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닭' 죽음 4시간 멈춘 죄..법정은 눈물로 넘쳤다

남종영 2020. 7. 17. 16: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애니멀피플] 르포 | DxE 글로벌 록다운 재판
도계장 가로막아 벌금 300만원..업무방해 조각 사유될지 주목
지난해 10월4일 경기 용인의 한 도계장을 막은 혐의(업무방해)로, 세 명의 활동가에게 벌금 300만원(약식명령)이 선고됐다. 이들은 정식재판을 청구해 17일 수원 지방법원에서 직접 변론을 했다. 왼쪽부터 이솔, 오유비, 김향기 활동가. 남종영 기자

지난해 가을, 죽음이 네 시간 동안 멈췄다.

사람 네 명이 도살장 입구를 가로막고, 수만 마리 동물의 운송차량을 막았다. 차량 대열을 막았기 때문에, 이 행위는 법적으로는 ‘업무방해’였다. 각각 300만원 벌금에 처한다는 약식명령을 받아든 피고인 중 세 명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7월16일 수원지방법원 형사법정 303호에서 두 번째 재판이 열렸다.

_______ 네 시간의 일시정지=업무방해

지난해 그 날, 10월4일은 세계 동물보호의 날이었다. 비폭력 직접행동 동물권 활동가들의 네트워크인 ‘디엑스이’(Direct Action Everywhere)는 미국, 영국 등 14개국 29개 도시에서 ‘글로벌 록다운’ 행동을 벌였다. 도살장이나 육가공 업체 등을 점거하여 고기의 생산, 판매를 중단하는 직접행동이었다.

한국의 활동가들도 경기도 용인의 한 도살장으로 향했다. 네 명은 여행가방에 콘크리트 200㎏를 쏟아 넣고 자신의 팔을 넣어 결박했다. 소란 끝에 화물차 두 대만 들어갔을 뿐, 닭을 치킨으로 만들던 컨베이어 벨트는 결국 멈췄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고기는 생산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4일 경기 용인의 한 도계장 앞에서 동물 수송차량을 막아선 네 명의 활동가. DxE 코리아 제공

그로부터 약 9개월이 흐른 지난 16일 오후 3시30분 재판이 시작됐다. 도계업체 쪽 증인은 판사에게 ‘비공개’를 요청했다. 피고인을 응원하는 방청객이 너무 많아서 부담스럽다는 이유였다.

좁은 법정에 들어온 사람만 해도 40명은 넘어 보였다. 대개는 검은 옷을 입은 20~30대였다. (주최 쪽은 드레스 코드로 검은 옷으로 입고 와달라고 했다) 검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피고인들에게 종전과 같이 벌금 300만원을 선고해주시길 바랍니다”고 말했다. 변호사는 업무방해에 이르게 된 경위를 고려해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맞섰다.

_______ 슬픔은 공감에 비례한다

업무방해 300만원짜리 사건이라면, 판사 사무실에 산처럼 쌓여있을 서류에 처박혔을 건이었다. 그러나 방청객들은 법정 변론의 시간을 가지게 됐다는 데 흥분했다. 우인선 재판장(형사2단독)은 세 명에게 법정 변론문을 읽고 동영상을 틀을 시간을 허락했다. 오유비 활동가가 처음으로 나섰다.

“제가 어느 날 일어서지도, 팔을 펴지도 못하는 녹슨 철창에 다른 이들과 와글와글 갇힌다면 어떨까요? … 판사님은 분명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를 구해주실 거예요. 글로벌 록다운은 동물을 학대하고 착취하며 죽이는 것이 합법인 인간 중심적 제도를 거부하는 위한 실천이었습니다.”

이솔 활동가는 비질 활동을 소개하면서 동영상을 틀었다.

‘우리가 너를 가두었다. 너의 자유를 빼앗았다…우리가 숲을 태웠다. 너의 집을 빼앗았다’

음악과 가사가 흐르자,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질은 도살장 앞에 서서 끌려가는 동물의 고통을 인간이 위로하는 의식이다. 방청객의 상당수는 비질을 참여해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슬픔의 크기는 경험에 비례한다.

