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폐업 사태에 돌아보는 '기억할 권리'

김태훈 기자 2020. 7. 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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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깊은 밤, 아직 실연한 아픔이 생생한 한 이용자가 헤어진 애인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접속한다. 그때 화면에 떠오르는 팝업창. ‘축하합니다! 미니홈피 이벤트에 당첨되셨어요.’ 그냥 몰래 보고 가려 했는데 방문자 이벤트에 당첨되면 자신이 접속한 기록이 미니홈피 주인에게 알려지니 난감할 수밖에 없다. 이용자는 쓰린 속을 가라앉히며 다시 자신의 미니홈피로 돌아와 새벽이면 더욱 충만해지는 감성에 젖어 글을 남긴다. “입으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마음은 왜 이리 아픈 건데….”

■“정상화하려면 100억원 투입돼야”
국내 사회관계망 서비스의 원조 싸이월드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2000년대 당시 흔했던 사연이다. 추억과 감성의 아이콘으로 아직도 회자되는 싸이월드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서서히 퇴장하고 있다. 이미 국세청에서 사업자등록 상태를 조회하면 폐업된 것으로 나온다. 접속이 불안정한 채로 아직 남아 있는 싸이월드 홈페이지에는 과거의 추억을 다른 곳으로 옮겨 저장하기 위해 방문한 이용자들의 발길만 오갈 뿐이다.

지난 5월 26일 싸이월드가 폐업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게시글과 사진, 동영상, 다른 이용자들과 안부를 주고받던 흔적을 다시는 찾아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이용자들은 서둘러 백업에 나서고 있다. 현재로서는 싸이월드가 다시 서비스를 재개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전제완 대표이사가 투자자를 모집하는 등 서비스 재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지만 임금체불 등의 문제로 재판을 받고 있어 결과에 따라 완전히 문 닫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전 대표는 지난 6월 25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해 “싸이월드를 정상화하려면 추가로 돈이 100억원 정도 투입돼야 한다”며 “투자받는 활동을 마지막까지 다 하고 정말 안 된다고 판단되면 백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싸이월드 홈페이지는 첫 화면은 나오지만, 이용자들이 백업하려 하면 필요한 로그인조차 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싸이월드의 ‘클럽(club.cyworld.com)’ 주소로 접속하면 로그인이 가능하고, 이 경로를 거쳐 개인별 홈페이지에도 들어갈 수 있다. 다만 사용하던 비밀번호를 잊은 경우엔 재설정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과거 싸이월드가 직접 나서서 백업 서비스를 제공한 적이 있기도 했으나 지금은 이용자가 과거 기록을 손수 백업해야 한다. 접속이 몰리는 시간대일수록 조회와 내려받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동영상은 여전히 백업이 잘되지 않는다는 문제는 있지만 어쨌든 우회로는 남아 있는 셈이다. 자발적으로 백업 프로그램을 만든 ‘길호넷’이나 스마트폰용 백업 서비스인 ‘리프 미니앱’ 등을 활용하면 자동으로 백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

이용자들이 과거 흔적을 보존하려 나서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싸이월드가 전성기를 누리던 2000년대엔 청소년부터 중년층까지 국내에서만 3200만 명에 달하는 이용자 수를 자랑하며 독보적인 지위를 누렸다. 특히 이 시기부터 인터넷을 통한 소통방식을 일상화한 청년층은 당시의 생활과 내밀한 고민이 담긴 기록들을 가상공간에 저장하고 공유하는 데 익숙하다. 10여 년 전 디지털카메라와 카메라폰이 보급되던 시절의 저화질 사진이지만 클라우드 서비스도 드물던 그때만의 기억을 지금으로선 고스란히 되살리기 어렵다.

자영업자 윤모씨(38)도 이번에 백업한 기록에서 함께했던 친구들의 자취를 찾을 때마다 메신저로 보냈다고 했다. 그는 “잊고 있던 기억 속 친구들의 순수한 모습을 찾는 재미도 있고 때론 감상에 젖기도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서효진씨(35)는 지금은 세상을 떠난 반려동물의 사진을 싸이월드에서 다시 찾아냈다. 서씨는 “10년 전에 죽은 강아지가 가끔 떠올라 보고 싶은데 어디에서도 못 찾다가 싸이월드에 남겼던 사진 몇 장을 발견했을 땐 눈물이 났다”며 “돌아가신 부모님 사진을 찾아냈다는 글도 본 적 있는데, 앞으로는 수십 년이 지나도 보존할 수 있는 저장소에 기록을 모아둬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 국회선 ‘추억보호법’ 발의 움직임
인터넷 공간에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했으나 시대가 바뀌면서 업체와 함께 개인의 데이터까지 사라지고 마는 사례는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싸이월드가 폐업 대신 최대한 회생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고, 이용자들이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상황이라 더 이상의 피해가 나오진 않고 있으나 업체가 통고 없이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중단하면 막을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전기통신사업법과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싸이월드 같은 부가통신사업자에게 규제할 수 있는 의무는 폐업 30일 전 사전신고와 백업 공지 조치가 사실상 유일하다. 막상 폐업하고 나면 보유 중인 개인정보는 즉각 폐기해야 하므로 한 달 동안 이용자들은 모든 개인정보를 백업해야 한다.

국세청의 사업자등록 말소와 달리 과기정통부가 관할하는 부가통신사업자로서 폐업한 것은 아니어서 아직 싸이월드에는 폐업 전 백업 조치 의무를 강제할 수도 없다. 때문에 이용자가 자신이 남긴 기록과 자료를 되찾아올 수 있게 법으로 보장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폐업을 앞둔 기간뿐 아니라 언제든 그간 축적한 데이터를 쉽게 내려받을 수 있게 의무를 지워야 한다는 것이다. 2006년 포털사이트 ‘네띠앙’이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중단했을 때엔 사전 백업 기간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서버업체가 이용자 편의를 위해 한시적으로 기존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게 한 덕에 일부나마 피해를 줄인 경험도 있었다.

싸이월드 사태가 파장을 남기면서 국회에서도 ‘추억보호법’이란 이름으로 관련 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허은아 미래통합당 의원은 이용자 데이터 보호를 위한 간담회를 연 뒤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한 발의에 나선다고 밝혔다. 업체가 폐업에 몰릴 정도로 다급한 상황에서는 백업 기능을 새로 개발하는 데만도 추가적인 개발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업체 입장에서는 최고 1000만원에 불과한 과태료를 무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상시 백업이 가능하게 하려면 법 개정이 필수적이다. 허 의원은 “잊힐 권리만큼 ‘안 잊힐 권리’도 중요하다”며 “개정안에는 개인 데이터가 폐기되지 않고 이용자에게 회수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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