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석의 푸드로지>'달달한 듯 슴슴한 듯'.. 한땐 넋 쏙 뺐던 외식 최고 메뉴

기자 2020. 7. 30.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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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고기는 한식의 ‘원조 슈퍼스타’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이야 흔전만전하지만 한때 불고기는 가정에서는 최상의 반찬이었고, 최고의 외식메뉴 대접을 받았다.
전남 광양 금목서회관의 광양불고기. 얇게 썰어낸 고기에 바로 양념을 발라 구리석쇠 위에서 굽는다.
다진 고기에 칼집을 내고 간장양념을 한 뒤 넓적하게 빚어 양면 석쇠로 구워내는 ‘바싹불고기’.

‘한식의 슈퍼스타’ 불고기

- 을지면옥

평양서 태어나 서울맛 가미

- 남포면옥

버섯만 넣어 고기맛에 충실

- 신촌 형제갈비

채 썬 대파의 아삭한 맛 일품

- 평가옥

고기에 밥 볶으면 군침 절로

- 광양 ‘금목서회관’

매실 소스에 재운 고기 최고

- 울산 ‘언양불고기’

단맛·불맛 스민‘바싹불고기’

지글지글 불고기가 프라이팬째 상에 오른다. 가족 모두 침을 꿀꺽 삼킨다. 손으론 젓가락만 만지작, 모두 상만 주시하고 있다. 밥상 위 ‘스타탄생’의 순간이다. 그랬다. 불고기는 그동안 한식의 슈퍼스타였다. 조용필이나 앙드레김급이었다. 가정에서 최상의 반찬이며, 외식에선 최고봉이었다. 외국에선 더 알아줬다. 한식 하면 불고기였다. 일제강점기에도 그랬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BTS에 비견할 수 있겠다.

소고기 뒷다릿살, 목심, 설도 등을 저며 미리 양념에 재웠다가(사실 잘 자진 않는다) 흥건한 육수와 함께 전용 불판에 올려 구워 먹는 불고기, 흘러나온 국물에 밥을 비벼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는 그 맛에 감히 따를 요리가 없었다. 양파와 설탕을 넣어 달콤하고, 살짝 탄 간장이 내는 구수한 그 향기는 불고기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외식거리가 천지인 지금도 너비아니부터 평양식불고기, 서울불고기, 언양불고기, 광양불고기 등 다양한 불고기가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단짠’의 매력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은 불고기, 시중 이름난 불고기 집을 두루 다녀오며 즐거운 식도락 여행기를 짜봤다.(사실 우래옥을 갔어야 하지만 하필 냉면 시즌이라 하도 줄이 길어 못 갔다.)

◇‘월남한 평양 불고기’ 을지면옥

평안도에서 내려와 서울의 명물이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원래 불고기는 면옥에서 많이들 판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부터 평양에서 유행하던 불고기를 월남한 냉면집에서 팔았으니 그렇다. 그래서 평양식 음식집에는 보통 어복쟁반과 불고기가 메뉴에 있다. 을지면옥은 월남해서 2대째 장사(의정부계 평양냉면집)를 하다 서울 입맛이 가미된 경우. 당시 가장 많은 직장이 있던 을지로 회사원들이 몰렸다. 저녁에 불고기를 집어 먹으며 작은 사치를 뽐냈다. 그렇게 불고기는 서울에 토착했다.

국물 흥건한 불고기를 가져다 불판에 부으면 금세 ‘치익’ 타들어 가는 그 향기에 벌써 매료된다. 양은 불고기판을 쓴다. 대충 거뭇거뭇 익어가면 가장자리 고인 국물에 냉면 사리를 만다. 고기와 메밀, 선주후면(先酒後麵)의 그 치밀한 조합과 구성에 미각적 포만을 느낀다. 요새 한창인 냉면 탓에 점심때 불고기를 사 먹기가 눈치는 좀 보이겠지만, 구수한 고기 맛에 계속 찾게 되는 집이다. 서울 중구 충무로14길 2-1. 4만8000원.

