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한의 주토피아] "이미 분양가가 시세보다 싼데 분양가상한제 무슨 역할 할까"

2020. 7. 2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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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은 결국 분양가상한제(이하 분상제) 유예기간인 이달 28일까지 분양을 하긴 힘들 것 같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일반분양에 필수적인 ‘분양보증’을 무기로 3.3㎡당 분양가를 3000만원 위로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상제 시행을 앞두고 다급해진 조합이 3.3㎡당 2978만원에 분양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를 반대하는 조합원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기존 조합 집행부를 불신임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결성되고, 조합원 간의 갈등이 심각해졌다.

오랫동안 사업을 추진해온 조합원들은 주변 집값보다 싸게 내놔야 하는 상황에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이 단지 건너편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84㎡(이하 전용면적)는 지난달 17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주변 대부분 단지 실거래가는 이미 3.3m²당 5000만원이 넘었다.

서울엔 이런 처지의 재건축 단지가 많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분상제 시행 계획이 발표된 지난 11월 서울에서 이주 및 철거가 진행돼 분상제 유예기간 중 분양을 할 것으로 예상된 재건축 단지 3만4000가구 중 현재까지 분양한 단지는 1만1600가구에 불과하다. 2만채 이상이 HUG의 분양가 규제로 아직 분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단지 조합원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오랫동안 대출부담, 집값 하락 위험 등을 감수하며 고생해 왔는데, 일반분양을 받는 사람들에게 재산을 빼앗긴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일반분양가가 낮아지면 조합원들이 내야 하는 시공비 등 분담금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HUG에 따르면 올 6월 서울 아파트 평균 분양가격은 작년 동월 대비 3.1% 올랐다. 이 값은 공표 직전 12개월간 평균치로 구한다. 특정 시기 고가나 저가 분양이 몰릴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것이다. 올 6월 평균 분양가는 작년 7월부터 올 6월까지 1년 간 서울에서 분양한 아파트 분양가의 평균치다.

이를 작년 6월 기준(2018년 7월~2019년 6월)과 비교하니 3% 조금 넘게 올랐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2018년 7월부터 2020년 6월까지 민간 아파트 분양가가 모두 반영된 변동률이다.

그런데 이 시기 한국감정원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값은 4.81% 올랐다. KB국민은행 시세 기준으로는 13.53%나 뛰었다. 일반 아파트의 어떤 시세 변동률 지표와 비교해도 서울 새 아파트 분양가 상승폭이 작다.

결과적으로 고분양가가 집값 상승을 일으킨다는 정부의 주장은 틀렸다. 이미 기존 집값이 더 높고, 더 빨리 오르고 있는 데 분양가가 집값을 이끄는 역할을 할 리 없다.

우리나라에서 민간 아파트에 분상제를 시행한 건 모두 세 차례다. 1977년~1981년, 1982년~1998년, 그리고 가장 최근엔 2007년~2015년 사이다. 당시엔 정말로 고분양가가 집값을 끌어올리는 주범이었다. 당시 건설사들은 2,3년 뒤 준공 후에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점을 반영해 보통 분양가를 시세보다 20% 이상 비싸게 책정했다.

높은 분양가에도 사람이 몰리고 분양이 성공하면, 즉시 해당 단지 주변 다른 아파트 시세도 동시에 따라 올랐다. 고분양가가 주변 시세를 올리고, 이렇게 올라간 시세가 다시 분양가를 끌어올리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분양가를 규제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HUG를 통한 분양가 규제 때문에 건설사들은 이미 함부로 분양가를 높일 수 없다. HUG는 새 아파트 분양가를 주변 일반 아파트 시세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직전 분양했던 새 아파트를 기준으로 5~10% 넘지 못하게 제한한다.

‘로또’라는 평가를 받은 기존 새 아파트를 기준으로 그보다 일정 기준 이상으로 분양가를 책정하지 못하게 하니, 로또 분양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매매시장의 시세 상승폭은 가파른 데, 새 아파트 분양가 상승폭은 미미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기존 아파트 시세와 새 아파트 분양가의 격차는 더 커진다.

현 정부의 HUG를 통한 분양가 규제는 집값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낮은 분양가는 무수한 로또를 만들었고, 청약에 당첨되지 못한 사람들에 열패감을 줬다. 더군다나 서울 아파트값을 고려할 때 청약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은 이른바 ‘현금부자’였다.

29일부터 시행하는 분상제가 집값을 잡을 수 있을까. 현금부자에 로또 당첨금만 높일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분양가가 집값보다 한참 싼 이 상황에서 분상제가 도대체 무슨 역할을 할까.

건설부동산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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