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서 킹의 모교에서 준 '예비 노벨평화상'..과분할 뿐이다"

김경애 2020. 7. 13.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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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주 애틀랜타시 모어하우스대학
1960년 킹 목사 졸업한 흑인 남자대학
"킹 목사 평화철학·비폭력운동 감명"
1970년 조지아대학 근무 선택에 큰영향
2001년 '간디·킹·이케다 평화상' 제정
세계평화·비폭력운동 공헌 인물 기려
만델라·고르바초프..노벨상 8명 배출
2010년 모어하우스대학 '평화학' 출강
'마틴루서킹국제채플' 카터 학장 연락
"깜짝 선물 있으니 4월1일 비워달라" 정치인 아닌 학자·교육자로 첫 선정
기념 초상화·대학합창단 축가 감동
"합창처럼 이질성의 평화적 극복 기원"
박한식(오른쪽) 교수는 2010년 4월1일 ‘평화학 개척자’로 인정받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에 있는 모어하우스대학에서 주는 ‘간디·킹·이케다 평화상’을 받았다. 2001년부터 해마다 세계평화와 비폭력운동에 기여한 인물에게 주는 상이다. ‘마틴 루서 킹 국제채플’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로런스 카터(왼쪽) 학장이 박 교수에게 상패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박한식 교수 제공
길을 찾아서-35회 간디·킹·이케다 평화상 수상

2010년 봄 학기 나는 모어하우스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모어하우스대학은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1867년 개교한 흑인 남자 대학이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던 조지아대학에서 자동차로 1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었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모교로도 유명한 이 학교는 흑인 지도자 양성을 그 목표로 하고 있는 학교였다.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킹 목사의 사상과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교육 이념을 모토로 공부하고 있었다. 2008년 11월 버락 오바마 후보자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날 저녁에 가장 많은 언론 취재 차량이 찾은 곳이 바로 모어하우스대학이다.

미국 남부 명문으로 꼽히는 조지아주 모어하우스대학은 1960년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가운데) 목사가 졸업한 남부의 흑인 명문으로 유명하다. 사진 모어하우스대학 누리집 갈무리

나는 일주일에 한번 ‘평화학’이라는 과목을 강의했다. 학생들과 평화란 무엇이고, 평화가 왜 필요하며 어떻게 평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등의 주제를 가지고 공부하고 토론했다. 한 학기 특별 강의를 개설해줄 수 있느냐는 모어하우스대학 정치학과 학과장 그레고리 홀 교수의 간곡한 청도 있었지만, 킹 목사의 모교라는 사실에 흔쾌히 강의를 수락하였다. 사실 내가 1970년 박사학위를 받고 조지아대학을 직장으로 선택한 데는 킹 목사의 영향이 컸다. 박사과정 공부를 하면서 평화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나는 킹 목사의 사상과 정신에 매료되었고 특히 평화에 대한 그의 철학과 비폭력 운동에 감명을 받았다. 그의 고향인 조지아에 가서 그의 삶과 생각을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하고 싶었다.

하루는 강의를 마치고 막 문을 나서는데, 모어하우스대학 종교학 교수이자 킹 목사의 삶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마틴 루서 킹 목사 국제채플’의 학장인 로런스 카터 박사가 차 한잔하자는 연락을 해왔다. 평소 친분이 있던 사이가 아니라서 무슨 일인가 의아했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그의 첫마디는 “아이 해브 어 서프라이즈 포 유”였다. 깜짝 선물이라?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카터 학장은 ‘4월1일 꼭 시간을 비워줬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내게 확답을 종용했다. 나는 무슨 일이냐고 되물었고 그제야 그는 모어하우스대학에서 제정한 상이 있는데 내가 그 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러면서도 어떤 상인지, 왜 내가 선정되었는지 등의 구체적 얘기는 나중에 차차 하자면서 나의 궁금증만 키웠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4월1일 시간을 비워놓겠다는 약속을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그로부터 한달쯤 지났을 무렵, 카터 학장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뜬금없이 내 초상화를 그려야 하니 모어하우스대학으로 잠시 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유화로 근사하게 초상화를 그려야 하니 말끔하게 차려입고 오라는 반농담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유화 초상화 작업에 미화 2만달러의 경비가 든다고도 덧붙였다. 나는 초상화가 지난번 얘기했던 상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추측을 했지만 도대체 무슨 상이기에 2만달러씩이나 들여 초상화까지 그리는가, 더 의아해졌다.

