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링거, 베토벤·바그너 음악의 시각화로 큰 반향

2020. 8. 22.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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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응하는 소리·형태 실험해 보니
구름 모양 '부바' 별 모양은 '키키'
'부바·키키 효과'로 95%가 짝지어
시대 앞선 '청각·시각의 교차양상'
클링거, 브람스 곡 주제로 판화집
베토벤 전시회는 '클링거 잔치'로

바우하우스 이야기 〈42〉
종합예술의 실험장이었던 오스트리아 빈 제체시온 회관 내부에 설치된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를 관람객들이 구경하고 있다. [사진 윤광준]
얼굴과 이름이 걸맞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건장한 남자가 ‘윤영’ 같은 부드러운 이름을 가진 경우다. 아주 당황스럽다. 소리와 형태는 서로 조응하기 때문이다.

약 백 년 전, 독일의 게슈탈트 심리학자 볼프강 쾰러(1887~1967)가 이 현상을 실험적으로 확인했다. ‘별처럼 날카로운 모양’과 ‘구름처럼 둥글둥글한 모양’의 두 그림을 주고, 어느 쪽이 ‘말루마’이고, 어느 쪽이 ‘타케테’인지 맞춰보라고 했다. 물론 ‘말루마’, ‘타케테’는 쾰러가 임의로 만들어낸 단어다. 90% 이상의 피험자들이 ‘별 모양’을 ‘타케테’로, ‘구름 모양’을 ‘말루마’로 연결시켰다.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뇌인지연구소 교수인 L. 라마찬드란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 실험을 다시 했다. 이름은 조금 달랐지만 느낌은 거의 동일한 ‘키키’와 ‘부바’로 했다. 95% 이상의 학생들이 ‘별 모양’을 ‘키키’로, ‘구름 모양’을 ‘부바’로 연결했다. ‘키키’라는 날카로운 소리는 뾰족한 모양으로, ‘부바’하는 부드러운 소리는 둥근 모양과 연결한다는 것이다. 인도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문화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른바 ‘부바-키키 효과’다.

거울뉴런 작용의 본질도 감각교차양상

시각과 청각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감각교차양상’이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을 ‘공감각(synesthesia)’이라고 한다. 숫자를 볼 때 색이 동시에 보이거나, 특정소리를 들었을 때 냄새를 경험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리스트나 칸딘스키, 랭보 정도의 예술가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마찬드란은 ‘부바-키키 효과’ 같은 낮은 단계의 ‘감각교차양상’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며, 인간의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기본 기제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때 그가 끌어들여 쓰는 개념이 ‘거울뉴런(mirror neuron)’이다. ‘거울뉴런’이란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뇌에 그 행동을 할 때 작동하는 뉴런 반응이 나타나는 것을 가리킨다. 인간이 타인과 공감하며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의 전제가 되는 아주 결정적인 현상이다. 관찰을 통해 전달되는 시각적 정보가 본인의 또 다른 신체 감각으로 전이되는 이 거울뉴런 작용의 본질은 ‘부바-키키 효과’와 같은 ‘감각교차양상’이라는 것이 라마찬드란의 주장이다.

비슷한 주장이 정반대의 맥락에서도 제기된다. 라마찬드란의 뇌 과학과는 정반대 진영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정신분석학자 대니얼 스턴은 기쁨이나 슬픔 같이 개념적으로 정의되는 ‘범주적 정서(categorial affects)’와는 구별되는 ‘활력정서(vitality affect)’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몸짓, 표정, 말투의 속도나 강약, 혹은 양상(modality)과 관계된 개념이다. 살아있는 동물의 모든 움직임은 이 같은 ‘활력정서’를 동반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자신을 대하는 부모의 마음을 ‘활력정서’를 통해 경험한다.

1 1902년 ‘베토벤 전시회’를 이끈 클링거(오른쪽)와 그가 좋아했던 음악가 브람스. 2 클링거가 브람스 음악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판화 ‘브람스판타지’의 한 장면. 그래픽=이은영 lee.eunyoung4@joins.com
이때 아주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난다. 동일한 느낌이지만, 활력정서의 양상이 서로 다른 경우다. 아기는 얼굴 표정으로 기쁨을 표현하지만, 어머니는 몸짓 혹은 목소리로 아기의 감정을 흉내낸다. 반대로 아기가 어머니의 목소리를 몸짓으로 흉내내기도 한다. 정서의 내용은 동일하지만 그 표현의 양상이 시각적·청각적·촉각적으로 차원을 달리하며 상호작용하는 것을 대니얼 스턴은 ‘정서조율(affect attunement)’이라 정의한다. 아동발달에 이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나와 다른 사람이 동일한 감정을 느낀다는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의 발달심리학적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감각의 ‘교차양상(cross-modality)’과 관련된 이 원초적 경험은 인간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예술적 경험의 심리학적 토대가 된다. 특히 전통적 예술개념으로는 분류하기 어려운 오늘날의 예술작업들은 바로 이 감각의 ‘교차양상’에 집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청각과 시각의 교차양상, 즉 ‘음악의 시각 이미지화’는 세기말 제체시온 예술가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주제였다.

