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장마와 동이족 문명의 성쇠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0. 7. 1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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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장마는 기록적인 폭우로 중국과 일본에서 큰 피해를 내고 있다. 사진은 13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을 관통하는 창장이 불어나 수변 시설이 물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신화/연합뉴스 제공

최근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중국 의학자이자 철학자인 장치정 북경중의약학대학 국학원 원장이 가장 오래된 중국의 의학서 ‘황제내경(黃帝內經)’의 주요 내용을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설명한 책이다.

장치정은 ‘황제내경’이 말하는 무병장수의 비결이 ‘법어음양(法於陰陽), 화어술수(和於術手)’ 여덟 글자에 녹아있다고 설명한다. ‘자연계의 변화 법칙(음양)에 순응하고, 정확한 양생 보건의 법칙(술수)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평생 절제와 조화의 삶을 유지하라는 얘기로, 지금도 맞는 말이지만 물론 실천하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장마철은 오행의 토에 해당

‘황제내경’은 음양오행(陰陽五行)설에 기반해 많은 걸 해석한다. 예를 들어 오장육부(五臟六腑)에서 오장인 간, 심장, 비장, 폐, 신장은 오행인 목, 화, 토, 금, 수에 대응한다. 정서 역시 오행에 맞춰 노, 희, 사, 우, 공의 오지(五志)로 나눴다. 간(肝)과 노(怒. 성냄)는 목(木)에 해당한다는 식이다. 이를 바탕으로 많은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데, 꽤 흥미롭지만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 가운데 계절조차 오행에 맞춘 부분이 가장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사계절을 오행에 대응시키려다 보니 결국 여름을 장마철 이전의 여름과 이후의 장하(長夏)로 나눠 각각 화(火)와 토(土)에 대응시켰다. 

그런데 요즘 장마철을 보내며 옛날 중국 사람들이 여름을 둘로 나눈 게 그렇게 억지스러운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장마를 전후해 여름의 성격이 크게 바뀌기 때문이다. 오행의 화에 해당하는 초여름은 고온 하나이지만 토에 포함되는 늦여름은 고온에 다습이 더해진다. 

장마가 시작될 무렵이 하지라는 점도 여름을 둘로 나누는 그럴듯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음양 이론에 따르면 낮이 가장 긴 하지 이전의 초여름이 양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시기다. 낮이 밤보다 꽤 긴데다(양) 매일 조금씩 더 길어지기(미분 값도 양) 때문이다. 반면 하지를 지나가면 낮이 여전히 길지만 매일 조금씩 짧아지므로 늦여름은 ‘양 속에 음이 깃든’ 상태다. 사람으로 치면 20대와 30차의 차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지금 장마철을 보내며 앞으로 겪어야 할 무더위가 걱정이다. 조상들도 그래서인지 7월 중순에서 8월 중순 한 달 사이 초복, 중복, 말복을 둔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내일모레가 초복이다. 토에 해당하는 오지인 사(思)는 근심이 많은 상태인데 꽤 적절한 선택인 것 같다.

비는 과유불급 아냐

대다수가 도시 거주민인 현대인들은 장마와 이어지는 무더위를 싫어하고 여름 내내 초여름 같은 날씨가 계속되면 더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게다가 장마철 홍수 피해도 만만치 않다. 특히 올해는 중국과 일본의 홍수 피해가 특히 심하다. 중국에서는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났고 이재민만 40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평소 자연재해 대비가 잘 돼 있는 일본조차 80여 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그러나 장마는 동아시아 문명의 원동력이다. 만일 장마가 없었다면 지금 동아시아는 몽골과 비슷한 풍경 아닐까. 실제 과거 인류 문명의 부침을 보면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망한 예는 거의 없고 대부분 비가 너무 안 와서극심한 가뭄으로 사람들이 거주를 포기하며 떠나 폐허가 됐다. 마야 문명의 붕괴가 그렇고 인더스 문명의 퇴조 도 물 부족 때문이다.