2010년 4월1일 모어하우스대학에서 열린 ‘간디킹이케다 평화상’ 시상식에서 박한식(왼쪽 둘째)가 부상으로 유화로 된 초상화 액자를 받고 있다. 사진 박한식 교수 제공

초상화 작업이 다 마무리되어 갈 때쯤, 카터 학장과 모어하우스대학 관계자들이 작업실로 나를 찾아왔다. 그제야 그들은 내가 2010년 ‘간디·킹·이케다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다. ‘간디·킹·이케다 평화상’은 모어하우스대학과 이 대학의 마틴 루서 킹 목사 국제채플이 공동으로 2001년에 제정한 상이었다. 해마다 세계 평화에 공헌하고 비폭력운동에 기여한 인물에게 주는, ‘예비 노벨평화상’으로 불릴 정도로 명예와 권위를 함께 지닌 상이었다. 역대 수상자들의 면면만 봐도 내가 이 상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2007년 1월 ‘마틴 루서 킹 데이’ 때 미국 시애틀에서 20세기 비폭력 평화운동 주창자인 인도의 간디(맨 왼쪽), 미국 흑인 인권운동가 킹 목사(가운데), 일본의 불교 지도자이자 평화운동가인 이케다 다이사쿠 국제창가학회 회장(맨 오른쪽)의 얼굴 휘장을 든 채 시민들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사진 <크리스천투데이> 제공
모어하우스대학은 국제창가학회와 공동으로 전 세계를 순회하며 ‘간디·킹·이케다 평화 건설의 유산전’을 열어 역대 평화상 수상자들의 활동을 널리 알리고 있다. 사진은 2009년 제주대에서 열린 한국 첫 전시회 개막식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첫해에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이 공동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데즈먼드 투투 남아공 대주교, 이츠하크 라빈 전 이스라엘 총리, 평화운동가인 베티 윌리엄스,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전 남아공 대통령,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의 설계자인 존 흄, 남아공 정치인 앨버트 루툴리 등 노벨 평화상 수상자 8명이 포함돼 있었다. 역대 수상자 대부분이 전직 국가 원수이거나 행정부 수반을 역임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정치인사들이었고 인류 평화에 이정표가 될 만한 업적을 이룬 공로가 있는 분들이었다. 내가 평화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실천하려는 노력으로 살아온 건 맞지만 평생 시골에서 한낱 선생으로 살아온 내가 이렇게 큰 상을 받아도 되나 싶은 생각에 감격스러웠지만 숙연한 마음도 들었다. 간디·킹·이케다 평화상은 분명 나에게는 과분한 상이라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간디·킹·이케다 평화상’을 주최하는 모어하우스대학의 마틴루터킹 국제채플에서는 역대 수상자의 초상화를 전시해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첫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와 미하일 고르바초프, 박한식 교수 등의 초상화를 학생들이 견학하고 있다. 사진 모어하우스대학 누리집 갈무리

하지만 내가 이 평화상을 뜻깊게 생각하는 이유는 기라성 같은 역대 수상자들의 면면 때문이 아니었다. 세상에는 평화라는 이름을 포함한 상이 수천개는 존재한다. 그러나 평화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평화상은 그리 많지 않다.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를 전쟁이 없는 상태라고 정의하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러나 그것은 남자를 여자가 아니다라고 정의하는 것과 같은 어불성설이다. 나는 평화를 이질성의 조화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질과 이질이 만나서 대화와 이해를 통해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상태가 진정한 평화의 정의이며 의미이다. 진정한 평화는 종교적, 정치적, 이념적 그리고 문화적 차이를 초월하는 인류 공동의 신성한 가치이다.

간디·킹·이케다 평화상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 평화와 비폭력운동을 위해 헌신한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와 평화주의자이자 비폭력 민권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 목사, 그리고 일본의 불교 사상가인 이케다 다이사쿠 국제창가학회 회장의 삶과 사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각기 인종과 종교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이질성을 넘어서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평화를 구현하고자 했던 세 사람의 공통된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 평화상이었다.

시상식은 2010년 4월1일 모어하우스대학의 마틴 루서 킹 목사 국제채플에서 1500여명의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평화상의 무게 때문이었는지 아침부터 조금 긴장되고 들뜬 기분이었다. 머리도 만지고 옷매무새도 가다듬었다. 수상 소감도 적어보고 수정하기를 여러번 반복했다. 시상식장에 도착해 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채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시상식은 수상자인 나에 대한 헌사로 시작되었다. 모어하우스대학 총장인 마이클 프랭클린 박사가 헌사를 했는데 주로 나를 간디·킹·이케다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배경과 이유를 자세하게 낭독했다. 한반도에서 평화 조성과 정착을 위해 수십년간 헌신해온 점을 높이 평가한다는 찬사와 함께 그동안 내가 실천해 왔던 일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예를 들면, 1994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하고, 2003년 북한 핵위기 해소를 위해 북한과 미국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한 ‘워싱턴-평양 트랙 II 포럼’을 개최하고, 2009년 미국 기자들의 석방을 중재했던 일들을 열거하면서 상호 존중과 대화 그리고 포용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내가 그동안 실천해온 인도주의적인 노력들도 자세하게 언급되었다. 1980년대 수차례 중국의 동북3성을 방문해 조선족 동포들을 취재하여 한국의 이산가족들과 생사를 확인하고 상봉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던 일, 북한의 식량난 해소 노력과 구호 의약품을 북한에 보내는 일을 주선한 것 등을 높이 평가해 주었다. 이러한 나의 오랜 노력이 간디·킹·이케다 평화상의 취지와 의의를 구현해 왔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역대 수상자들과 구별된 점은 정치인이나 운동가가 아닌 학자이자 교육자라는 점이었다. 역대 수상자들 가운데 교육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간디·킹·이케다 평화상 선정위원회는 내가 수십년 동안 수천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평화학을 강의한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위원회는 평화가 실천도 중요하지만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평화에 대한 이론 정립도 절실히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고 또한 젊은 학생들에게 평화에 대한 정의와 중요성을 일깨워주려는 나의 노력에 감사를 표해주었다.

