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예금 복리·핵폭발이 지닌 위력의 비밀은? [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 (6)]

이종필 교수 2020. 7. 30.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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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급수적 증가의 무서움

[경향신문]

코로나 확진자가 폭증할 당시 하루 만에 2배…이런 식의 증가를 흔히 기하급수적이라 한다. 기하급수적 증가에선 양이 지수함수적으로 증가…변수 커질수록 곱해지는 횟수 늘어 결국 그 어떤 다항함수보다 커지는 ‘무서움’ 이자에도 이자가 붙는 ‘복리’, 중성자가 일으키는 ‘연쇄핵반응’ 이 또한 바이러스가 퍼지는 상황과 똑같다.

벌써 몇 달째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우리에게 익숙해진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기초감염재생산수이다. 보통 R0로 표기한다. 이 값의 의미는 첫 확진자 한 사람이 2차로 몇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는지를 나타낸다.

만약 R0=2라면 확진자 한 사람이 평균 2명을 감염시킨다. 이때 기존 확진자로부터 새 확진자로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데 걸리는 시간(‘세대기간’)을 d일이라고 하면, 아무런 방역조치가 취해지지 않았을 경우 매번 d일이 지날수록 확진자 수는 2배씩 증가한다. 즉 d일이 지나면 확진자는 2배, 2d일이 지나면 4배, 하는 식이다. 이를 일반화하면 Nd만큼의 시일이 지나면 확진자는 2N만큼 늘어난다. 이 상태로 d일이 10번 지나면 확진자는 210=1024, 즉 1000배 이상 증가한다. 2020년 7월 현재 우리나라의 하루 확진자가 수십명이라 그 1000배면 수만명에 달한다.

지난 2월 확진자가 폭증할 당시에는 불과 하루 만에 확진자가 2배로 늘어나기도 했다. 이런 식의 증가를 흔히 기하급수적이라고 한다. 기하급수라는 말 자체가 일정한 비율로 증가하는 수들의 합이다. 기하급수적인 증가에서는 어떤 양이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한다. 물론 R0값이 1 이하이면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

지수함수는 그 어떤 다항함수보다도 더 빨리 증가하는 특성이 있다. 예컨대 2x과 x100을 생각해보자. x가 2나 3처럼 작은 숫자이면 2x보다 x100이 더 크다. 그러나 만약 x=10000 정도로 큰 숫자를 생각해보자. x100은 x가 크긴 하지만 곱해지는 횟수가 100으로 제한돼 있어 최종 결과는 그리 크지 않다. 반면 2x은 곱해지는 수인 2가 작은 수이지만 곱해지는 횟수인 x가 대단히 크기 때문에 최종 결과는 엄청나게 커진다. 여기서 지수함수의 특징을 알 수 있다. 변수가 증가할수록 곱해지는 횟수가 증가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그 어떤 다항함수보다 더 커진다. 기하급수적인 증가가 무서운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현상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확진자 1명이 일정 기간 동안 R0명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한다”는 말을 살짝 바꾸면 “세포 하나가 일정 기간 동안 R0개로 분열한다”로 변신시킬 수 있다. 사람의 언어와 그 언어가 기술하는 현상은 전혀 다르지만 그 속을 관통하는 무심한 수학은 모두 똑같다.

단세포인 수정란이 체세포분열을 계속하면 분열마다 2배의 세포가 생긴다. 사람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수가 대략 30조~40조개라고 하는데, 이렇게 큰 숫자도 겨우 45번의 세포분열이면 만들어낼 수 있다. 세포를 사람으로 바꾸면 인구증가율이 기하급수적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인구의 기하급수적 증가는 이미 18세기 말에 그 유명한 영국의 토머스 맬서스가 경고한 바 있다.

어떤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원인은 “그 양의 증가하는 정도가 원래 양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따옴표를 친 부분을 수식으로 그대로 옮기면 아주 간단한 미분방정식을 얻을 수 있고, 그 방정식을 풀면 곧바로 지수함수 형태의 풀이가 나온다. 대학교 1학년 수준의 미적분학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계산은 암산으로 할 수 있다. 확진자 모두가 바이러스를 주변 비감염자들에게 전파할 수 있으면 확실히 확진자가 늘어나는 정도는 원래 확진자의 숫자에 비례할 것이다. 그 결과는 기하급수적인 증가이다. 인구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이나 인도처럼 인구가 많은 나라일수록,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때 증가율이 크다. 특별히 그들이 교육받지 못했거나 계몽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단지 원래 인구가 많았다는 사실 자체가 인구증가율을 높인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복리로 붙는 이자의 원리 합계가 결국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결론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복리계산은 기하급수 계산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복리가 감염병 전파나 세포분열과 원리적으로 같은지는 언뜻 잘 와닿지 않는다. 자세한 결과를 알려면 수열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하지만, 복리의 기본원리가 이자에도 이자가 붙는다는 것을 안다면 원리금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을 추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자가 원금에 더해진 원리금이 새로운 원금처럼 작용해 이자가 붙기 때문이다. 그 결과 원리금의 증가량이 원리금 자체에 비례한다. 반면 단리계산에서는 원금에만 이자가 붙으므로 원리금의 증가량이 원리금 자체에 비례하지 않는다.

복리증식은 자본주의의 기본원리이다. 흔히 하는 말로, “돈이 돈을 번다”. 이 말이야말로 복리증식의 핵심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돈을 벌기 때문에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 돈의 증가량이 그만큼 더 커진다. 따라서 그 결과는 기하급수적 증가임을 추정할 수 있다.

