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세계일주] 옥룡설산 바라보며 차마고도를 걷는다

글·사진 김영미 여행작가 2020. 8. 20. 10:2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기 끝나는 10월부터 트레킹 하기 좋은 날씨 이어져
차마객잔에서 바라 보는 만년설이 쌓여있는 옥룡설산.
인도대륙과 유라시아대륙의 충돌로 야기된 지각운동은 하나였던 산을 옥룡설산玉龍雪山(5,596m)과 합파설산哈巴雪山(5,396m)으로 갈라놓았고, 그 사이로 금사강이 흘러들면서 길이 16km, 높이 2,000m에 달하는 길고 거대한 협곡을 만들었다. 이 협곡은 포수에게 쫓기던 호랑이가 금사강 중앙에 있는 돌을 딛고 강을 건넜다고 해서 호도협으로 부른다.
호도협은 리장에서 샹그릴라로 향하는 차마고도의 길목에 자리한다. 전체 길이가 약 5,000km나 되는 차마고도는 실크로드보다 200여 년 더 오래됐다. 중국 당나라와 티베트 토번국이 차와 말을 교역하던 데서 유래된 이름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호도협 트레킹은 밀포트 트레킹, 잉카 트레킹과 함께 BBC가 선정한 세계 3대 트레킹 코스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국내 예능프로그램의 촬영지로 나오면서 더 많이 알려졌다.
옥룡설산과 합파설산 사이에 지각변동으로 만들어진 호도협을 따라 금사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28개의 굽이 길을 넘어서 차마객잔까지
호도협의 절벽에는 운남성의 차를 싣고 티베트로 가던 나시족 상인과 말들이 걸었던 길이 있다. 호도협 트레킹은 그들의 자취를 따라 역사를 되돌아보며 걷는 길이다. 그 길에서 장강의 최상류인 금사강을 내려다보고 중국인의 성산인 옥룡설산과 티베트인의 성산인 합파설산을 바라보며 걷는 즐거움도 크지만, 나시족들의 일상을 곁에서 볼 수 있어서 더욱 매력적이다. 호도협 전 구간에는 여행자들이 머물 수 있는 객잔이 있고, 난이도가 높지 않을 뿐 아니라 안내판도 잘 설치돼 있어 가이드 없이도 트레킹이 가능하다.
최적기는 10월 이후이다. 4월부터 우기가 시작돼 6~8월에 절정에 달하므로 우기는 피해야 한다. 건기인 10월 이후부터는 선선해져서 걷기 좋은 날씨가 이어진다. 12월이 되면 패딩이 필요할 만큼 조금 추운 날씨이지만 한낮에는 선선해 더없이 걷기 좋다.
호도협 트레킹의 시작은 해발고도 1,900m 차오터우이지만 차오터우에서 일출소우까지는 일반 도로이어서 대부분 일출소우에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차오터우에서 일출소우까지는 빵차로 15분 정도 소요된다.
리장 고성에 있는 장쩌민 주석의 친필휘호가 새겨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표지석.
합파설산의 끝자락에서 시작한 트레킹은 경사가 가팔라서 걷기가 쉽지 않지만 10여 분 걸으면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로 내려가면 바로 곁에서 포효하는 금사강을 볼 수 있다. 합파설산을 오르는 내내 오른쪽으로는 만년설이 쌓인 옥룡설산의 은빛 봉우리와 금사강의 옥빛 물줄기가 함께한다. 장엄한 자연을 걸어가니 흥분과 함께 긴장감이 느껴진다. 가파른 비탈길의 계단식 논, 말을 끌고 가는 농부, 고추를 줄에 줄줄이 매달아 말리는 모습, 마당에서 말치기를 하며 노는 아이들까지 우리네 농촌 일상과 그리 다르지 않은 정겨운 모습이다. 게다가 중간중간 돌에 그려놓은 화살표만 따라가면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점심 무렵 도착한 나시객잔. 우리네 시골 어느 농가와 비슷하게 겨울용 식량인 옥수수가 말라가고 있다. 벽면 가득 채워진 옥수수를 보니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또 다른 벽에는 한국의 산에서 많이 보는 산악회들의 등산 리본이 가득하다. 참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을 거쳐 갔음을 알려 준다. 햇볕이 따스한 양지에서 점심 식사 후에 휴식까지 취하니 온 몸이 나른하다. 트레킹 중의 휴식은 꿀처럼 달콤하다.