박한식(뒷줄 맨왼쪽) 교수는 조지아대학에서 1995년 국제문제연구소(글로비스)를 열어 은퇴할 때까지 해마다 100명이 넘는 학생들을 이끌고 한국의 판문점(사진) 등 전 세계 평화 유적지를 견학했다.

위원회가 주목한 또 하나의 선정 이유는 현장 학습을 통한 평화 교육이었다. 나는 조지아대학에서 1995년 국제문제연구소(The Center for the Study of Global Issues·글로비스)를 설립하고 이후 매년 100명이 넘는 미국 학생들을 인솔하여 히로시마 평화기념 박물관과 독일 뮌헨에 위치한 다하우 강제수용소 추모 사이트 그리고 한국의 판문점 등을 견학 방문했다. 전쟁의 참상을 학생들에게 직접 눈으로 목격하게 함으로써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한 노력이었다. 히로시마 박물관의 원폭돔을 보며 전쟁과 핵무기의 야수성과 잔인성에 치를 떨며 눈물을 흘리던 젊은 학생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프랭클린 총장의 헌사가 끝나고 간단한 시상이 진행되었다. 간디, 킹 그리고 이케다 가족의 대표들로부터 상장과 트로피 그리고 메달을 수여받았다. 또 세 분의 저작과 출판물을 부상으로 받았는데 무엇보다도 값진 선물이었다. 그들의 생각과 철학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참 기뻤다. 뒤이어 나의 초상화 제막식이 진행되었다. 실물 크기로 그려진 내 초상화는 지금 역대 수상자들의 초상화와 함께 모어하우스대학의 마틴 루서 킹 목사 국제채플에 전시돼 있다.

박한식 교수는 2010년 4월1일 모어하우스대학에서 열린 ‘간디·킹·이케다 평화상’ 시상식에서 원고 없이 즉석 수상 연설을 했다. 사진 박한식 교수 제공

사실 나는 수상 소감을 많이 준비했었다. 그러나 시상식장을 둘러보니 날씨도 덥고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다들 지친 것처럼 보였다. 너무 긴 수상 소감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준비해 온 원고를 뒤로하고 간단한 즉흥 연설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2분40초의 짧은 수상 소감에서 나는 지난 수세기 우리를 지배해 왔던 안보 패러다임을 평화 패러다임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면 인류에게 22세기의 도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안보 패러다임은 필연적으로 갈등과 반목 그리고 불안을 초래하였고 군사적 경쟁만을 야기하였다. 아무리 안보에 힘과 노력을 들여도 안보를 장담하지 못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안보가 안보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도 남북한도 다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많은 국방비를 쏟아붓고 있는데 안보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졌는가? 과분한 상이지만 남은 인생을 평화 교육과 평화 실현에 더 정진하라는 자극과 격려라고 생각한다는 말로 짧은 소감을 마쳤다.

수상 소감에 이어 모어하우스대학 합창단 글리클럽(Glee Club)이 축가를 불러줬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진행된 축가는 내 마음에 큰 감명을 주었다. 1911년에 창단된 이 합창단은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 모어하우스대학의 자랑이며, 뛰어난 합창 실력에 공연을 잘하기로 미국에서 유명하다. 킹 목사의 장례식과 지미 카터 대통령의 취임식에서도 공연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내외 공연으로 그 명성을 쌓아온 합창단이었다. 그런 합창단이 나의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호사를 누린 것이다.

박한식 교수는 2010년 4월 ‘간디·킹·이케다 평화상’ 시상식 때 모어하우스대학의 유서 깊은 남성합창단인 글리클럽의 축가에 큰 감명을 받았다.

나는 합창단의 공연을 감상하는 내내 평화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각기 다른 목소리를 지닌 단원들이 그 이질감을 넘어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합창이야말로 평화와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연주 또한 평화의 롤모델이라는 생각도 했다. 각기 다른 악기들이 악기 본연의 소리를 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다른 소리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어 환상의 화음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다. 인종과 종교 그리고 이념들의 다름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수용하면서 대화와 상호 이해를 통해 조화와 상생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평화라는 것이 나의 일관된 생각이다.

남과 북도 서로의 이질성을 이해하고, 그렇게 이해한 이질성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며, 그 이질성의 평화적 극복 방안을 꾸준히 모색하는 일련의 과정만이 진정한 평화와 통일에 이르는 길이다.

수상 이후 내 개인적인 삶에 큰 변화는 없었다. 대학에서 연구하고 강의했고 평화를 실천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다만, 어디를 가든 간디·킹·이케다 평화상 수상자라는 사실이 나를 소개하는 머리말이 되었다. 간디, 킹, 그리고 이케다같이 인류애와 평화에 기여한 분들과 내 이름 석자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구술집필 권준택 미국 유티카대학 교수/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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