지난해 9월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는 장마와 동아시아 문명 성쇠의 관계를 보여준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실렸다. 당시 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것 같아 한참 지났지만 장마철이고 해서 이 자리에서 소개한다. 무엇보다도 논문에서 다룬 동북아시아 문명을 세운 사람들이 우리의 조상인 동이족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500년 주기 보이는 세 현상

샤오룽완 호수(빨간 십자 표시)와 신석기 시대 발굴 유물들의 위치(작은 동그라미들)를 표시한 지도다. 동아시아 여름 몬순(장마)은 빨간 화살표, 겨울 몬순은 파란 화살표로 나타냈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제공

중국과학원 지질학· 지구물리학연구소의 연구자들은 8000~2500년 전 중국 북동부 네이멍구(내몽고)자치구와 랴오닝(요녕)성 일대의 신석기· 청동기 문명이 이 지역의 장마전선 형성 여부 및 강도에 따라 대략 500년 주기의 부침을 보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곳은 당시 한족(漢族)이 아니라 동이(東夷)족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이들의 갈래가 한반도에 들어와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가장 번성한 훙산(紅山) 문화(6500~4800년 전)는 화려한 옥 공예품으로 유명하다. 강원도 고성과 전남 여수에 발굴된 비슷한 시기 신석기 시대 무덤에서 나온 옥 귀걸이와 비슷하다.

중국 당국은 1980년대부터 이 지역 유물을 본격적으로 발굴하면서 한족이 일으킨 황하 문명보다 시기적으로 훨씬 앞서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 있었다는 걸 인정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훙산 문명을 포함한 이 지역 신석기· 청동기 문화를 라오허(요하) 문명이라 부르며 이를 한족이 세운 것으로 둔갑시켜 황화 문명의 원류로 간주하고 있다. 소위 ‘동북공정’이다. 

이 문제는 잠깐 미루고 지금은 중국 과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해 밝힌 흥미로운 내용을 소개한다. 이들은 지금까지 요하 일대 유적지에서 얻은 많은 유물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 데이터를 모았다. 그 결과 8000~2500년 전 동안 발굴된 유물의 양이 대략 500년의 주기로 부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500년 주기로 문명의 성쇠가 있었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주기적인 변화가 장마의 여부나 강도와 관련이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당시 식생을 조사하기로 했다. 이 지역은 장마전선의 북방한계선으로 장마철 강수량에 따라 식생 분포가 큰 영향을 받는다. 장마전선이 이 지역까지 충분히 발달하는 시기에는 강수량이 풍부하고 연평균 기온도 높아 참나무 같은 활엽수가 우점종을 이룬다. 반면 장마전선이 올라오지 못해 연간 강수량이 적고 기온도 낮은 시기에는 소나무 같은 침엽수가 우세하다. 

연구자들은 백두산에서 북서쪽으로 약 300㎞ 떨어진 곳에 있는 분화구 호수인 샤오룽완에 주목했다. 호수가 있는 지린성은 랴오닝성 동쪽에 접해 있어 같은 기후권이기 때문이다. 축구장 10배 면적에 최고수심이 15m인 샤오룽완 호수는 물이 들어오지도 않고 나가지도 않는다. 빗물이 모이고 증발하고 토양에 흡수되며 유지된 상태다. 따라서 호수 아래 퇴적층에 포함된 꽃가루를 분석하면 수천 년에 걸친 식생 변화를 수십 년의 해상도로 파악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꽃가루의 상대적인 양을 바탕으로 활엽수의 대표인 참나무와 침엽수의 대표인 소나무의 점유율 패턴을 분석했다. 그 결과 대략 500년 주기로 엇갈렸다. 참나무가 마루(crest)일 때 소나무는 골(trough)이었다. 이들의 주기 그래프를 랴오허 문명의 유물 주기 그래프와 비교한 결과 참나무와 일치했다. 참나무의 우점도는 장마의 강도와 비례하므로 당시 이 지역 인류의 삶도 장마의 영향에 따라 부침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백두산 북서쪽 300㎞에 있는 샤오룽완 호수 퇴적층에 포함된 참나무(Quercus) 꽃가루 양 분석 데이터 그래프(위)와 네이멍구자치구와 랴오닝성 일대의 신석기・청동기 유물 방사성탄소연대측정 시료 양을 보여주는 그래프(아래)는 2500~8000년 전 기간 동안 거의 일치하는 대략 500년의 주기성을 보인다. 가운데는 이 시기 존재한 6개 문화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제공

주기 90% 맞아

호수 퇴적층의 참나무 꽃가루 양에서 추측한, 8000~2500년 전 사이 참나무 식생 주기와 유물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에 따른 주기를 보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다만 참나무는 10회의 주기를 보이는 반면 유물은 9회의 주기를 보인다. 참나무에서 보이는 5940년 전의 작은 피크가 유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한편 각 피크는 랴오허 문명을 이루는 9가지 문화(물론 1980년대 이후 중국 고고학자들이 발굴하며 붙인 이름이다) 가운데 6가지 문화에 해당한다. 첫 번째 피크(꽃가루는 7420년 전, 유물은 7570년 전)은 신룽와(興隆洼) 문화의 전성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 피크(꽃가루는 6830년 전, 유물은 6770년 전)은 자오바오거우(趙宝溝) 문화의 전성기다.

