로 주도하는 모양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이익도 작지 않다. 이스라엘 안보는 미국 외교정책의 핵심 목표 중 하나다. 특이하게 미국 국내 정치 이슈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외교·안보 정책은 미국 내 선거에 별 영향이 없다고 하지만 이스라엘 문제만큼은 예외다. 이번 계기로 트럼프는 시온주의 성향 복음주의 유권자들의 표 결집을 기대할 수 있다. 유대계 자본가들의 선거 자금 동원도 용이해졌다. '온건 시오니스트'를 자칭하는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 역시 환영하지 않을 수 없는 절묘한 포석이었다. 트럼프에게 비판적인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도 칭찬 일색이다.

트럼프 사위 쿠슈너가 결정적 역할

그동안 트럼프 정부가 외교 성과로 내세울 만한 게 별로 없었다. 사위이자 보좌관인 쿠슈너가 전권을 위임받아 준비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구상이 첫 결실을 본 것이다. 향후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와 UAE 무함마드 왕세제 사이에 서서 평화협정 서명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트럼프를 상상해보자. 그 사진 한 장은 다른 외교정책의 부진을 상쇄하는 상징이 될 것이다. 트럼프는 내심 더 큰 기대가 있을 것이다. 걸프 아랍의 맏형 격인 사우디를 이스라엘과 마주 앉히는 것이다. 사우디 역시 이란의 위협 때문에 이스라엘과 손잡고 싶어 하면서도 조심스럽다. 섣불리 나섰다가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권력 승계에 변수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단 사우디는 이번 사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정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천명했다. 하지만 UAE가 부담을 확 줄여준 셈이다. 오만·바레인·모로코·수단 등 다른 아랍국이 먼저 평화협정에 나서면 사우디도 마음을 바꿀지 모르는 일이다. 트럼프 대선 가도에 도움이 되는 그림이다. 아랍 정상들을 쉴 새 없이 만나며 물밑 작업을 할 쿠슈너의 모습이 그려진다. 팔레스타인이 딱하다. 터키와 이란이 신랄하게 협정을 비난하며 팔레스타인 편을 들고 있지만 정작 동족 아랍 대다수가 등을 돌린 셈이다. 국제사회 다수의 평화협정 지지 분위기도 부담이다. 심지어 중국까지 환영하고 나섰다. 팔레스타인은 고민에 빠질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던진 ‘세기의 거래’ 제안을 수용할지 고민이다. 500억달러를 지원받고 불리한 조건으로 이스라엘과 협상에 나서 일단 독립에 나설지, 아니면 끝까지 투쟁할지 선택해야 한다. 국가이익 앞에 그 어떤 아랍, 팔레스타인의 명분과 대의도 무기력하다는 국제정치의 비정함을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 이번 평화협정의 별칭이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이 공히 존경하는 수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 족장의 이름이다. 아브라함의 아들들 이삭과 이스마엘로부터 중동의 유일신 종교가 갈려나왔다고 전해진다. 지금이라도 갈라진 계보를 봉합하고 화합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까? 생뚱맞지만 그 이름에라도 기대고 싶을 만큼 절실한가보다. 아, 팔레스타인도 아브라함의 후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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