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파구 못찾은 '패닉바잉 30대'.. "집도 못 사는데 전세까지 말랐어요"
정부는 오는 2028년까지 서울과 수도권에 신규 주택을 총 13만2000가구 추가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내놓은 수도권 공급책으로 30대 전후의 ‘패닉바잉(Panic Buying·공포에 의한 매수)’이 멈출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대로는 패닉바잉을 잠재울 수 없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대기 수요보다 공급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급 대책의 상당수가 공공임대나 공공분양으로 편성되면서 패닉바잉에 주로 나섰던 흙수저 맞벌이 부부는 여전히 공급대상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통상 월 소득이 높은 맞벌이 부부는 공공 임대와 공공 분양의 조건에서 제외된다.
문제는 임대차 3법으로 내 집 마련의 디딤돌이 되는 전세 물건을 찾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공급책이 나오면서 대기 수요자들이 생겨 전세시장의 불안 요소는 더 커졌다"고 분석했다.
◇ "공급 여전히 부족하다"… 서울 신축 대기수요 51만명
9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8·4 대책에서 새로 공급하겠다고 밝힌 13만2000가구 중 절반 이상인 7만가구는 재건축·재개발에 의존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유휴지 활용 문제도 주민 반발 등으로 공급까지 이어지려면 갈 길이 먼 상태다.
문제는 신축 대기 수요가 공급량보다 많다는 점이다. 한국감정원 청약홈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서울 지역의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처음으로 600만명을 넘었다. 이 가운데 51만4000명은 가입 15년을 넘긴 이들이다. 미성년자 때부터 가입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신축 아파트 청약 당첨을 기다리는 수요자가 사상 최대다.
이 때문에 정부가 내놓은 공급책만으로는 집값 상승을 막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신축 공급은 물론 기존 매물도 같이 나와야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거래세와 양도세를 낮춰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내놓아야 공급책과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했다.
◇ 공급 대책 나왔지만… 20·30세대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
정부는 젊은층의 패닉바잉을 진정시키기 위해 ‘지분 매입형’ 아파트를 도입하지만, 이 역시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분 매입형 공공주택은 8년 임대 거주 후 분양가의 40%를 내고 분양 전환한 후 나머지 60%는 20년 또는 30년에 걸쳐 분납하는 방식이 적용된다. 분양전환 시점에 일단 60%의 지분은 공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갖고 계약자가 납부한 분양대금만큼 점차 지분을 늘려가는 방식이다.
정부는 젊은 층의 당첨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별도의 소득·자산 기준을 두는 등 입주자격 역시 기존 공공분양 아파트와 차별화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2028년까지 지분적립형 주택 공급 가능한 물량을 공공·민간 1만7000가구로 보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에 다니는 흙수저 맞벌이 부부들의 상실감은 여전하다. 30대 맞벌이 유모씨는 "치열하게 공부하고 취업해 부모의 경제적 도움 없이 생애 첫 내 집 마련을 계획하는 맞벌이인데 상대적으로 나은 직장을 다닌다는 이유로 우리 부부는 무주택 실수요자가 아니다"라면서 "특공 기준의 외벌이 소득과 맞벌이 소득이 왜 10%포인트밖에 차이가 안 나도록 설정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공공분양으로 공급된다고 해도 청약 가점이 높은 수요자가 워낙 많고 소득이나 자산에도 제한이 있기 때문에 당첨 가능성이 희박하다"면서 "최근 패닉바잉을 한 수요자들은 대출을 받아서라도 내 집 마련을 하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큰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씨 마른 전세… 불안은 더 커져
부동산 전문가들은 공급책에 대한 시그널을 준데다 임대차 3법 통과 여파로 임대차 시장이 더욱 불안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저금리 시대에 들어서면서 전세 보증금으로 인한 이자 수익확보가 어려워진 영향도 있다.
전셋값은 이미 급등하고 있다. 최근 서울 전셋값은 올해 들어 최대폭으로 상승했다. 경기도 전셋값도 올해 최대폭으로 올랐고, 세종 전셋값은 2012년 12월 이후 약 7년 8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에 따르면 이달 첫째 주(3일) 기준 서울 전셋값은 0.17% 올랐다. 전주(0.14%)보다 상승폭이 확대됐고, 올 들어선 상승폭이 가장 크다. 경기도 전셋값도 0.29% 올랐다. 여권에서 ‘세종 천도(遷都)론’이 나오자 세종 전셋값은 한 주 동안 2.41% 뛰었다.
7·10 대책으로 보유세가 높아진 집주인들이 오른 세금만큼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돌리고 있는 것도 전세 물건이 메마른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 강서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중개업소를 차린지 10년이 넘었지만, 요즘처럼 전세 물량이 적었던 적은 처음인 것 같다"면서 "저금리에다가 세금 인상, 임대차 3법과 다주택자 정부 규제로 전세 물건이 줄고 반전세로 전환하는 집주인들도 늘어났다"고 전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주택매매 시장은 당분간 관망세로 접어들어 들겠지만, 대기 수요자들이 임대시장으로 이전하면서 임대차 시장의 불안 요소는 증폭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미 임대차 3법 등으로 전셋값이 불안정한 상황"이라면서 "공급책이 나오면서 대기 수요를 만들어 전세 수요도 더 늘어나는 경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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