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사이트] 유엽이의 마지막 일주일..17세 소년은 왜 죽었나

곽승규 2020. 8. 1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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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 유엽의 버킷리스트

- 찜질방 가서 밤새우기 - 저녁노을 함께 보기 - 함께 장 봐서 요리 같이해서 먹기 - 건강하실 때 잘해드리고 효도하기 - 20년 후에 공기 좋은 곳에서 같이 살기 -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

유엽의 책상 위에 놓여있는 버킷리스트 목록입니다.

하고 싶은 일들은 남아 있지만 책상의 주인은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평범한 어느 날, 유엽이가 쓴 버킷리스트만이 이제 유언처럼 남게 됐습니다.

# 3월 10일

비가 오는 쌀쌀한 날씨였습니다.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된 둘째날이기도 했습니다.

유엽 군은 아버지와 함께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일곱 군데 약국을 돌아다녔지만 마스크 한 장 구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행히 집 앞 약국 한 곳이 저녁 6시부터 선착순으로 마스크를 팔겠다는 공고문을 붙였습니다.

다시 한 시간여를 기다렸습니다.

어렵게 마스크를 구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 3월 11일

자고 일어난 유엽이가 밤사이 열이 많이 났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한창 젊은, 17살 고3 학생인 유엽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해열제를 먹였지만 열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마음도 애가 타기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병원에 갈 수는 없었습니다.

바로 옆 대구의 신천지 교회에서 시작돼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던 시기.

정유엽 군이 살고 있는 경북 경산의 확진자만 해도 5백 명이 넘었고, 큰 병원이 몰려있는 대구조차 환자가 너무 많아 입원도 못하고 죽는 이들이 속출했습니다.

확진자 방문으로 병원 응급실 폐쇄가 잇따르자 정부는 열이 나더라도 당장 병원에 가지 말고 이틀 간 집에서 경과를 지켜볼 것을 당부했습니다.

유엽이 부모님은 이 말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 3월 12일

체온계가 고장 난 줄 알았습니다.

저녁이 되자 열이 42도까지 치솟았습니다.

1339에 연락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인 경산 중앙병원을 안내해줬습니다.

저녁 7시 30분 무렵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앙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선별진료소를 거쳐 코로나19 확진자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아야만 진료를 받을 수 있는데 선별진료소는 저녁 6시에 문을 닫았습니다.

의사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며 내일 오전에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부모님은 발을 동동구르면서도 유엽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희들이 갑자기 응급실에 갔다가 폐쇄가 되면 큰 일 나는 거 아니에요. 다른 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 못 받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시키는대로 그냥 그렇게 열이 나도 집으로 올 수밖에 없었죠." - 故 정유엽 군 어머니 이지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근처 또 다른 종합병원은 밤 10시까지 운영됐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 3월 13일

다음 날 아침 일찍 선별진료소를 찾았습니다.

코로나19 검사를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했습니다.

또 귀가 조치됐습니다.

오후 들어 유엽이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됐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어머니가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제서야 의사는 "오전에 소견서를 써줄 지 사실 고민했었다"고 말했습니다.

빨리 써달라고 하자 병원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병원장이 나왔습니다.

들려준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마도 오늘 저녁을 넘기기는 힘들 것입니다"

유엽이 아버지 정성재 씨는 사실 직장암 3기 투병 환자였습니다.

아버지는 손이 떨려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었습니다.

대구에 있는 상급병원으로 유엽이를 이송하길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했습니다.

코로나19 환자일지도 모른다며 구급차에 유엽이를 태우길 거부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퇴근길 막힌 도로를 뚫고 어떻게 운전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1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한 대구 영남대병원에 유엽이가 입원했습니다.

코로나19 환자로 의심되던 유엽이는 지퍼백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는 지퍼백을 닫아줬습니다.

그게 살아있는 유엽이를 본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 3월 14일 ~ 17일

유엽이는 여전히 코로나19 의심환자였습니다.

비슷한 검사를 13번이나 더 받아야했습니다.

부모님조차 얼굴을 볼 수도 없었습니다.

폐에 스탠스 시술을 한다고 해 동의서를 써줬습니다.

출혈이 엄청나게 났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었습니다.

수술 과정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지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습니다.

유엽이 부모님의 기억 속에 강하게 남은 장면은 따로 있습니다.

반복되던 코로나19 검사가 계속 음성이 나오던 중 한번 양성으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흥분한 의료진이 뛰어나와 부모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논문으로 써 세계적으로 보고될 만한 일입니다"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한 고령의 사망자가 속출하던 당시, 유엽이의 죽음은 젊은 환자의 사망사례로 언론에 대서특필됐습니다.

이후 질병관리본부는 영남대병원 검사 과정에서 오염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고, 최종 사인은 급성 폐렴으로 판명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오진이었지만 사과를 받진 못했습니다.

죽어가던 아이를 둔 부모 앞에서,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던 의사의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질 않습니다.

# 3월 18일 그리고 지금

유엽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코로나19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했습니다.

어느덧 유엽이가 세상을 떠난 지 다섯 달이 되가는 지금.

부모님은 시민사회 단체와 함께 진상조사단을 꾸리고 거리에서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유엽이 같은 경우가 이게 그냥 지나가고 묻히잖아요? 그렇게 되면 의사들은 또 당연히 그렇게 생각을 할 거예요. 아, 그때 보니까 유엽이 사건에 자기네들이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방치해도 아무 책임이 없더라. 그냥 면죄부가 주어지더라. 이렇게 되면 또 방조, 뭐 살인. 이건 완전 진짜 살인 방조와 똑같은 개념이거든요. 이런 것들이 또 다른 사람들이 2차, 3차 유엽이 사례가 또 나올 수 있는 진짜 최악의 선례가 되는 거잖아요. 막아야죠 이거는."

(곽승규)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5869306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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