김향기 활동가는 한두 마디도 못하고 울음부터 터뜨렸다. “이 순간은 제가 오래전부터 염원해왔던 것”이었으며 “피해자(동물)들을 대신하여 이 자리에 섰다”는 말로 간신히 최후 변론을 시작할 수 있었다.

_______ 동물권과 동물복지는 양립 불가능한가

이런 재판은 처음이었다. 법정은 눈물을 훔치는 손짓과 소리 낮춘 탄식으로 가득했고, 냉정함을 유지한(혹은 유지하려고 노력한) 이는 판사와 속기사, 법정 경위 그리고 기자뿐이었다.

디엑스이는 미국 샌프란시코에서 2013년 시작하여 세계로 확산한 행동주의 동물권 활동가 네트워크다. 2010년대 가장 크게 성장한 동물운동을 꼽으라면, 단연코 디엑스이일 것이다.

급진적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점에서 지난 세기말 선풍을 일으켰다가 쇠락한 동물해방전선(ALF, 영화 <옥자>에 등장했다)과 비슷하지만, 공장식 축산의 권력자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공격적인 성찰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관련 기사 ‘그들은 진정한 동물의 대변자였을까’)

16일 오후 수원 지방법원 앞에서 이찬 변호사(왼쪽)와 박세훈 변호사(오른쪽)가 재판 직후 참석자들에게 재판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남종영 기자

디엑스이는 대형 정육업체뿐만 아니라 고기를 파는 소형 음식점이나 마트 등에서도 방해시위를 벌인다. 기존 동물단체의 거대화, 관료화에 대한 반발 그리고 유튜브를 이용한 뛰어난 미디어 능력 등 성공 요인에 대해서 좀 더 차분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디엑스이의 영업방해 시위를 조롱하는 이른바 ‘안티 비건’ 동영상도 유튜브에서 수십만 회 조회 수를 올리는 등 급진적 활동의 반작용도 분석해야 할 과제다.

사실 동물권과 동물복지는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이데올로기의 차원일 뿐 현실 운동전략에서는 폐사 동물의 수와 고통을 줄이는 정도의 차이, 즉 동물복지로 수렴된다. 디엑스이나 동물해방전선 같은 아주 소수를 빼고, 우리 눈에 띄는 동물단체는 대체로 동물복지 운동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저 앞에 ‘육식 체제’라는 거대한 성벽이 있다. 적어도 303호 법정은 눈물의 바다가 되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저 멀리 있는 안티 비건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 고결한 외침으로 성벽을 와르르 무너뜨릴 것이냐, 천천히 눈을 맞추며 햇볕처럼 녹일 것이냐. 이건 동물운동의 고전적인 숙제다.

_______ 강정마을 사건을 보라

다시 법으로 돌아가 보자. 안타깝게도 이 사건의 법적 쟁점은 피고인들이 비판했던 공장식 축산이 아니라 직접행동 과정에서 벌어진 결과인 네 시간 동안의 업무방해다. 업무방해죄의 구성 요건은 위력의 행사다. 네 명의 활동가가 결박하고 드러누워 영업을 막았는데, 그들이 행동에 나선 이유가 위법성이 조각될 만한 것이냐의 여부다.

한 참석자가 재판 과정 중에 그린 그림을 참석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남종영 기자

이 사건 변호에 나선 박세훈 변호사(법무법인 이평)는 제주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공사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정 주민들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대법원은 기본권 행사와 관련된 영역에서 업무방해죄 구성 요건을 제한적으로 해석해왔고, 관련 기본권으로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바 있다”며 “피고인들의 활동이 윤리적 진보에 뿌리를 둔 의제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행위이므로, 이 사건에서 업무방해죄의 구성 요건은 제한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모두가 해방되지 않으면, 아무도 해방될 수 없다’는 구호를 세 차례 외치고 해가 지는 수원지방법원을 나섰다. 네 시간 동안 죽음을 멈춘 행위에 대한 판결은 8월20일 내려진다.

수원/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뉴스판 한겨레21 구독▶2005년 이전 <한겨레>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