나시객잔을 나서면 길은 험해진다. 호도협 트레킹의 가장 난코스인 28밴드. 굽이굽이 오른쪽 왼쪽으로 휘어지면서 가파른 28개의 굽이를 걷는다. 소형차나 말이 다닐 수 있도록 산허리를 깎아서 만든 길이다. 해발고도 2,100m에서 시작해서 2,670m까지 오른다. 한두 번도 아니고 28번을 휘돌아 올라야 하지만 옥룡설산의 은빛봉우리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객들이 일출소우를 지나 옛날 상인들이 걸었던 차마고도를 걷고 있다.
가파른 길을 올라서 고갯길의 정상에 서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내가 걸었던 28밴드가 마치 리본이 흘러내리는 모습으로 펼쳐 있다. 아름답고 웅장하기까지 하다. 나의 수고로움을 칭찬하듯 시원한 강바람이 목덜미를 스친다. 한동안 말을 잊고 고갯마루에서 28밴드를 바라본다. 정상에서 가장 뷰포인트가 좋은 곳은 입장료를 10원씩 받고 있다. 유료 뷰포인트에 서니 옥룡설산 아래로 흐르는 금사강의 물줄기가 협곡을 시원스럽게 휘돌아가는 모습이 더욱 생생하다.
28밴드의 정상을 지나면 편안한 하산길. 한 시간 정도 걸으면 오늘의 숙소인 차마객잔이다. 그 옛날 차마고도를 지나던 상인들이 중간에 묵었던 숙소이다. 지금은 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이다.
차마객잔은 침상에 전기장판을 깔아 준다. 고산을 트레킹한 사람들은 모두 고산의 밤이 얼마나 추운지 안다. 트레킹 여행자들에겐 상상도 못 했던 참으로 근사한 선물이다. 저녁식사는 차마객잔에서 키운 닭으로 만든 백숙. 해발 2.400m 오지에서 우리의 음식인 백숙을 먹을 수 있다니 참으로 놀랍다. ‘얼마나 많은 한국여행객들이 이곳을 왔었던 것일까?’ 마음 한편에는 ‘현지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해도 좋았겠다’는 서운함이 남는다.
호도협 트레킹의 최대 난코스인 28밴드. 가파른 28개의 굽이길이 합파설산의 산허리를 휘감고 있다.
해발 2.400m에서 맞는 저녁시간. 밤이 깊어갈수록 하늘의 별들은 점점 더 총총해진다. 차마객잔 옥상의 그네에 앉아 별 하나하나에 그리운 얼굴들을 담아본다. 그리운 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꿈을 꾼다.
오전 8시인데도 아직은 조금 어둡고 쌀쌀한 새벽이다. 두 개의 성산인 합파설산과 옥룡설산 사이의 협곡을 따라 만들어진 길을 걸으니 대자연 속에서 느끼고 호흡할 수 있음에 새삼 감사하다. 한발 한발 걸어가면서 내가 숨 쉬고 살아 있음을 느낀다.
포효하듯 호도협의 상도협 전망대 곁을 흐르고 있는 금사강.
천하제일측天下第一厠의 중도객잔을 지나 티나객잔까지
차마객잔에서 중도객잔까지 5km 구간은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 아래로 금사강이 포효하듯 흐르는 모습이 절경이다. 호도협 트레킹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비경을 즐기며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내리막길을 걸으니 어제보다는 걷기가 훨씬 수월하다. 1시간 반 정도 산비탈 길을 걸으니 중도객잔이다. 점심 먹기에는 일러서 간식으로 현지 음식인 빠바를 주문했다. 밀전병같이 생겼는데 맛이 담백하고 식감이 좋다. 어떤 토핑을 올리느냐에 따라 피자도 되고 파이가 된다.
중도객잔의 화장실. 들어가는 문은 있는데 앞쪽엔 문이 없다. 바로 앞에 옥룡설산이 마주한다. “세상에“ ”와~~”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화장실 너머의 설산 봉우리들이 마치 내 바로 앞에 있는 듯하다. 손을 뻗으면 산봉우리가 내 손안에 들어올 것만 같다. 세계의 어떤 전망대가 이보다 더 멋진 풍경을 보여줄 수 있을까? 호도협 트레킹을 하면 반드시 와야 할 곳은 중도객잔 화장실이구나! 아마 밤에 이곳에 왔더라면 옥룡설산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별들의 향연에 취해서 밤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바위 위에 써 놓았던 중도객잔 안내 문구가 왜 ‘천하제일측天下第一厠’, 즉 ‘천하제일의 화장실‘이었는지 실감이 난다.
옥룡설산의 물을 끌어 들인 수로가 리장 고성의 구석구석을 흐르고 있다.
