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의 지식카페>언덕 아래 미풍 흐르게, 태평양 강풍 견디게.. 지상 최고 '바람의 건축'

기자 2020. 8. 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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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리 치바우 문화센터는 곡면으로 만든 여러 건물로 나누고 이를 일렬로 배치해 바람을 흐르게도 견디게도 만들었다. 사진 출처 Pinterest
‘바람의 건축’ 내부구조는 강풍에 견디게 입체적 셸 구조로 이뤄졌다.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풍경 - (34) 장마리 치바우 문화센터

호주옆 섬 뉴칼레도니아의 수도 위치… 원주민 전통가옥 ‘카즈’ 본떠 바람 대하는 지혜 얻어

‘바구니’ 외형과 달리 내부는 강철·목재 투입 현대적 기술의 셸 구조… 시속 230㎞ 사이클론 이겨내

바람은 공기의 흐름이며 흘러가는 공기 자체다. 바람은 어디에서나 불어오지만 무언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표현하기가 아주 어렵다. 바람을 글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는지, 갑골문자는 획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데다가 발음이 같은 ‘鳳(봉)’ 자를 빌려서 바람이라는 뜻을 글자로 그려냈다. 봉새의 날갯짓이 바람을 만든다고 봤기 때문이다. ‘凡(범)’은 돛을 그린 것인데, 돛단배는 움직이는 바람을 강조한다. 이 글자 안에 벌레 ‘虫(충)’을 넣어 바람이라는 글자 ‘風(풍)’을 만들었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면 벌레들이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鳳’과 ‘風’은 같이 쓰였다. 그런가 하면 바람이 자고 그치는 뜻의 글자는 ‘風’에 멈출 ‘止’(지)를 넣어 ‘凪(지)’라고 만들었다.

집의 첫째 역할은 비와 바람,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는 것이니, 바람은 건물에 아주 가까운 자연이다. 집은 불어오는 바람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막을 수도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창을 열고 바깥 공기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강한 바람은 집 위를 지나가면서 지붕을 잡아당긴다. 바람이 센 곳에서는 바람의 부력으로 지붕이 날아가지 않게 집을 낮게 하고 이엉을 동아줄로 묶는다. ‘배산임수(背山臨水)’도 여름에는 집 앞에 있는 강을 스쳐온 시원한 공기가 집 안의 더운 공기를 이동시키고, 겨울에는 반대로 집 뒤에 있는 산이 바람을 막아주던 그야말로 ‘바람의 건축’을 만드는 기본 원리였다.

여름옷은 구멍이 많이 뚫려 있고 겨울옷은 구멍이 거의 없는 옷감으로 만든다. 움직이지 않는 집도 옷감처럼 바람이 통하게 벽에 낸 구멍이나 창문으로 바람이 드나든다. 그래서 영어로 창을 ‘window’라 하는 것은 그것이 ‘바람의 눈’ 곧 ‘바람의 구멍’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바람구멍도 옷감처럼 더운 곳은 크고 추운 곳은 작아야 하므로, 바람구멍은 바람에 순응하는 지역성의 건축물을 만드는 바탕이었다. 그러니 집의 벽, 지붕, 담장은 모두 사람이 오랫동안 살아가면서 그 지역의 바람을 읽어낸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집은 바람을 막은 것이 아니라, 집에 바람이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람의 건축’이 오늘날에는 더 잘 만들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바람의 건축’은 건축을 원초적인 상태로 돌아가게 한다. 그리고 무릇 사람은 자연과 함께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근본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호주 동쪽에 있는 프랑스 자치령인 작은 섬 누벨칼레도니(Nouvelle-Caledonie, 영어로 New Caledonia)의 수도 누메아에는 장마리 치바우 문화센터(Jean-Marie Tjibaou Cultural Centre)가 있다.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이탈리아의 건축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가 1993년에 설계해 1998년 개관했다. 이 건물은 내가 아는 한 최고의 ‘바람의 건축’이다.

이 건물의 대지는 누메아에 가까운 티나(Tina) 반도에 있다. 반도라 하지만 한쪽은 바깥 바다인 태평양, 다른 한쪽은 반쯤은 호수처럼 에워싸인 안 바다 사이에 있는 곶(串)이다. 이런 곳에 미처 다 만들지 못한 바구니처럼 보이기도 하고, 마치 땅에서 막 자라 올라온 식물처럼 보이는 건물들이 삼면의 물에 둘러싸여 있다. 이 건물을 ‘카즈’(case, 오두막)라 부르고 있는데, 낮은 것은 20m, 높은 것은 28m로 크기가 다른 세 종류의 건물 10채가 일렬로 서 있다.

