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Interview] 트롤리 컨베이어 방식 스마트팜 개발한 최훈 코리아휠 회장

정혁훈 2020. 7. 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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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는 가만 있고 작물이 움직이는 농장
車공장 컨베이어 보며 "이거다!" 싶었죠
최훈 코리아휠 회장(68)이 충남 보령시 주교면에 위치한 자동차 휠 공장 용지 한쪽에 설치된 스마트팜 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 회장은 휠 공장에서 사용하는 트롤리 컨베이어를 활용해 작물이 비닐하우스 내부를 지그재그로 돌면서 재배되는 스마트팜을 개발했다. [김재훈 기자]
한창 사춘기이던 열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동네에서 똑똑하다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그때부터 조금 삐딱해졌다. 어렵사리 고등학교를 마치긴 했지만 안정된 직장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의 나이 26세이던 1978년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다.

당시로서는 한인이 많지 않았던 워싱턴주 시애틀로 갔다. 현지에서 자동차 정비학교에 다닌 것이 잘 맞아떨어졌다. 철이 들면서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이 살아났고, 여기에 타고난 손재주까지 더해지면서 그야말로 훨훨 날았다. 직접 차린 자동차 정비소에 하루가 다르게 손님이 늘었다. 미국인들이 차 뒤에 달고 다니는 '보트 트레일러' 사업에까지 뛰어들어 큰돈을 벌었다. 어엿한 재미 사업가로 성장한 것이다.

미국으로 건너간 지 24년 만인 2002년 부도 위기에 몰린 한국의 자동차 타이어용 철제 휠 업체를 인수했다. 회사 이름을 '코리아휠'로 바꾸고 자신의 사업 역량을 다 쏟아부었다. 회사는 현대·기아차의 1차 협력업체로서 14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최훈 코리아휠 회장(68) 얘기다. 최 회장을 만나기 위해 최근 충남 보령시 주교면에 위치한 코리아휠 본사를 찾았다. 회사 안으로 들어서니 공장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포스코에서 철제 코일을 구매해 자른 뒤 프레스로 찍고, 용접으로 이어 붙여 타이어 휠을 만드는 곳이다. 코로나19 충격으로 내수 주문이 급감했지만 미국 수주 물량 덕분에 수출이 2배 이상 늘어 보완이 되고 있었다.

공장 내부를 가로질러 뒤편으로 가니 비닐하우스 3개 동이 있다. 오늘 이 공장을 방문한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최 회장이 개발한 신개념의 스마트팜 현장이다. 이곳에서는 자동으로 돌아가는 '트롤리 컨베이어'에 매달린 화분에서 각종 작물이 재배되고 있다. 오이와 고추, 상추, 배추, 취나물, 새싹삼(蔘), 감자 등이다. 이 밖에 웬만한 엽채류는 물론 딸기와 참외 등 과일류, 파프리카와 토마토 등 과채류, 당근과 비트, 고구마, 인삼 등도 재배 가능하다고 한다.

자동차 부품업체 오너가 개발한 이 스마트팜이 장점이 많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농업 관계자들이 수시로 이곳을 찾고 있다. 농촌진흥청과 농업기술센터 등 농업 전문가들을 비롯해 최근에는 이성희 농협중앙회장도 직원들과 함께 조용히 다녀갔다. 충남지사와 옥천군수, 영동군수, 장수군수 등 여러 지자체장도 방문했다.

최 회장은 이 스마트팜으로 국제특허를 포함해 총 19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지금까지 개발된 스마트팜 가운데 가장 실효성 있고, 농민 친화적이라고 강조하는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제조업 공장을 운영하던 분이 왜 스마트팜에 관심을 갖게 됐나.

▷4만평쯤 되는 공장 용지에 유휴 공간이 있었다. 여기에 텃밭을 가꾼 지 10년이 넘었다. 각종 병해충이 많아 농약을 치지 않으면 작물 수확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질소 농도가 97%까지 올라가는 것도 확인했다. 농민들이 비닐하우스에서 나쁜 공기를 마시고 농약 성분을 흡입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농민들이 농약을 쓰지 않고 친환경적이면서 건강하고 편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를 계속 고민하게 됐다.

―컨베이어 방식을 생각한 계기는.

▷작물이 자라는 장소와 수확하는 장소를 분리하면 농민들이 고생하는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우스 내부에서 지그재그로 돌아가는 트롤리 컨베이어에 화분을 매달아 돌리되 칸막이로 구분된 작업 공간으로 화분이 잠시 나왔다 들어가도록 설계하면 된다고 봤다.

―화분을 매다는 트롤리 컨베이어 방식은 어떻게 고안한 건가.

▷타이어 휠 공장의 마지막 단계는 도장 공정이다. 철제 휠을 매단 트롤리 컨베이어가 돌면서 불순물 제거와 세척, 도포, 코팅 공정을 차례로 한다. 이거다 싶었다. 휠 대신에 화분을 매달면 되는 거였다. 우리 회사는 트롤리 컨베이어를 직접 설계하기 때문에 기술력이 뛰어나다. 지금 공장에서 쓰는 트롤리 컨베이어도 11년째 사용하는데, 고장 한 번 없다. 화분은 더 가볍기 때문에 컨베이어 설비를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재배 방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비닐하우스가 있다고 해보자. 트롤리 컨베이어가 비닐하우스 안을 지그재그로 꽉 차게 돌 수 있도록 설치한다. 다만 비닐하우스 한쪽을 3~4평 정도 작업 공간으로 만든 뒤 트롤리 컨베이어가 이 공간을 잠시 지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그러면 컨베이어에 매달린 화분이 비닐하우스 내부를 돌다가 잠깐의 시간 동안 작업 공간을 통과해 지나간다. 이때 작업자가 화분에 열린 오이나 고추 등 수확물을 따내는 방식이다.