랴오허 문명을 대표하는 훙산 문화는 초기, 중기, 후기 세 시기로 나뉜다. 유물의 세 번째 피크(6240년 전)가 초기에, 네 번째 피크(5440년 전)가 중기에, 다섯 번째 피크(4930년 전)가 후기에 자리하고 있다. 반면 이 시기 꽃가루 그래프는 피크가 네 개인 대신 마루와 골의 차이가 작다. 그래프에서 ‘?’로 표시된 작은 피크가 보이는 5940년 전 무렵 유물 그래프에서는 마루 대신 깊은 골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인류 문명의 부침은 강수량(장마) 같은 기후 이외에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곳의 예외를 빼면 5500년에 이르는 시기 동안 참나무와 유물의 결과가 일치해 당시 이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삶에 장마의 영향이 결정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동북공정을 넘어

랴오허 문명을 대표하는 훙산 문화 중기의 유적과 이곳에서 발굴한 유물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제공

필자는 요즘 ‘묵자가 필요한 시간’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역시 무척 흥미롭다. 묵자(墨子)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사상가이지만 춘추전국시대 당시에만 해도 공자에 필적하는 영향력이 있어 한비자는 “세상의 유명한 학문은 유가와 묵가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묵자의 민주주의 사상이 그 뒤 성립된 중국의 전제 왕조에는 위협이 됐기 때문에 오랜 세월 억압을 받았고 최근 재조명되고 있다. 

이 책은 중국의 유명 작가 천웨이런이 쓴 묵자 전기로, 사상가로서뿐 아니라 과학기술자로서의 묵자 면모도 잘 보여주고 있다. 공자가 소크라테스(또는 플라톤)라면 묵자는 아리스토텔레스라고나 할까.

필자가 뜬금없이 ‘묵자가 필요한 시간’을 언급한 건 묵자가 동이족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는 저자의 주장 때문이다. 묵자는 생몰 연대도 불확실하고 어디 출신인가도 아직 논란 중인데 천웨이런은 이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 은나라 역시 동이족의 한 갈래가 서쪽으로 이동해 기원전 1600년 무렵 하나라를 무너뜨리고 세운 나라라고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하대(夏代)의 상족(商族)이 바로 동이족의 한 갈래이며, 그들은 까마귀를 조상으로 여겼다. (중략) 훗날 상족이 서쪽으로 이주해 하 왕조에 이어 중국의 두 번째 왕조를 건립했지만 까마귀 숭배의 전통은 여전히 동방에서 성행했다.”

흥미롭게도 고구려인을 비롯해 우리 조상들은 다리가 셋 달린 까마귀인 삼족오(三足烏)를 태양의 화신으로 숭배했다. 이 책은 2015년 출간됐는데, 놀랍게도 중국 당국의 동북공정이 반영돼 있지 않다.

정치가 다른 모든 걸 우선하는 경향은 다른 나라들에도 어느 정도 있지만 한중일 세 나라는 특히 심한 것 같다. 그 결과 고고학 같은 분야는 특히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각종 연대측정법과 게놈 및 단백질 분석 기법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 열린 마음만 먹는다면 동아시아 문명의 실체에 한층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기에 아쉬움이 크다. 

장마와 중국 북동부 신석기· 청동기 문명의 성쇠 관련성을 명쾌하게 보여준 논문을 읽으며 이게 우리 조상들의 얘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이런 생각을 떠오르게 한 천웨이런에게 고마운 생각도 든다. 이제부터는 장마철을 보내며 다가오는 무더위를 생각하며 얼굴을 찌푸리는 대신 우리 조상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머금게 되지 않을까.

참고로 장마전선 북방한계선 오르내림 500년 주기의 가장 큰 원인은 엘리뇨와 라니냐로 알려져 있다.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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