◇‘심심하면서도 달콤한 맛’ 남포면옥

서울 한복판에서 ‘불고기 외식집’으로 대대로 인기를 이어가는 집이다. 양념을 건건하게 해 고기 맛으로 먹는다. 고기는 한우를 쓰고 채소라 해도 달랑 버섯밖에 넣지 않았다. 대부분 한식에 빠지지 않는 대파조차 절제한 그 맛은 이 집 냉면과 똑 닮았다.

심심하면서 담백하고 구수하다. 구운 고기를 양념에 푹 담갔다가 우물우물 씹자면 달콤한 맛이 끝까지 묻어난다. 미리 오래 재워놓지 않아 선홍색이 선명한 불고기는 양념보다는 고기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둔 듯하다. 여느 집보다 ‘서울식’이란 느낌이다. 다른 집보다 덜 달다. 고기는 부드럽지만 씹는 느낌은 살렸다. 역시 면옥(麵屋)이라 냉면 사리를 꼭 넣어서 먹는 게 낫다. 서울 중구 을지로3길 24. 2만8000원.

◇‘명불허전 갈비집 불고기’ 신촌 형제갈비

생갈비 등 고기로 유명한 서울 신촌의 외식 명소가 이 집이다. 이 부근에 많이 모인 대학가 졸업·입학식에 빠질 수 없던 불고기가 바로 형제갈비 불고기다. 학생들이야 언감생심. 어쩌다 취업한 선배가 찾아와 사주기도 했겠지만 그러기엔 벅차게 고급이다.(뭐 소개팅이라도 시켜줬다면 그럴 법하다.)

젊은 층이 몰리는 대학가 주변이라 그런지 양념에 단맛이 강하게 느껴진다. 미리 양념에 재워놓아 한없이 부드러운 불고기. 그야말로 옛날식이다. 대신 채 썬 대파를 가득 올려 단맛을 잡아준다. 고기야 금세 익으니 아삭한 대파를 함께 맛보면 식감의 대비가 좋다. 넓적한 새송이 버섯도 고기를 싸먹기에 딱 맞다. 당면도 들었지만 역시 메밀냉면이 있어 곁들이기 좋다. 1인분 1만 원으로 저렴하다. 메뉴별로 층이 정해져서 불고기를 먹으려면 4층에 가야 한다. 서울 서대문구 명물1길 2. 1만 원.

◇‘강남불고기’ 평가옥

경기 성남(분당)에서 시작해서 ‘강남’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평양 음식 계열이다. 당연히 불고기도 냉면, 어복쟁반 등과 함께 대표메뉴에 이름을 올렸다. 북쪽 입맛 특유의 진하지 않은 양념에 재운 불고기. 고기는 육향이 진하고 씹는 내내 구수한 맛이 감돈다. 얼핏 봐도 핑크색 고기가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양념은 색이 옅은 대신 짭조름하다. 팽이버섯과 양파 등이 들어가 맛을 보조한다. 양파가 함께 익어가면서 은근한 단맛을 내니 비로소 종합적인 맛이 완성돼 입에 짝짝 붙기 시작한다. 얇게 저며낸 고기는 의외로 기름기가 충분해 나중에 밥을 볶아먹거나 비벼 먹기에도 좋다. 가족 단위 방문객 중 어르신이나 아이가 있대도 가족 모두가 좋아할 맛이다. 돈을 낼 사람만 많이 주문하기 꺼려질 뿐이다. 성남시 분당구 느티로51번길 9. 3만2000원.

◇‘천하일미 마로화적’ 금목서회관

전남 광양 하면 불고기를 떠올릴 정도로 대표 음식이 바로 광양불고기다. ‘마로화적(馬老火炙)’으로 조선시대 이미 명성을 얻었다. 혹자는 ‘불고기’란 말이 원래 우리 말에 없었다지만, 이미 화적(火炙)이 있었다. 숯, 구리 석쇠, 즉석 양념 등 광양불고기의 특성을 제대로 살린 집이 광양 읍내에 있다. 금목서회관에선 역시 광양 특산물인 매실과 효모를 써 진하지 않은 양념을 바로 버무려 내는 불고기를 맛볼 수 있다.

