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커뮤니티 '텐인텐' 운영자 박범영씨가 돌아본 '대한민국 재테크 열풍 20년'

장회정 기자 2020. 8. 14.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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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부동산 위주로 쌓아두기만 하는 부자는 100억 있어도 불안…시간의 자유와 돈의 흐름 창출하는 ‘진짜 부자’가 되어야

2001년 “마흔 살이 되기 전에 경제적 자유를 얻어서 가족들이 어려움 없이 살게 하겠다”는 각오로 재테크 카페 ‘텐인텐’을 만든 박범영씨는 대한민국 재테크 열풍 20년을 지켜본 소감을 묻는 질문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1990년대 초반 기업경영에서 사용되던 ‘재테크’는 외환위기 이후 경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고조되면서 자산을 불리는 지식과 기술이라는 의미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 명예퇴직 바람이 불자 부동산 투자, 소규모 창업 관련 강좌가 속속 등장했다. 지상파에서도 재테크 관련 프로그램이 늘어났다. ‘꽃꽂이 대신 재테크 강좌에 주부들이 몰린다’는 기사도 나왔다.

배우 김정은이 광고 속에서 “여러분 부자 되세요”를 외쳤던 2001년, ‘맞벌이부부 10년 10억 만들기(텐인텐 10in10)’ 카페가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됐다. 10억원을 내세운 카페 이름을 두고 배금주의, 물질만능주의의 표상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재테크의 상징이 된 ‘10억 만들기(텐인텐)’는 2003년 선풍적인 붐을 타고 삼성경제연구소 10대 트렌드에 선정되는 한편 2004년에 국립국어원 ‘신어보고서’에도 올라갔다.

‘대한민국 NO.1 재테크 커뮤니티’를 표방한 텐인텐이 20년을 맞았다. 부자에 대한 국민의 열망만은 그때에 뒤지지 않는다. <존리의 부자 되기 습관1> <김미경의 리부트> <부의 대이동> <더 해빙> <돈의 속성>. 8월 첫 주 온라인서점 예스24의 베스트셀러 1위부터 5위는 부와 성공, 처세에 관한 책이 차지하고 있다.

20년 전 텐인텐을 만들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는 박범영씨(49)에게 물었다. 대한민국 재테크 열풍을 지켜본 지난 20년, 어땠습니까.

‘경제적 자유 얻기’ 부르짖으며
2001년 카페 개설해 반향 일으켜
‘10억 만들기’ 목표로 모였지만
알뜰살뜰 사는 노하우 함께 나눠

부동산 투자가 대세가 되면서
게시판은 부동산 관련 글로 도배
회원들의 정치적 양극화를 보며
재테크 시장 혼탁에 자괴감 들어

‘요즘 10억이 부자냐’라고 하지만
노동으로 번다면 터무니 없는 돈
‘가짜 자산’에 현혹된 사람들
허상만 믿고 경제 공부 게을리 해

경제적 자유의 핵심 목표는
자유로운 시간과 존엄 지키는 것
부자의 화려한 외양만 보여주는
미디어도 반성할 필요 있어

■ 10억원 만들기 열풍의 현재는

“마흔 살이 되기 전에 경제적 자유를 얻어서 가족들이 어려움 없이 살게 하겠다”는 각오로 텐인텐을 만든 박씨는 어느덧 50대에 접어들었다. 2005년 인터뷰에서 그가 공개한 한 달 용돈은 20만원, 그중 4만원은 교통비, 7만원은 식비였다. 철저한 가격비교 탐색으로 소비의 군살을 줄여 저축률을 높인 뒤, 우량주와 MMF 투자로 연 10~20% 수익률을 올린다고도 했다. “월급으로 10년에 10억원을 만드는 것이 산술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종잣돈을 마련하고 재테크를 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하던 그는 2009년 10억원 만들기 과업을 달성했다. 그는 살고 있던 경기도에 내 집을 마련하고, 건물을 지어 월세 수익을 내는 한편 주식 투자로 안정적인 수입(5~10%대)을 올리고 있다는 근황을 전했다. 퇴사 후에는 ‘텐인텐 경제적자유아카데미’를 개설해 11년간 1만5000명이 넘는 회원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오고 있다. 그가 카페 아이디로 이름을 빌려 쓰고 있는 자녀들은 벌써 열아홉, 스물한 살이 됐다. 아내는 여전히 교직에 몸담고 있다.

