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투자 잘못했다고 김현미에 욕먹었던 김중수, 지금 웃고 있다

김은정 기자 2020. 7. 31.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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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 고공행진.. 한은 2兆 평가익
김중수 前 한국은행 총재

"금(金)을 사랑한 총재, 3년간 5조5000억원 투자했는데 1조2000억원 잃으셨네요. 금 가격도 제대로 예측 못 하고 국가적 투자 손실을 가져왔어요!"

2013년 10월 1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부에 차려진 국정감사장. 김현미 당시 민주당 의원(현 국토교통부 장관)은 김중수 당시 한은 총재를 향해 송곳 질문을 날렸다. 이날만이 아니었다. 김 전 총재는 이때를 전후해 가는 곳마다 쏟아지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는 "투자이익이 아니라 자산 다각화를 위한 것이다" "10년 후를 보고 고민한 것이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며 진땀을 뺐다.

그로부터 7년 뒤인 2020년 7월, 한국은행이 남몰래 웃고 있다. 국제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해 이제까지의 투자 손실을 모두 만회했을 뿐만 아니라, 매입 때 대비 2조원 가까운 평가차익을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욕먹던 金투자, 드디어 빛 봤다

한은은 올 6월 말 기준 금 104.4t을 보유하고 있다. 장부가격(매입원가)으로는 47억9000만달러어치로, 우리나라 외환보유액(4107억5000만달러)의 1.2%를 차지한다.

29일(현지 시각) 뉴욕 상품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금이 전날보다 트로이온스(31.1g)당 0.5% 오른 1953.4달러에 거래를 마쳐 사상 최고 기록을 나흘 연속 갈아치웠다. 한은이 가진 금을 현 시세로 환산해보면 335만7000여 트로이온스로 약 65억6000만달러, 장부가(취득원가·47억9000만달러) 대비 약 40% 올랐다. 우리 돈으로 평가차익이 2조원이 넘는다.

한은은 사실 금에 관해 상당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이성태 총재 시절인 2010년까지만 해도 한은이 가진 금은 미미했다. 국제 금값이 크게 출렁거려 안정적인 투자를 해야 하는 중앙은행으로선 투자하기 적절치 않다는 게 이 전 총재의 지론이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바통을 이어받은 김중수 총재가 투자처 다변화 차원에서 금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 2011년부터 2013년 초까지 3년 동안 90t을 집중 매입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금값 그래프가 가파르게 꺾였다. 2010년 유럽 재정위기 확산과 미국 신용등급 강등 검토 등으로 달러는 약세로, 안전자산인 금값은 1200달러에서 1900달러로 로켓처럼 튀어올랐다. 한은은 금값 고점 부근과 도로 하락하던 국면에 집중적으로 금을 사들여 내내 '실패한 투자'로 고통받았다. 2013년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한은은 금붙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코로나가 촉발한 안전자산 선호 현상 덕분에 '망한 투자'가 '잘한 투자'로 평가받게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금을 당장 팔아 수익 실현을 할 것도 아니다"라고 전했다.

◇전쟁통에 잃어버리고… 한은, 금 수난사

한은이 가진 금 104.4t은 세계 최대 금시장인 영국의 중앙은행(영란은행) 지하 창고에 순도 99.5% 400트로이온스(12.5㎏) 금괴 형태로 보관돼 있다. 한은은 영란은행에 상당한 금 보관료를 내야 하지만, 글로벌 투자은행 등에 금괴를 빌려주고 받는 수익으로 이를 충당한다.

영국의 금 산업 관련 연구소인 '세계금위원회(WGC)'가 최근 발표한 '세계 공식 금 보유량' 통계를 보면 한은의 금 보유량은 세계 중앙은행 중 35위다. 금이 가장 많은 나라는 역시 미국으로, 우리나라의 78배인 8133.5t에 달한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상당량의 금을 갖고 있고, 최근엔 중국과 러시아, 인도 등 신흥국들이 금 사 모으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전쟁 발발 불과 2주 전 창립해 올해 70주년을 맞은 한국은행에는 금과 관련해 잊지 못할 일화가 또 있다. 한은 70년사를 보면, 한은은 전쟁이 터지고 이틀 뒤인 1950년 6월 27일 서울 본점에서 지금은(地金銀) 89상자(순금 1070㎏과 은 2513㎏)를 군 트럭 한 대에 싣고 경남 진해 해군통제부까지 내려간다. 서울에서 진해까지 꼬박 이틀이 걸렸다고 한다.

이후 피란길을 떠난 금은 부산을 거쳐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그 뒤 뉴욕연방준비은행에 임시 보관됐다가 1995년 우리나라의 IMF(국제통화기금)·IBRD(국제부흥개발은행) 가입 때 지분 출자 대납물로 활용되기도 했다. 전쟁통에 상황이 급박했던 나머지 금 260㎏과 은 1만6000㎏은 미처 트럭에 싣지 못해 북한군에 넘어가기도 했다. 현재 가치로 따지면 금값만 약 200억원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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