숯부터 좋다. 참숯에 놋 석쇠를 올리고 얇게 썰어낸 불고기를 구워 먹는다. 불고기판이 아니라 석쇠다. 하나씩 뒤집지 않고 집게로 한 방향으로 몰아 굴리듯 구우면 좋다. 살짝이 양념만 타들어 갈 정도면 바로 먹어도 좋다. 각종 나물 등 반찬도 좋아 불고기 한상 차림에 딱 어울린다. 광양시 광양읍 읍성길 199. 2만4000원

◇‘물기 제로 바싹불고기’ 언양불고기

196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 현장 주변에서 인기를 얻다가 입소문을 타서 전국으로 명성이 퍼진 경남 언양 지방 불고기다. 흔히 알던 불고기 형태가 아니라 ‘바싹불고기’의 별칭이 붙었다. 고기를 다지듯 저며 칼집을 낸 후 간장 양념을 한다. 물기 없이 넓적하게 빚어 놓은 것을 생선을 굽듯 뒤집어 익힌다. 이 때문에 보통 석쇠는 2장짜리 양면 석쇠를 쓴다. 양념에 양파나 대파 등 채소를 거의 쓰지 않고 마늘과 버섯 정도만 고명으로 올려 순수한 고기요리다운 면모를 과시한다.

KTX 울산역 근처 언양읍 공원불고기는 전통식 언양불고기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딱 싫지 않을 만큼의 단맛에다 향기로운 불맛이 스며들어 젓가락의 넋을 쏙 빼놓는다. 곁들여내는 반찬도 밥과 함께 주는 된장도 모두 잘한다. 울산 울주군 언양읍 헌양길 32. 1만9000원.

놀고먹기연구소장

- 불고기의 변신

오삼·쭈삼·불낙…추가재료따라 이름 바꾸다 이젠 햄버거에도 활용

불고기는 이제 대중적 ‘구이’ 요리의 대명사가 됐다. 돼지 불고기와 닭 불고기, 오리 불고기에 이어 해산물까지 끼어들었다. 어떨 때는 정작 주재료인 소고기는 빠진 채 삼겹살에 오징어를 섞어 오삼불고기, 주꾸미를 넣고 쭈삼불고기가 됐다. 불낙(불고기 낙지전골) 등 이름만 남았다가, 그나마 ‘불’자의 소유권도 매운 양념(불닭, 불족발 등)에 빼앗길 지경이다.

고기구이가 값비싼 재료인 꽃등심, 생갈비 등 고급 로스구이로 상승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이, 양념육인 불고기는 예전 최고 외식의 지위를 내준 채 대중의 눈높이로 내려온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나마 ‘최고 회식 메뉴’ 자리도 삼겹살에 밀려난 형국이다. 이제 불고기는 술보다는 밥과 더 친숙하게 됐다. 대학가나 기사식당에 값싼 1인 메뉴로 ‘뚝배기 불고기’가 등장했을 정도다. 익숙한 불고기 향은 롯데리아,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에도 적용돼 불고기 버거가 됐고, 김밥집에선 불고기 김밥으로 남았다. 심지어 불고기 시즈닝까지 등장했을 정도로 김치와 함께 한식 대표메뉴가 됐다. ‘최상’을 내려놓고 ‘일상’ 메뉴로 전락한 느낌이다.

하지만 외국인에게는 여전히 불고기의 명성이 드높기만 하다. 2020년 6월 서울관광재단의 조사 발표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이 만족한 한식 순위에서 불고기는 절반에 가까운 41.9%가 만족했다고 응답 1위에 꼽혔다. 비빔밥(35.0%), 치킨(24.2%), 삼겹살(20.9%), 김밥(12.4%) 등이 뒤를 이었다. 하물며 외국 군대의 전투식량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미국 군사전문 신문 ‘성조지(Stars & Stripes)’에 따르면 미 육군의 차세대 전투식량에 불고기를 포함시키기로 했다. 불고기를 에너지바 형태로 개발, 2023년부터 보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래저래 명불허전 불고기는 ‘한식의 스타 지위’만큼은 놓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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