―작업 공간을 분리하면 어떤 장점이 있나.

▷작업 공간은 작물이 자라는 비닐하우스 안쪽과 에어커튼으로 분리돼 있다. 작업실엔 에어컨과 공기정화시설이 설치돼 있어 농민들이 쾌적한 온도와 신선한 공기 속에서 일할 수 있다. 농민이 직접 하우스 안에서 작물을 수확하는 일반 비닐하우스 스마트팜과는 차원이 다른 장점이 있는 셈이다.

―제초제 등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나.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일반 농가에서 살충제와 제초제 등 농약을 사용하는 이유는 작물을 흙에서 기르기 때문이다. 흙에서는 아무리 외부와 차단된 공간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잡초가 자라고 벌레가 꼬이게 돼 있다. 흙 안에 이미 그런 요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화분에 자연 흙이 아닌 상토, 즉 인공 흙을 넣는다. 이 때문에 잡초도 생기지 않고 병충해도 생기지 않는다.

―벌레가 꼬인 적도 없나.

▷언젠가 화분 4개에서 진드기가 발견된 적이 있다. 벌레 방지용 모기장을 치기 전의 일이었다. 이때 화분 4개만 밖으로 끄집어낸 다음 약물로 진드기를 죽인 뒤 다시 비닐하우스 안에 넣었다. 이후로는 진드기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만약 일반 스마트팜이었다면 진드기를 잡느라 하우스 내 모든 작물에 농약을 쳤어야 할 것이다. 문제가 발생한 부분만 선별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도 이 스마트팜의 장점이다.

―작물이 얼마나 잘 자라나.

▷컨베이어 시스템의 최대 장점은 작물이 햇빛을 골고루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컨베이어가 지그재그로 돌아가기 때문에 화분이 자연스레 360도 회전하는 효과가 있다. 사방으로 햇빛을 받는 것이다. 일반 비닐하우스보다 잘 자랄 수밖에 없다. 현재 충남대 농대에서 개발한 기능성 배추를 우리 하우스에서 시험재배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전체적인 생산성은 어떤가.

▷같은 면적의 하우스에 비해 최대 18배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 우선 일반 하우스에서는 작물을 심은 사이사이 사람이 작업할 공간을 마련해야 하다보니 작물을 심는 공간이 줄어드는 반면 여기는 사람이 들어갈 필요가 없어 화분을 빽빽이 설치할 수 있다. 특히 트롤리 컨베이어에 여러 개의 화분을 매달 수 있는 데다 레일 자체를 2단이나 3단으로 올릴 수 있어 작물 재배 공간을 수직 방향으로도 늘릴 수 있어 생산성이 높다.

―사례를 들어 설명해달라.

▷지금 오이를 기르고 있는 이곳 70평 비닐하우스를 보자. 트롤리 컨베이어에 238개 화분이 달려 있다. 화분 1개에는 오이나무가 4그루씩, 총 952개의 오이나무가 있다. 오이나무 한 그루에서 하루 최대 1개의 오이가 수확된다. 평균적으로는 현재 하루 700개 오이를 따고 있다. 하우스 천장 높이를 좀 더 높이면 컨베이어를 2단으로 돌릴 수 있어 수확량이 하루 1400개로 늘어난다.

―컨베이어를 모터가 계속 돌리는데 전기료가 많이 들지 않나.

▷저항이 거의 없는 볼 베어링을 활용해 소형 모터로도 컨베이어를 잘 돌릴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전기료가 김치냉장고 두세 개 사용하는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

―투자비는 어느 정도로 보면 되나.

▷평당 200만원 정도로 잡으면 된다. 70평이면 1억4000만원인 셈이다. 일반 스마트팜 투자비가 평당 400만원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특히 생산성은 더 높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그 정도면 농민들이 투자할 만하다고 보나.

▷3년 정도 농사를 지으면 투자비를 충분히 회수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관심을 보이던 농민들도 막판에 대부분 고개를 가로젓는다. 마지막에 꼭 이렇게 묻는다. "정부 지원은 얼마나 나옵니까?" 정부 지원이 없다고 하면 "아휴 그걸 어떻게 하느냐"고 말한다. '투자=지원'이라는 농민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전략으로 보급을 늘리기는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보급을 늘릴 복안이 있나.

▷다양한 방법을 구상 중이다. 이미 앞서가는 농민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고, 여러 지자체에서 농민 지원 사업으로 도입할 생각도 하고 있다. 렌탈 기업과 손잡고 임대식으로 하는 것도 생각해 보고 있다.

―제조업을 하다가 농사를 지어보니 어떤가.

▷지금껏 참 열심히 살았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못 이기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못 이긴다는 자세로 일해왔다. 스마트팜을 시작한 이후로 아침마다 비닐하우스로 가서 작물이 밤새 얼마나 자랐나 보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 이런 즐거움을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이다.

▶▶ He is…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6세에 미국 시애틀로 이민을 갔다. 자동차 정비 기술을 배워 직접 정비소를 차렸다가 보트 트레일러 사업까지 뛰어들어 큰돈을 벌었다. 2002년 부도 직전의 기아차 협력업체 코리아휠을 인수해 매출 1400억원대 회사로 키웠다. 공장 텃밭에서 10년 넘게 농사를 지으면서 농민들이 보다 건강하고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연구한 끝에 지금의 '트롤리 컨베이어' 방식 스마트팜을 개발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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