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새벽, 오로빌
스리 오로빈도Sri Aurobindo는 20세기 인도의 독립운동가이자 명상가였다. 인도 캘커타의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조국인 인도에 헌신하기 위해 다시 귀국했다. 이후 요가와 명상에 집중했으며 독립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인간의 이상향을 현실 세계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목표를 품고 있었는데, 이를 구축하기 위해 영적 파트너였던 미라 알파사와 손을 잡았다.
영적인 스승을 일컫는 용어, ‘마더’라 불리는 프랑스인 미라 알파사는 1914년 퐁디셰리에 왔다가 오로빈도를 만난 후 그가 환시 속에서 이미 만난 사람임을 깨닫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후 ‘인류의 가장 큰 적은 인간 내부의 탐욕에 있으며 명상을 통한 자기 성찰로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스리 오로빈도의 영적인 가르침을 기반으로 1968년 인도 남동부의 한 황무지위에 세계 최대 규모의 공동체 마을인 오로빌을 설립했다. 처음 정착한 사람들은 맨손으로 직접 척박한 대지 위에 씨를 뿌리고 묘목을 심어 지금의 울창한 오로빌을 완성했다.
영국의 소설가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지은 공상 사회 소설에서는 공산주의 경제와 민주주의의 정치, 교육과 종교의 자유가 완벽하게 갖춰진 가상의 이상 국가를 그려냈는데, 이를 유토피아라 불렀다. 유토피아에서는 모두가 공동체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오로빌은 인류가 오랫동안 그려왔던 공동체를 실현하는 실험 마을이다. 유네스코와 같은 국제기구를 비롯해 정부 기구, 개인에게까지 지원을 받고 있는 이유다.
오로빌에서의 노동은 경쟁과 소비중심적인 자본 주의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 일반 사회와 다르다. 직업의 종류와 상관없이 정해진 시간만큼만 일하고 매달 한화로 30만원 가량의 돈을 번다. 오로빌에서는 이 돈을 급여가 아닌 ‘유지비’라 부른다. 그나마도 별도의 소득이 있는 사람은 세금을 내야 한다. 한 달을 두고 사용하기엔 너무 적은 돈이 아닌가 싶겠지만 사실 오로빌에서 큰돈이 필요한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마을에서 가격이 책정된 모든 것들은 거주자들에게 저렴하게 적용되기 때문. 또한 직접 농사를 지은 작물로 음식을 해먹고 모든 교육이 무료로 지원되며 심지어 의료보험이 적용돼 어떤 질병이든 지원해 준다.
오로빌 공동체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해야 하며 지속 가능한 삶을 일궈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경을 최대한 고려한 안전하고 효과적인 에너지 사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신념은 유기농법과 환경친화적 기술 연구, 대체의학, 에너지 재활용, 토양과 수자원 보호로 이어진다.
생태 공동체 확산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오로빌 인근 사막 지역에 대한 녹화사업이다. 유럽 열강의 수탈로 울창한 열대림이었던 땅이 사막화 되었는데, 오로빌리언들이 1970년대부터 나무 심기에 참여하면서 다시 초록빛으로 가득한 숲의 모습을 되찾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사다나 포레스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세계 각지의 자원봉사자들과 힘을 모아 여러 녹화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현재 오로빌은 2018년 기준, 54개국에서 온 2814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인도인이 가장 많으며 그다음으로 프랑스, 독일 순이다. 그중 한국인도 35명이나 된다. 오로빌에 거주하기 위한 조건에 국적이나 민족, 종교는 없다. 누구라도 이 곳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것이다.
오로빌을 경험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방문객을 뜻하는 ‘게스트’와 자원봉사자인 ‘볼런티어’, 오로빌 정식 시민이 되기위한 과정을 밟는 ‘뉴커머’, 정식 시민인 ‘오로빌리언’ 등의 권한으로 오로빌에 머물 수 있다. 게스트는 별도의 입장료 없이 마을을 관광할 수 있는데, 이때 오로빌의 신념과 매력에 반해 뉴커머의 과정을 밟는 이들이 많다.
오로빌리언이 받는 비자는 짧게 5년, 길게 10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비자가 만료되면 본국에 돌아가서 다시 비자를 받아와야 하는데, 왕복 비행기 표를 살 돈이 없어 본국에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를 대비해 오로빌리 언이 되기 전,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비행기 티켓값만큼의 돈을 보증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오로빌에 관한 더 자세한 정보는 www.auroville.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아라 / kar@outdoornews.co.kr
Copyright © 월간 아웃도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