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접은 그린벨트 개발.. 그 뒤엔 50년 논란史

연지연 기자 2020. 7. 2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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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수도권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이 정부 검토 단계에서 결국 보존하는 방향으로 결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고 계속 보존해 나가기로 했다고 지난 20일 밝혔다. 그린벨트 지정과 해제를 둘러싼 갈등은 지난 50년간 계속 이어졌다. 주택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된 예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결국 역사는 반복되는 중이다.

◇ 국론분열 일으킨 그린벨트

26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이번 그린벨트 논란은 지난 14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필요하다면 그린벨트 문제 점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하면서 시작됐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해제에 무게를 둔 발언을 내놓으면서 실현 가능성이 커진 것이라는 시각이 있었지만, 정세균 국무총리와 이낙연 의원, 이재명 경기지사 등이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혼선이 빚어졌다.

이에 미래통합당과 정의당, 국민의당 등 야당도 대통령이 직접 정리하라고 촉구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지난 20일 오전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은 누구 말을 듣고 정책을 신뢰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면서 "그린벨트를 해제해서 집을 지어줘야 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대해 총리도 딴 얘기하고, 심지어 경기도지사, 법무부 장관까지 발언을 쏟아낸다"고 비판했다.

당·정·청(黨·政·靑)이 불을 지핀 그린벨트 해제 논란에 국민 10명 중 6명은 해제가 불필요하다고 본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리얼미터가 지난 17일 실시한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60.4%는 ‘녹지 축소와 투기 조장의 위험이 커 (그린벨트 해제가) 불필요하다’고 답했다. ‘주택 공급을 위해 필요하다’는 응답은 26.5%였다. 13.1%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린벨트를 해제해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장과 도시의 허파 역할을 하는 그린벨트를 유지하고 수도권의 무분별한 팽창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은 늘 팽팽하게 맞섰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그린벨트 해제를 위해서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면서 "토지 수용에 세금도 투입되기 때문에 공식적인 장을 열고 국민이 함께 논의해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 존재 자체도 논란이었다

1971년 지정된 그린벨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국토관리정책 중 하나다. 박 대통령은 국토부 담당 공무원을 불러 백지에 서울시를 그리고는 외곽에 선 2개를 긋고 영어로 ‘그린벨트’라고 쓰면서 정책을 지시했다.

그린벨트는 영국을 벤치마킹한 정책이다. 영국은 1938년 세계 최초로 ‘그린벨트법’을 만들었다. 런던대 교수였던 건축가 패트릭 애버크롬비는 2차 대전이 벌어지던 1944년에 ‘대(大)런던 계획’을 세웠다. 런던이 2차 대전에서 큰 피해를 본 건 인구가 런던에 밀집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이때 런던 주변에 폭 10~16㎞의 그린벨트를 설정했다. 무차별하게 도시가 팽창하는 것을 막고 그린벨트 밖 신도시에 인구와 산업을 분산하기 위해서다.

한국은 1970년대 서울의 9배 넓이인 국토의 5.4%(5379㎢)를 그린벨트로 지정했다. 그린벨트는 경기도에 가장 많다. 하남, 의왕, 과천 같은 곳은 90% 이상이 그린벨트로 묶였다. 수십 가구가 모여 살던 수백 곳이 그린벨트로 지정돼 개발이 제한되니 민원도 계속됐다.

그린벨트는 도입 당시부터 논란이 됐다. 대부분이 사유지였던 터라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환경 보전을 위해 그린벨트를 사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축사나 창고로 쓰여 보존 가치가 없는 일명 ‘그레이(회색) 벨트’가 되어버린 곳이 적지 않다는 비판도 일었다.

이 때문에 1998년 그린벨트의 근거가 된 ‘도시계획법 21조’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기도 했다. "일부 토지소유자에게 사회적 제약의 범위를 넘는 가혹한 부담이 발생하는 예외적인 경우에 대하여 보상규정을 두지 않은 것에 위헌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보완한 개발제한구역 특별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이후 그린벨트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부터 3년간 7곳 중소도시권이 해제되는 등 각 정부를 거치며 조정됐다.

2013년에도 그린벨트 유지와 관련해 논쟁이 붙었었다.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영국의 산지 비율은 11.9% 정도이지만, 산지 비율이 68.2%인 일본은 도입했다가 실패했다"면서 "일본과 산지 비율이 비슷한 우리나라도 뒤늦게 1971년 (그린벨트를) 도입했다"고 밝히면서 그린벨트 도입이 처음부터 잘못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도 "그린벨트가 도시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 그린벨트 해제 논의의 끝… 고질적인 땅 투기 우려

정부가 주택 공급을 위해 그린벨트 해제 카드를 만지작거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 때 그린벨트를 30% 정도 해제했고, 노무현 정부 때는 서울 은평구 그린벨트를 풀어 은평뉴타운을 조성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서울 서초구 그린벨트에 보금자리주택을 건설했다. 문재인 정부도 서울의 그린벨트 해제를 놓고 고민했지만, 결국 없던 일로 결론을 내렸다.

그린벨트는 역사적으로 투기논란의 진원지이기도 했다. 1997년 그린벨트 해제 이후 1999년까지가 좋은 예다. 당시 그린벨트 투기에 관한 기사가 줄을 이었다. 1998년 국세청은 모든 그린벨트를 ‘투기우려지역’으로 지정한 바 있다. 경기 의왕, 과천 등 수도권 일부 그린벨트와 주변 지역 땅값이 크게 들썩거린 것이 이유였다.

당시 그린벨트 해제는 지금보다 조용히 진행됐지만, 그래도 투기 논란은 많았다. 특히 울산 그린벨트에도 투기 조짐이 있었는데, 당시 군 관계자는 "대부분 그린벨트로 묶인 서생면 지역은 정부의 고리원전 추가 건설 예정지여서 지역 주민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사전에 그린벨트 해제 정보가 새어 나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정부가 그린벨트 해제를 후순위 공급 카드로 꺼내자 후보지로 거론됐던 강남 세곡동과 내곡동이 들썩이며 투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린벨트가 해제돼 일대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 기존 구축 단지의 집값도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부풀자 가격을 높게 부르고 거래량도 많아졌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그린벨트 해제와 관련한 투기 논란은 반복되는 굴레라고 설명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투기 논란을 막을 근본적인 방법은 없다"면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할 수 있지만,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엄격하게 계속 묶는다고 투기 세력을 모두 잡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투기 논란을 축소하기 위해서는 정부 여당과 관계 부처가 회의해 충분히 논의한 뒤 발표해야 한다"면서 "발표하자마자 투기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투기 세력이 진입할 수 있는 시간을 축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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