“82년생 39살 남자입니다. 2010년 11월 10년 안에 10억을 모으겠다는 다짐의 글을 쓰고 그로부터 10년”이라고 운을 뗀 글은 아파트, 전세금, 펀드, 적금, 주식, 퇴직금, 신용대출까지 자산 내역을 상세히 열거했다. 10억원이 훌쩍 넘었다. “나름 열심히 살았나보네요. 한눈 안 팔고. 뭔가 기쁘고 대견하면서도 아무 생각이 안 드네요.” 지난 7월13일 텐인텐에 올라온 이 게시글에는 ‘기특하다, 축하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10억원 만들기라는 공통의 목표 아래 모였지만, 돈 얘기만 나누진 않았다. 경제와 생활 정보, 도전 실전 등으로 나눠 운영되던 게시판은 지금도 여전하다. 재테크 포트폴리오를 올리면 응원과 조언을 주었고, 알뜰살뜰 사는 노하우도 나눴다. 박씨는 ‘꼬물이아빠’를 기억에 남는 회원으로 꼽았다. 6년 전 꼬물이아빠는 아이가 자전거사고로 위태로운 상황이라며 기도해 달라는 글을 게재했고 이후 회원들의 응원 덕분에 아이가 쾌유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최근에 회원 한 명이 비슷한 상황에 처하자 꼬물이아빠가 위로의 글을 올렸고 무려 800개에 가까운 따뜻한 댓글이 이어졌다. 박씨는 “공동체에 온기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대한민국 No.1 재테크 커뮤니티를 표방한 ‘텐인텐’ 카페 이미지. 최대 82만명이었던 회원수는 지금도 78만명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한때 82만명이 넘었던 회원 수는 현재도 78만5000여명을 유지하고 있다. 한창 때의 활기와 온도차는 느껴지지만, 신입회원 가입은 꾸준하다. 싱글 회원이 늘어나면서 ‘맞벌이 부부’ 타이틀도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카페의 장수 비결을 묻자 박씨는 “(운영자가)개입하지 않고 상업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요즘 잘나가는 유튜브 채널이 ‘뒷광고’ 논란으로 몸살을 앓는 것처럼, 당시 활황세였던 재테크 커뮤니티에도 각종 광고 제안이 쏟아졌다. 금융회사 배너 광고부터 공동구매 제휴, 심지어 카페를 인수하겠다는 제안도 들어왔다. 박씨는 “그 요청을 다 받아서 사업을 했으면 몇 백억원은 벌었을 거”라고 했다. 운영자의 확고한 광고 거부 방침에 반발하던 운영진 일부는 카페를 탈퇴했다.

“회원은 1969년생부터 1972년생까지, 제 나이대가 가장 많다.” 박씨는 102만명이 태어나 1970년 이래 가장 많은 출생자로 기록된 1971년생이다. 가장 치열한 입시와 입사 관문을 통과한 세대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카드회사)에 근무하던 박씨는 텐인텐 개설 취지로 ‘경제적 자유’를 부르짖었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면 “노동으로 착취당하는 세상의 노예가 되지 말자”는 것이었다. 카페 운영 20년의 소회를 묻자 박씨의 입에서 “안타깝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20년 전, 이 공동체가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함께 재테크를 공부하고 절약하며 성장하고자 했는데 지금은 악다구니만 남았다.”

■ 부동산 논쟁으로 양극화

2005년 기자를 만난 박씨는 “다들 카페 가입하고 6개월이 지나면 볼 게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주인장 입장에서는 “세계 경제를 보는 기본 지식을 습득하고 동기를 찾은 뒤 투자의 실전 감각을 기르는 숙련 기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어디에’ 투자하면 좋을지 콕 집어주는 ‘화끈한’ 정보를 원했던 이들에게 텐인텐은 그다지 실용적이지 못했다. 비단 재테크 카페를 찾지 않아도 누구는 경매로, 누구는 아파트로 몇 배를 벌었다더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돈 앞에 장사 없었다. 각종 재테크 ‘고수’가 추종 세력을 몰고 다녔다. 박씨는 초창기부터 ‘고수익, 이것만 하면 무조건 된다’고 말하는 사기꾼주의보를 내렸다. ‘핫’한 정보를 찾는 사람들은 블로그로, 유튜브로 이동했다. 족집게 정보를 찾던 이들의 종착지가 부동산시장이었다.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의 욕망이 그랬다. 갭투자를 해라, 어디에 청약을 해라, P(프리미엄) 얼마 받았다 등등 위주로 흘러갔다.”