건축하는 사람들은 자연과의 조화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이 건물이야말로 자연에 거스른 데를 찾아볼 수 없는, 문자 그대로 바람, 땅, 나무, 지역, 전통과 조화를 이룬 건물이다. 피아노는 원주민인 카낙(Knak) 사람들이 자연환경과 밀접하게 생활하는 자세를 눈여겨보고 배운 바를 바탕으로, 새 건물은 환경에 “한 숟갈 개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사실 어떤 건물도 광활한 자연 앞에서는 그저 한 숟갈 얹듯이 개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건물은 남쪽으로 불어오는 모든 바람을 향하는 반도의 언덕 꼭대기에 서 있다. 건축과 경관이라 하지만, 이 건물의 경관은 다름 아닌 사방에서 불어오는 보이지 않는 바람이다. 이 자리는 강한 직사광선과 열에 노출돼 있으면서, 내륙으로 불어오는 알리제(alize)라는 무역풍과 사이클론에 의한 강풍과 대면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땅은 이점도 있었다. 대지가 가파른 남쪽 사면을 두고 해수면보다 높이 올라와 있어서 육지와 바다의 온도 차이 때문에 바람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갈 때 바람에 의한 냉각 효과가 크다. 낮에는 시원한 바다의 산들바람이 불고 밤에는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바람이 분다. 이런 곳에서 늘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려면, 독립한 여러 건물로 나누고 그 건물 하나하나를 곡면으로 만들며 그것을 다시 일렬로 배치해야 했다.

바람을 대하는 지혜는 역시 카낙 사람들이 전통적인 카즈를 축조한 방식에 있었다. 카즈는 본래 초가집 지붕 아래에 중심의 큰 기둥이 우산처럼 받쳐주는 이들의 전통 가옥이었다. 이 지역은 겨울에도 18도에서 34도일 정도이고, 여름은 대양성 아열대 기후로 몹시 무덥고 습하다. 카즈는 천장이 높아 이런 기후에서도 시원한 공기를 관통시켜 더위를 해결해 줬다. 장마리 치바우 문화센터는 바로 이런 전통적인 카즈의 축조 방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피아노는 이렇게 말했다. “21세기에 들어서 있는 우리는 진보적이고 인간을 배려하는 기술을 사용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본적으로 기술은 집단기억이라는 관념에 대립하는 것이 아니며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전통 건물의 재료와 기술을 다시 서구의 재료와 기술과 융합해 집단기억을 되살린다는 것, 우리도 수없이 논의해 온 전통과 현대의 조화다. 그러나 피아노는 건축은 오래된 전통에 현대의 기술이 합쳐지는 것임을 장마리 치바우 문화센터에서 증명해 보였다.

‘바람의 건축’이라 하니 낭만적인 감성을 일으키는 그럴듯한 인문학적인 해설이 곁들여져야 할 것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파키스탄 등지에 오후의 시원한 바람을 받아들여 공기를 유통시키려고 ‘바드기르(badgir)’라는 굴뚝을 지붕 높이 올린 수많은 집을 보라. 이 ‘바람 탑’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어떠한 인문학적 해설로도 지을 수 없는 바람에 대한 기술의 결과물이다. 더구나 일정한 방향에서 불어오는 무역풍, 1월에서 3월 사이에 나타나는 저 무서운 사이클론을 상대할 수 있는, ‘바람의 건축’이란 철저한 기술 없이는 지어지지 못한다.

전통적인 카즈는 이 무역풍을 받아들이려고 풀을 엮어 만들었으나, 새 카즈의 외벽은 전통적이지만, 내부 전체는 완전히 현대 기술의 이점을 살려 곡면의 파사드에 집성목재판으로 뼈대와 널을 만들었다. 이를 위해 피아노는 이들이 써 왔던 전통적인 바구니 세공, 매트, 물고기 잡는 통발 등의 짜는 방법, 재료를 겹쳐 쌓으며 층을 이루는 방법을 철저하게 관찰한 다음 새 건물의 표면을 설계했다. 새 카즈의 표면은 기름 성분이 많아 햇빛이나 풍우에 내구성이 있고 흰개미를 막는 효과가 탁월한 가나산(産) 나무인 이로코(iroko)와 알로카리아 아교를 넣어 만든 합성목재판을 가로로 조밀하게 배열했다.

이 설계의 가장 큰 주제는 공조 기계는 수입해야 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에도 많은 비용이 든다는 점을 감안, 공조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 환기로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건축의 외벽을 두 켜로 만들고, 건물 자체를 그 켜와 켜 사이에 공기가 자유롭게 순환해 자연적으로 환기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똑바로 선 기둥과 굽은 기둥을 한 쌍으로 묶어 큰 기둥으로 삼고, 그 앞뒤에 루버를 댔다. 바깥쪽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계절풍 바람을 활용하도록 루버 밑은 조밀하게 위는 느슨하게 설치했다. 그리고 햇빛을 조절해 방에 그늘을 주면서도, 실내에는 바람이 약하면 신선한 공기를 받아들이도록 열리고, 바람이 강하면 닫히는 가동 루버를 설치했다. 이처럼 자연 환기 장치가 먼저 구상됐고, 그다음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구조체를 결정했다. 곧 공기의 흐름이 건축의 형태를 결정했다.