바그너의 ‘종합예술’에 관한 구상은 바이로이트 페스트슈필하우스의 건축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바그너가 죽은 후, 유럽의 여러 예술가들은 예술의 경계를 뛰어넘는 종합예술의 혁신적 실험을 계속했다. 이들은 1902년 빈 제체시온의 ‘베토벤 전시회’에 총집결했다. 일단 전시실 중앙에 모셔진 ‘음악의 신’ 베토벤을 조각한 막스 클링거(1857~1920)는 당시 젊은 예술가들의 추앙을 한 몸에 받던 ‘종합예술인’이었다. 그는 조각·음악·회화의 편집을 통해 바그너의 ‘종합예술’ 이념이 어떻게 가능할까를 다양하게 실험했다. 베토벤 조각상으로 당시 유럽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지만, 클링거는 이미 판화와 회화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조각과 수공예의 결합을 시도하며 독일 유겐트슈틸의 시작을 알리기도 했다.

클링거는 쇼펜하우어, 니체로 대표되는 당대의 철학은 물론 문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종합예술을 실험하기에는 음악이 훨씬 즐거웠다. 클링거는 자신보다 24살 많은 브람스의 열성 팬이었다. 1894년, 클링거는 브람스의 60회 생일을 축하하며 그의 ‘운명의 노래’를 비롯한 다양한 곡들을 주제로 41개의 판화를 제작했다. 그리고 이 판화집을 ‘브람스판타지’라 이름 붙였다. 당시로는 아주 낯선 ‘청각과 시각의 교차양상’을 시도한 작업이었지만, 음악사나 미술사에서 크게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것이다.

클링거의 관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뮌헨 제체시온이 결성되던 1892년, 클링거는 베를린에서 ‘엘프(XI)’그룹을 결성했다. 베를린 제체시온의 모태가 되는 ‘엘프’ 그룹은 황제 빌헬름 2세의 강력한 후원을 받던 ‘베를린 예술가협회’에 대항하기 위해 모인 11명의 미술가를 지칭한다. 당시 안톤 폰 베르너와 같은 역사 화가들 중심의 베를린 예술가협회가 인상주의 같은 새로운 미술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11명 중 클링거는 특별히 눈에 띄는 화가였다. 그가 다루는 그림의 주제는 범상치 않았다. 독일 제국의 이상적 세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간의 비합리적 모습을 다뤘다. 그의 에로틱한 작품들은 퇴폐적이고 역겹다며 비난 받았다.

사랑과 인생, 그리고 성적 환상과 꿈에 관한 클링거의 작품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 특히 ‘장갑’ 판화 연작은 클링거의 집요한 페티시즘을 보여준다. 빈에 클림트와 프로이드가 있었다면, 라이프치히에는 분트와 클링거가 있었다. 시기적으로는 분트와 클링거가 조금 앞선다. 클링거가 있었기에 클림트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클링거가 태어나서 주로 활동하던 당시의 라이프치히는 근대적 의미의 심리학이 탄생한 곳이다. 오늘날 심리학 교과서는 빌헬름 분트(1832~1920)가 1879년 라이프치히 대학에 세운 ‘실험심리학연구소’를 근대심리학, 즉 과학적 심리학의 출발로 적고 있다. 젊은 클링거는 분트와 그의 동료들을 통해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깊이 빠져들었다(클링거는 분트의 두상을 조각해 분트의 80회 생일에 선물하기도 했다). 특히 클링거가 수시로 표현하고자 했던 꿈과 무의식, 그리고 이를 통해 매개되는 상징의 세계는 당시 라이프치히 대학 심리학자들의 공통된 관심이었다. 꿈과 무의식의 심리학이 프로이트의 창작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빈에는 클림트, 라이프치히엔 클링거

빈 제체시온의 ‘베토벤 전시회’는 클링거를 위한 잔치였다. 베토벤 조각상은 그가 1886년부터 16년에 걸쳐 고민해왔던 음악·미술·철학·심리학을 편집한 ‘종합예술’의 결실이었다. 특히 베토벤과 바그너의 음악을 판화, 회화, 그리고 조각으로 구현하려 했던 감각의 교차양상에 관한 실험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빈 제체시온 회관은 클링거의 조각이 전시되기에 최적화된 공간이었다. 클링거와 마찬가지로 바그너의 ‘종합예술’에 깊이 공감하고 있던 요제프 호프만(1870~1956)이 설계한 빈 제체시온 회관은 전시의 양상에 따라 언제든 공간을 편집할 수 있는 구조로 지어졌다. 호프만은 베토벤 전시회의 구성과 내부장식을 총감독했다. 클링거와 호프만이 꿈꾸는 ‘종합예술’을 구현하기 위해 21명의 빈 제체시온 예술가들이 전시장 내부를 구분해 맡았다.

개막식 또한 시각과 청각의 교차양상을 위한 실험장이었다. 말러가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을 연주했고, 맨 앞 좌석에서 클링거는 눈물을 흘렸다. 바로 옆 좌석의 클림트는 그런 클링거를 감격스럽게 바라보았다. 빈의 신문들은 베토벤 조각상에 대해 연일 보도했고, 제체시온 회관을 찾은 관람객 수는 연일 신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오늘날 클링거의 베토벤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다.

요즘 빈 제체시온 회관을 찾는 이들은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를 둘러보며 감탄한다. 중앙전시관에 위치한 클링거의 베토벤을 경배(!)하기 위해 왼쪽 전시장 3면의 벽에 그려졌던 것이다. 클링거의 조각을 보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으며 거쳐 가야 하는 ‘장식’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다. 클림트는 이 보조역할마저 기꺼이 떠맡았다.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 또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회화로 변환한 감각교차양상의 결과물이었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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