박씨의 강의를 들었던 회원 한 명이 5년 만에 그를 찾았다고 한다. 소위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 기획조정실에 근무했던 엘리트 회원은 유명한 경매와 부동산 강의를 찾아들었고 이후 갭투자로 다주택자가 되었다. 3억원이었던 그의 순자산은 총자산 50억원으로 불었다. 그중 40억원이 부채지만, 부동산 투자 성공 사례로 통한다. “순자산이 3억원에서 10억원으로 굉장히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질은 달라진 게 없었다. 나처럼 (여유롭게) 살고 싶다고 하더라. 부동산 시세라는 그 가상의 숫자에 매어있는 거다. 오르면 팔아서 또 사는 걸 반복하고 있다. 지금 재테크 한다는 사람들의 특징이 그렇다.”

박씨는 초창기부터 부동산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부동산 위주의 자산만 많아지는 가짜부자(자산부자)가 아닌, 진정한 시간과 돈의 흐름이 발생하는 진짜부자(현금흐름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부동산이 대세가 되면서 게시판은 부동산 관련 글로 도배됐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바뀔 때마다 찬반양론이 난무했다. 소위 보수와 진보가 갈렸다. 박씨는 정치적인 글을 많이 올리는 회원을 ‘강퇴’시키기도 했다. ‘도배 금지’를 두고 찬반 투표도 있었다.

회원들이 정치적으로 양극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박씨는 참담해지기도 했다고 밝혔다. 다소 격앙된 반응을 보이던 박씨는 재테크 시장의 전성기를 혼탁하게 가속화시켰다는 자책이 든다고 했다. 텐인텐이 재테크를 부추겼고, 결과적으로 ‘부동산밖에 답이 없다’ 여기는 이들을 양산했다는 자괴감이다.

“부동산 시세라는 허상만 믿고 경제 공부를 하지 않는다. 부동산 시가가 국내 GDP의 약 8배(1경2121조원)에 달하는 게 과연 정상적인 것인가에 대해 제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재테크를 왜 하느냐는 담론에 대한 고민이 없다. 부동산, 비트코인, 펀드… 남들이 한다고 하면 휩쓸려서 게임하듯 한다.”

박씨는 기축통화, 버핏지수 등을 운운하며 ‘공부’를 강조했다. 왜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중단하고 전기차가 이슈가 된 건지, 왜 테슬라가 자동차업계 시가총액 1위가 됐는지 큰 흐름을 읽어야 한다고도 했다.

■ 진짜 부자란

“ ‘요즘 어디 10억이 부자냐’라고들 얘기한다. 노동으로 번다고 하면 터무니없이 큰돈임에도 불구하고 ‘가짜 자산’에 현혹되다 보니 그렇게 보는 거다. 당장 팔지도 못하고 소비로도 연결되지 못하는 자산이 바로 부동산이다. 대한민국 경제에 암적인 존재가 토건세력이다. 부동산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는)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외환위기 시절 떠올리면서 막연하게 뭔가 되겠지, 하는 것 같다. 월급은 안 오르고 출생률은 떨어지고 취업도 안 되고 1인 가구가 늘어나는데, 아파트는 늘어난다? 이 미스매칭의 세계. 50대가 대출 받아서 부동산시장을 떠받치는 마지막 세대인데 그들이 은퇴하면 부동산은 하락한다고 본다.”

박씨 본인이 아파트로 재미를 못 봤기 때문에 이렇게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 아닌가 묻자, “(그렇게 봐도) 상관없다”고 답했다. 자산을 더 키우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에너지가 소모되고 욕심이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평소 자주 걷는다는 그는 “비가 와서 스파크(경차)는 집에 세워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신라호텔 망고빙수 사먹을 돈으로 신라호텔 주식을 사라고 조언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주식 사놓고 마음 졸이느니 망고빙수를 먹고 당장 행복해지겠다는 이들도 있다. 박씨는 의외로 후자에 힘을 실었다.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경제적 자유의 핵심은 자신의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것과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부자라고 하면 화려하게 꾸민 외양부터 보여주는 미디어도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부자 중에 계속 쌓아두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럼 영원히 불안하다. 100억원이 있어도 불안하다. 대한민국에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많다. 자존감이 없기 때문에 강남으로, 외제차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이다.”

텐인텐은 박씨에게 여러 가지 감정을 불러낸다. “20년 독재”라며 웃었지만 카페를 닫을 수는 없다고 했다. “여러분들이 만든 문화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장회정 기자 long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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