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수요 차단 없는 공급대책은 '밑 빠진 독 물붓기'
[경향신문]
숫자를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부동산 대책을 남발한 정부는 신뢰를 잃었다. 정부 대책을 비웃듯 집값 상승세가 멈추지 않자 대통령까지 나서서 공급 확대를 독려했다. 정부는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서울 강남권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까지 검토했지만 결국 물러섰다. 그린벨트 개발로 집값을 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과 해제에 부정적인 여론 때문이었다.
그린벨트 해제 카드가 사라지면서 태릉골프장 등 군 시설과 잠실 유수지 등 공공 유휴부지를 택지로 개발하는 방안, 용적률 상향과 고밀도 개발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부동산 업계를 중심으로 이 기회에 재건축·재개발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부동산 개발의 공공성을 강조해온 전문가들은 집값 상승만 부추길 수 있는 공급 대책보다 투기수요 차단이 우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투기수요 차단 없으면 ‘밑 빠진 독 물 붓기’
그린벨트 해제 논란은 손쉽게 부동산 공급을 늘리기 위한 대안이었다. 하지만 지금 부동산 수요는 투기수요가 실수요를 압도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공급을 해도 수요를 맞추기 어렵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공급 대책을 이야기할 때는 실수요를 갖고 따져야 한다”며 “실수요를 파악하려면 우선 투기수요를 잠재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부동산 가격 상승을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프레임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투기수요를 없애는 정공법으로 부동산 보유세(종합부동산세·재산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인 1%까지는 아니라도 현재 0.16% 수준에서 적어도 0.5% 수준으로는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정부는 지금 핀셋 방식으로 종부세에 미세한 조정만 하고 있다”면서 “조세저항이 심해서 굉장히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걸 해내지 않으면 변죽만 울리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보유세가 가장 중요한 수단인데 한 번에 높일 수 없기 때문에 장기 로드맵을 내놓고 시장 참여자가 앞으로 수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상황을 알게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7월 22일 발표한 세법개정안에서 종부세 대상자인 고가 1주택 보유 고령자 세액공제율 및 합산공제율 한도를 각각 10%씩 상향 조정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비해 세부담이 적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세부담 자체를 완화하기보다 과세이연제도 등 부동산을 처리하거나 상속·증여할 때 납부하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주택 공급을 한다면 개발로 더 이상 이득을 누릴 수 없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간 정부는 ‘교차보조’ 방식을 택해 그린벨트를 수용해 얻은 땅을 민간에 비싸게 팔아 얻은 돈으로 임대주택을 공급했다. 하지만 공사가 적자를 보전하는 방식으로 땅장사를 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민간 건설시장의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었다. 세종시의 임대료와 집값이 비싼 것도 이런 방식으로 택지개발 과정에서 땅값이 비싸졌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택지개발을 위해 땅을 수용할 경우 이를 다시 민간에 매각하지 않고 건물만 분양하는 방식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토지임대부’ 방식이 거론된다. 땅값이 빠지는 만큼 분양가가 낮아진다.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 강남구 세곡동의 보금자리주택 중 일부가 이런 토지임대부 방식으로 공급됐다.
하지만 이런 아파트단지는 매달 부담하는 토지임대료를 감안한 정도만 가격에서 빠질 뿐 시세는 주변 아파트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택지를 개발하면서 얻은 이익이 보금자리주택을 분양받은 소수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제도를 재도입한다면 싸게 분양받아 큰 차익을 누리는 ‘로또 아파트’가 나올 수 없도록 매매 시 공공에 환매의무 등 이익을 환수하는 장치를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은영 도시연구소 소장은 “토지임대 방식은 환매의무가 없으면 큰 의미가 없다”며 “투기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개발이익을 환수하려는 공공개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토지임대 방식으로 공급해야
투기수요를 해소하고 공급을 늘리는 대책으로 역세권 등 목 좋은 곳을 공공개발해 분양 주택이 아닌 장기공공임대주택을 지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실제 경기주택도시공사는 무주택자 누구나 30년 이상 장기거주가 가능한 ‘기본주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고 건축물은 비영리법인, 공익법인,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 사회적경제주체가 소유하는 장기임대주택이다. 소득·자산에 상관없이 살 수 있도록 해 임대주택을 저소득층의 주거지로 보는 ‘낙인효과’를 없앤 것이 특징이다.
공급대책의 하나로 거론되는 재건축·재개발 완화는 투기 수요만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은영 소장은 “그간의 공급대책에 더해 유휴부지를 활용한 공급 효과와 분양가 상한제, 초과이익환수제와 같은 규제 효과가 점차 나타날 것으로 본다”면서 “재건축·재개발은 초고가 아파트를 만드는 방식이라 주택 가격을 인상하는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규제 완화는 불붙은 시장에 기름을 붓는 실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재개발과 고밀도 개발을 도시 공간의 재구성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는 “은평뉴타운처럼 골목길을 다 때려부수는 방식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보존할 곳은 보존하면서 부분적으로 밀도를 높여 상업성을 만들고, 동시에 경의선 숲길처럼 동네를 연결하는 공원을 만들어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건축적 의미의 재건축·재개발은 시도할 만하다”고 말했다.
여권은 최근 청와대와 국회를 비롯한 공공기관의 세종시 이전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참여정부의 균형발전 의제를 부동산 안정을 위한 대책의 하나로 꺼낸 모양새다. 하지만 혁신도시 등 그간의 균형발전 정책이 수도권 인구를 분산하는 효과는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유현준 교수는 “KTX 같은 교통이 발달할수록 중력처럼 중심부인 수도권으로 쏠리게 된다”며 “오히려 세종시나 혁신도시가 인접 도시의 인구를 빼와 지방 구도심의 공동화 현상을 낳는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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