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완벽한 과학은 없다, 완벽한 과학수사도 없다

김시균 2020. 6. 2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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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가 자백한 8차 살인사건서
과학수사 화살, 엉뚱한 사람 지명
억울한 옥살이 20년 이어져 오점
체모에서 분석한 혈액형 틀리고
중성자 방사화분석 과신한 탓에
오류가능성 무시하고 범인 특정
과학수사 한계 끊임없이 의심을

◆ 매경 명예기자 리포트 ◆

화성연쇄살인 과학수사 '허와 실'

32년 전 일어난 '이춘재 8차 사건'을 저질렀다는 누명을 쓰고 20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 모씨에 대해 재심이 진행되고 있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에서 13세 박 모양이 자기 집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목 졸려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윤씨를 범인으로 보고 검거한 뒤 강간살인 혐의를 씌워 검찰에 송치했다.

이후 윤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형됐다가 20년을 복역한 뒤 2009년 가석방됐다. 그러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진범이 이춘재로 밝혀지자 지난해 11월 수원지방법원에 재심 청구를 했다. 최근 이 사건은 수원지법에서 두 번째 공판까지 이뤄졌다. 현재 화성 8차 사건과 관련한 수사기록 등을 갖고 있는 곳은 경기남부경찰청 이춘재연쇄살인 수사본부다. 10여 년째 과학수사 자문위원회에 소속된 필자가 수사본부에서 최근 입수한 국과수 감정서 등에 따르면 과거 경찰이 믿었던 초기 과학수사 결과는 대부분 엉터리였다.

현장에서 수거한 체모 10점 중 6점을 분석해 범인 혈액형을 B형으로 단정한 것부터 오류였다. 뒤늦게 진범으로 확인된 이춘재 혈액형은 O형이었다. 결국 사건 현장에서 경찰이 수거한 체모가 모두 범죄와 관련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재심 재판부가 확보한 체모 2개 정체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장에서 수거한 체모에서 검출된 티타늄 양이 일반인에 비해 300배를 넘는다는 경찰 측 주장도 크게 과장된 것이었다. 국과수가 한국인 20명을 상대로 검사한 모발에서 티타늄 검출량은 평균 4.5PPM. 일본인도 2.2~35PPM이라고 한다. 국과수 자료에서 티타늄 검출량이 한국인 평균 대비 4배 이상인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풀밭에서 자라는 쐐기풀도 티타늄 함량은 고작 80PPM 수준이다.

법원이 윤씨에게 실형을 선고한 가장 중요한 근거는 국과수의 '중성자 방사화 분석' 결과였다. 법정에 처음 제시된 새로운 과학수사 기법이었지만 낯선 첨단 수사기법에 대한 확인이나 검증 노력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과학 상식이 턱없이 부족했던 경찰·검찰·재판부가 국과수의 설익은 '첨단' 분석법을 무작정 믿어버렸다. 윤씨의 신체적 장애에 대한 고려도 없었고, 심한 고문을 받았다는 절박한 주장도 무시해버렸다.

국과수 감정은 놀라울 정도로 엉성한 것이었다. 우선 국과수가 분석에 쓴 체모 2점 무게가 0.467㎎과 0.89㎎인 짧은 조각이었다. 그런데 국과수가 사용한 중성자 방사화 분석에는 적어도 1㎎ 이상인 시료가 필요했다. 분석 시료량이 부족하면 분석 오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국과수가 동일인 체모로 판정했다는 분석 자료도 대단히 허술했다. 동일인으로 판단한 원소 10종 중 실제로 비슷한 경향을 보이는 것은 구리, 아이오딘(요오드), 황 정도뿐이었다. 나머지 원소들 분석값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을 만큼 차이가 컸다. 윤씨 체모에서 검출된 망간은 현장에서 채취한 체모보다 무려 3배 더 많았고, 브로민은 12%에 지나지 않았다. 알루미늄·망간·티타늄 분석값이 일반인 함량보다 높은 것이 '직업에 의한 환경오염' 때문이라는 결론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외부에 노출된 모발과 달리 체모(음모)가 작업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 또한 설득력이 낮다. 윤씨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동위원소 분석'은 사실 '중성자 방사화 분석'이라는 낯선 화학분석 방법이다. 원자로에서 핵분열 반응을 촉발시키는 중성자빔을 이용한다. 금속성 소재에 들어 있는 원소들 일부가 방사성으로 변환되면서 독특한 방사선을 방출한다. 그런 방사선 파장과 세기를 분석해 소재에 들어 있는 원소들 종류와 양을 파악한다. 주로 금속성 소재의 품질을 관리하는 공학적 목적으로 쓰이는 비파괴 검사법이다. 이 분석이 쉬운 것도 아니다. 원소 종류에 따라 중성자빔을 10시간이나 쪼여 줘야 하는 것도 있다. 그런 분석을 몇 차례 반복하면 모발·체모가 중성자빔 열기에 의해 훼손돼 버린다.