매달 월급이 통장을 스쳐가기 바쁜 월급쟁이들에게는 말하자면 ‘돈의 재생산수’가 1 이하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재벌가의 재생산수는 1보다 훨씬 클 것이다. 달리 말해, 재산이 1억원인 사람과 100억원인 사람의 차이가 100배라고 말하는 것은 본질을 흐릴 수 있다. 왜냐하면 재산이 100억원인 사람은 이후 그 재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단지 가진 사람들이 정말로 많은 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기하급수적인 증가의 무서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아마도 핵폭발일 것이다. 원자번호 92번의 우라늄은 양성자를 92개 갖고 있다. 천연 우라늄의 0.7%는 중성자를 143개 갖고 있는 우라늄235(92+143=235)이다.

이 원자핵에 중성자를 발사하면 더 가벼운 원소인 크립톤과 바륨으로 원자핵이 쪼개지면서 2~3개의 중성자와 함께 에너지가 방출된다. 전체 에너지양은 우라늄 원자핵 질량의 1000분의 1 정도로서, 연소 같은 화학반응에서 나오는 에너지보다 대략 1000만~1억배 더 많다.

한편 핵분열 때 방출되는 중성자는 이웃한 우라늄235 원자핵을 두들겨 다시 원자핵을 둘로 쪼개면서 중성자를 방출시킨다. 결과적으로 핵분열 과정이 기하급수적으로 진행된다. 이를 연쇄핵반응이라 한다. 이 과정은 바이러스가 퍼져 나가는 상황과 똑같다. 평균 2개의 중성자가 이웃한 원자핵을 쪼갠다면 기초감염재생산수 R0가 2인 것과도 같다. 실제로 연쇄핵분열 반응에서 중요한 인수를 ‘재생인자(또는 유효 중성자 증식인자) k’라 부른다. k의 의미는 평균적으로 중성자 하나가 원자핵을 쪼갰을 때 그다음 세대에서 방출되는 중성자의 개수이다. 중성자를 바이러스로 바꾸면 R0와 그 의미가 사실상 똑같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k<1이면 연쇄핵반응이 유지되지 않을 것이고, k=1이면 연쇄반응이 항상 같은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고, k>1이면 기하급수적으로 폭발적인 핵반응이 일어날 것이다. 당연하게도 k=1인 경우가 핵발전소이고 k>1인 경우가 핵폭탄이다.

k=2이면 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2의 거듭제곱으로 원자핵이 쪼개지면서 에너지가 방출된다. 바이러스가 첫 확진자로부터 2차 감염자에게 전파되는 데에는 며칠이 걸릴 수도 있지만 하나의 원자핵이 쪼개지면서 방출되는 중성자가 다음 원자핵을 쪼개는 데에는 극히 짧은 시간만 소요될 뿐이다.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우라늄 폭탄인 ‘꼬맹이(little boy)’의 위력은 재래식 폭탄(TNT) 약 1만5000t 규모로, 하나의 우라늄235 원자핵이 약 80회 핵분열을 일으킨 결과다. 이 과정에 걸린 시간은 200만분의 1초에 불과하다. ‘꼬맹이’에 함유된 우라늄235는 60㎏이 넘는다. 그중에서 채 2%도 안 되는 우라늄만 핵분열을 일으켰다.

천연 우라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라늄238의 경우 하나의 핵이 쪼개질 때 나오는 중성자가 이웃한 원자핵을 다시 분열시키지 못한다.

그 결과 연쇄핵반응이 일어나지 않고 따라서 핵폭탄으로 만들 수 없다. 핵폭탄을 만들려면 순도 90% 이상의 우라늄235가 필요하다. 우라늄235의 순도를 3~5%로 대폭 낮춰 에너지가 폭주하지 않도록 조절한 장치가 핵발전소이다.

핵폭탄이 위험물질을 인위적으로 농축해 연쇄핵분열을 촉발시킨 물건이라면 자연에는 원래부터 원자가 불안정해 스스로 입자를 방출하면서 붕괴하는 원소들도 있다. 그 결과 원래 물질의 양이 줄어든다. 이런 원소를 방사성 원소라 한다.

어떤 원자가 붕괴할 것인지는 확률적으로 정해지지만 결국 원자가 많을수록 붕괴하는 원자도 많을 수밖에 없다. 즉 방사성 원소 또한 그 변화량이 원래 자신의 양에 비례한다.

따라서 방사성 원소의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변화함을 알 수 있다. 다만 방사성 원소는 입자를 방출하기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질의 양이 늘어나지 않고 줄어든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방사성 원소가 얼마나 빨리 줄어드는지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가 반감기이다. 반감기는 어떤 물질이 원래 양보다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갑상샘암의 원인이 되는 방사성 요오드의 반감기는 8일로 굉장히 짧은 편이다. 반면 핵무기의 또 다른 원료인 플루토늄239의 반감기는 약 2만4000년이다.

플루토늄239는 대단히 위험한 방사성 물질로 자연 상태에서는 극미량만 존재하나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에 1% 정도 포함돼 있다. 반감기가 3번 지나면 원래 양의 1/8=12.5%가 남고 4번 지나면 1/16=6.25%가 남으니까 원래 양의 5% 미만으로 줄어들기까지 4번이 넘는 반감기가 지나야 한다.

플루토늄239의 경우 4번의 반감기가 지나려면 9만6000년, 즉 거의 10만년이 지나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리시설의 안전연한이 대략 10만년이다. 땅속에 10만년 이상 묻는 것 말고는 인류는 아직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처리할 방법을 모른다.

▶이종필 교수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해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 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이종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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