카낙의 건축 기술을 참조한 외피와는 달리, 구조는 시속 230㎞인 사이클론에 견디게 만들었다. 거대한 바구니 모양 안에는 지면에 닿은 곳까지 곡선으로 굽어 있는 바깥쪽 기둥과 똑바로 서 있는 안쪽 기둥을 밑에서 접합하는 한 쌍의 기둥으로 보고 이를 원형으로 배열했다. 이것만 보면 이 기둥은 금방 넘어질 것처럼 보이지만, 이 기둥들을 수직 방향의 가새 골조로 묶었다. 그 결과 전체가 입체적인 셸 구조가 됐다. 여기에 한 쌍의 기둥을 수평 방향으로는 벨트트러스(belt truss)로 묶어, 기둥이 평면적으로 회전하며 변형되거나, 셸 전체가 일그러지지 않게 했다. 새 카즈 한 채에 쓰인 목재는 300㎥, 강철은 5t일 정도로 현대적인 기술이 충분히 구사돼 있다.

건물 전체 모양은 밑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파인애플과 비슷하다. 그런데 안 바다 쪽을 향해서는 실내의 대류현상을 쉽게 일으키려고 파인애플의 위를 비스듬히 잘라낸 것처럼 경사 지붕을 얹었다. 이 경사 지붕에는 타원형 유리 지붕을 얹어 내부 공간을 투명하게 했고, 열고 닫을 수 있는 환기 커버를 붙여서 복사열을 피할 수 있게 했다. 구조만을 보면 이 경사 지붕 면 밑에도 수평 가새 골조를 걸면 바람이 불 때 생기는 횡하중의 변형이 생기지 않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지붕 유리의 투명성에 방해가 되므로 수평 가새 골조는 걸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구상된 구조와 루버 시스템 모델에 대해 사이클론에 충분히 견디는지 풍동 실험을 한 다음 설계를 결정했다.

똑바로 세운 기둥이 받쳐주는 안쪽 벽의 위와 아래에는 컴퓨터로 제어되는 가동 루버를 설치했다. 이것으로 바람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막기도 하면서 굴뚝 효과를 이용해 실내 공기의 흐름을 여러모로 바뀌게 한다. 벽에 부딪힌 바람이 잔잔하게 불 때, 적당한 세기로 불 때, 강하게 불 때, 저기압으로 불 때, 이 벽의 반대쪽에서 불 때 등 각각의 조건에 대응하도록 루버를 조절한다. 한자가 바람을 ‘風’이라는 형태로 표현했듯이, 장마리 치바우 문화센터는 이렇게 바람을 건물로 조형했다. 그러나 그것은 땅, 식생, 구조체, 재료 등에 대한 기술에 근거한 조형이었다.

바람은 물보다도 사람에게 훨씬 가깝다. 그러나 바람은 물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바람이 내 살갗에 와 닿든지, 아니면 창을 닫고 밖을 내다보며 흔들리는 나뭇잎을 봐야 바람이 부는지 알 수 있다. ‘바람의 빗’을 만든 스페인의 조각가 에두아르도 칠리다(Eduardo Chillida)는 “바람을 본 적은 없으나 구름이 움직이는 것을 본 적이 있고, 시간을 본 적은 없으나 떨어지는 낙엽을 본 적은 있다”고 했다. 바람은 이런 것이다.

‘바람의 건축’이란 단지 바람이 잘 통하는 집이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바람을 알게, 느끼게, 보이게 해 주는 건축, 바람 쪽에서 바라보는 건축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피아노가 이 건물을 설계하며 물었던 “건물이 어디에서 끝나고 자연이 어디에서 시작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건축일 것이다. 더운 여름, ‘바람의 건축’을 생각해 보자.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 용어설명

셸 구조(shell structure)

곡면 형태의 계란이나 조개껍데기는 비교적 얇은데도 외력에 강하고 잘 깨지지 않는다. 셸 구조란 이러한 성질에 착안해 고안된 것으로, 곡면판구조라고도 한다. 얇은 판에 곡률을 갖게 한 곡면판은 평탄한 판보다 강도가 높아지고, 지주 없이 긴 지붕을 만들 수 있다. 구형, 원통형, 파라볼로이드(포물면)형, 하이퍼볼릭 파라볼로이드(쌍곡포물면)형의 셸이 있다.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지붕이 대표적인 셸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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