칼로 자른 것 같은 산비탈의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 관음폭포는 어림잡아도 500m는 넘는 듯하다. 우기였다면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을 내고 폭포수가 떨어졌을 그 위엄을 상상한다.
폭포를 지나고 한동안 계속되는 오르막을 지나오니 살방살방 걷기 좋은 길이다. 그 길의 끝에 티나객잔이 있고 트레킹은 끝난다. 티나객잔에서 따뜻한 차와 더불어 맑은 오후의 햇살까지 맘껏 마신다.
호도협 트레킹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객잔 안내 글.
티나객잔에 도착해서 시간이 있다면 중도협 협곡을 다녀올 수 있다. 고도차가 거의 500m에 달해서 조금은 어려운 코스이다. 이곳은 별도의 입장료를 받는다. 바위 안쪽으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서 협곡 아래로 내려갈수록 물살이 세지고 위험하다. 그곳에는 호랑이가 딛고 건너갔다는 돌이 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바위 전망대에 올라 금사강을 바로 곁에서 느낄 수 있다. 엄청나게 무서운 속도로 흐르는 금사강의 물결과 거대한 호도협 협곡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짧지만 강렬했던 이틀간의 호도협 트레킹은 끝이 났다. 옥룡설산과 합파설산이 만들어준 협곡에서 세계 제일의 풍광을 즐긴 시간이었다.
*호도협 트레킹 답사기는 필자가 코로나19 이전에 방문한 내용을 기초로 집필되었습니다.
28밴드를 지나서 오르는 고갯길의 정상. 이곳은 28밴드를 조망하는 전망대이기도 하다.
Trekking Tip
중도객잔까지 도로가 연결되어서 당일 트레킹도 가능하지만 호도협을 제대로 즐기려면 최소 1박 이상 머물 것을 추천한다. 호도협 트레킹은 일출소우에서 시작해서 나시객잔, 차마객잔, 중도객잔, 티나객잔까지 약 16~17km. 티나객잔에서 시작하면 28밴드를 넘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찾아가기
트레킹의 베이스캠프는 리장 고성도시이다. 리장으로 가려면 쿤밍에서 중국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50분 정도 소요된다. 리장 터미널에서 호도협 트레킹이 시작되는 일출소우까지는 버스로 약 2시간이 걸린다.
리장
중국의 대자연과 800년 전 옛 중국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땅, 운남성의 리장麗江은 한자어로 여강으로 부르기도 한다. 고원 계절풍 기후로 여름에는 덥지 않고 겨울에는 춥지 않아서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해발 2,490m에 만들어진 리장 고성은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중국의 소수민족인 나시족의 생활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다. 나시족은 그들만의 고유문자인 동파문자를 사용한다. 동파문자는 그림에 가까워 담과 벽에 다양한 모양으로 장식하기도 한다.
성벽이 없는 도시인 고성은 사방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펼쳐진다. 사방가는 많은 가게들로 둘러싸인 약 400㎡의 작은 광장으로 이곳에서 차마고도의 교역이 이루어졌다. 모든 골목마다 반들반들 빛나는 붉은색 역암이 깔려 있어서 비가 와도 물이 고이지 않고, 날이 건조해도 먼지가 날리지 않는다. 옥룡설산의 눈 녹은 물을 끌어들인 수로는 리장 고성의 구석구석을 흐른다. 마치 운하 도시 같아서 ‘동방의 베네치아’로 불린다. 그 수로를 따라서 300개가 넘는 돌다리가 있고 오래된 전통 가옥과 거리, 옥룡설산이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리장 고성 전체를 조망하기 가장 좋은 곳은 망고루이다.
800년 이상이 된 리장의 도로나 하수도 시설은 1996년 대지진에서 거뜬하게 건재했다고 하니 상상조차도 어렵다.
밤이 되면 홍등에 불이 밝혀지고 더욱 아름다운 도시로 변하는 리장의 밤거리는 1970년대 우리나라의 나이트클럽을 연상시킨다. 미로 사이에 있는 술집과 카페에는 엄청나게 많은 젊은이들로 북적거려서 이곳이 중국임이 실감나지 않는다.
리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볼거리는 ‘인상여강印象麗江’이다. 인상여강은 중국의 세계적인 감독 장예모가 기획한 가무극으로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해발 3,600m에 위치한 야외 공연장에서 10개 소수민족 500명과 말 100필이 등장한다. 출연자는 모두 이 지역의 농부와 학생. 소수민족의 원시적인 삶의 모습과 일상을 춤과 노래로 담아내는 공연은 지상 12층 높이의 원형의 무대에서 펼쳐진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