국과수가 모발·체모에 대한 중성자 방사화 분석법을 적극 개발했던 것도 아니었다. 새로운 과학수사 기법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1980년대 초 다양한 시도 중 하나였을 뿐이다. 실제 범죄 수사에 적극적으로 사용하지도 않았다. 이춘재 8차 사건이 유일한 사례였던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중반부터 훨씬 더 강력하고 유용한 DNA 감식 기술이 대세로 자리를 잡으면서 중성자 방사화 분석은 완전히 잊혀버렸다.

1989년 국과수 감정서는 놀라울 정도로 허술했다는 사실은 이제 와서 검찰이 애써 지적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수사를 지휘했고, 법원에 기소를 해서 무기징역까지 받아낸 주체였던 검찰 측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무작정 국과수와 경찰에 책임을 떠넘긴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새로운 수사기법을 검증하는 노력도 없었고, 일관성 없는 감정서 내용을 확인해보는 기초적 시도도 없었다.

또 국과수가 의도적으로 '표준시료' 결과를 바꿔치기했다는 검찰 측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국과수가 원자력연구소 보고서의 'STANDARD'를 현장 체모를 뜻하는 '증1호'로 둔갑시켰다는 것이 검찰 측 주장이다. 현장에서 채취한 시료는 일반적으로 'STANDARD'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전문가 7명 발언을 근거로 내세웠다. 일반적으로 표준시료(standard)는 분석에 사용하는 기기를 점검하기 위해 사용하는 시료를 뜻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원자력연구소에서도 중성자 방사화 분석을 위해 표준시료를 사용했다. 그런 표준시료는 시약상에서 구입한 특급시약으로 국과수가 분석을 의뢰했던 체모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분석기관이 사용한 표준시료 분석 결과를 굳이 보고서에 남겨둘 이유 또한 없다. 검찰이 동원한 전문가들이 고려하지 못했던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오히려 국과수 분석 담당자가 외부 기관인 원자력연구소에 '증1호' 정체를 숨기기 위해 'STANDARD'라는 기호를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일 것이다. 실제 분석값을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오류'나 '조작' 가능성을 함부로 들먹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어설픈 분석으로 엉뚱한 용의자에게 억울한 옥살이를 하도록 만든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실수였다. 그렇다고 어설픈 억측으로 새로운 기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던 국과수 전문가 명예를 훼손해서도 안 된다. 검찰이 책임을 면해보려는 시도라면 더욱 그렇다. 오히려 낯선 과학수사 태동기였던 30년 전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길이 될 수 있다.

■ 코로나 진단기술 'PCR', 화성 그놈도 찾아냈다

경찰이 1986~1991년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10차례나 이어졌던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한 것은 놀라운 성과다. 1990년 일어난 9차 사건 증거물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DNA가 범인을 찾아준 열쇠였다. 확실한 과학적 증거 앞에서는 희대의 살인마 이춘재도 범행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증거물에 남아 있는 이중나선 구조의 DNA를 반복적으로 복사해주는 '중합효소연쇄반응(PCR)'이라는 유전자 증폭 기술이 범인의 정체를 밝혀줬다. 깊은 바닷속 뜨거운 열수공에 살고 있는 미생물에서 채취한 중합효소를 사용한다. 코로나19를 진단하는 '실시간 유전자증폭기술(RT-PCR)'에도 사용되는 생명공학 기술이다.

앞으로 과학수사는 더욱 빠르게 발전할 것이다. 다만 과학수사가 만능일 수는 없다. 증거 수집에서 분석과 해석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사람이 진행한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조금이라도 실수가 개입되면 엉뚱한 사람이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다. 특히 과학수사를 수행하는 전문가들의 무의식적인 '확증 편향'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과학수사에 활용하는 과학적 원리나 기술에 대한 지나친 기대도 경계해야 한다. 중성자 방사화 분석에서 경험했듯이 모든 과학적 분석이 과학수사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새로 개발하는 과학수사 기법은 반드시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

과학수사 기법에 대한 공개적인 학술 연구가 반드시 보장돼야만 한다. 과학수사는 공개적인 검증과 경쟁을 통해 발전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사법적 절차가 끝난 수사 자료에 대한 후속 검증 연구도 필요하다. 과학수사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국민 인권을 지켜주는 일이다. 과학수사에서 정보화 기술의 활용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개인 초상권이나 개인 정보를 가볍게 여기는 중국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한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죄 없는 시민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서는 절대 안 된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 도움 =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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