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동물원] 낙산사에 천연기념물 수리부엉이 가족이?
부엉이와 올빼미의 차이는? "딱히 기준 없어"
수리부엉이는 번식 외 목적으로 '사랑' 즐겨
'지혜의 상징' 알려졌지만, 까마귀보단 지능 낮아
해돋이 명소로 유명한 강원도 양양 낙산사 의상대에 올봄 귀한 손님이 날아들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맹금류 수리부엉이 가족이다. 알에서 부화한 새끼 세 마리가 무럭무럭 자라 제법 위풍당당한 몸집을 뽐내고 있다. 수리부엉이 보금자리는 사람이 갈 수 없는 험한 바위틈에 있는데, 먼 발치에서나마 보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어미새는 부지런히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아다 먹이고 있는 중이다. 신성한 사찰 경내에서 살생이 일어나는 게 꺼림직하진 않을까. 낙산사 주지 금곡스님은 “새롭게 태어난 생명을 무럭무럭 키우는 뜻깊은 과정아니냐. 그건 살생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리부엉이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서식하는 올빼미과 10종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큰 ‘대장’이다. 올빼미·부엉이류는 수리·매와 더불어 맹금류의 양대 파벌이다. 이 족속에 속하는 새들은 옛날 이야기, 영화, 문학, 기업 로고, 올림픽 마스코트 등을 통해 예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소비될 정도로 ‘뭔가 있어 보이는 새’로 인식된다. 그런데 올빼미·부엉이를 얘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제기하는 질문이 있다. “올빼미와 부엉이의 차이는 과연 무엇인가?” 이 심오한 물음에 선문답처럼 이렇게 답할 수 있겠다. “범과 호랑이는 무엇이 다른고?”
똑같은 짐승인데 부르기 나름이라는 얘기다. 부엉이든 올빼미든 영어로는 똑같이 owl이다. 이 족속의 이름을 개별적으로 붙이는 과정에서 ‘부엉이’, ‘올빼미’ 또는 ‘소쩍새’가 됐다. 일각에서는 부엉이와 올빼미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얼굴 위 양옆에 마치 귀처럼 쫑긋 올라온 귀깃을 얘기하기도 한다. 귀깃이 있으면 부엉이, 없으면 올빼미라는 것이다. 실제로 수리부엉이는 게슴츠레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눈매와 그 위로 뾰족하게 솟은 귀깃이 트레이드마크다. 그런데 수리부엉이에 이어 ‘2인자’로 통하는 솔부엉이부터 당장 귀깃이 없는 둥근 머리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작은 덩치에 상대적으로 유순한 이미지의 소쩍새 역시 귀깃을 갖고 있다. 귀깃으로 올빼미와 부엉이를 구분하기엔 예외가 너무 많다. 이 때문에 ‘부르기 나름’이라는 말이 정답일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리부엉이·솔부엉이·쇠부엉이·칡부엉이·올빼미·소쩍새·큰소쩍새 등 7종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이 중 수리부엉이가 압도적으로 큰 덩치를 자랑하고 때로는 노루를 공격할 정도로 뛰어난 공격성을 자랑하다보니 상대적으로 관심을 많이 받는 편이다. 그런데 조류연구자 신동만 박사는 수리부엉이가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고 한다.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그것도 포유동물이 아닌 새로 매우 드물게 번식 이외의 목적으로, 사랑 그 자체로의 짝짓기를 즐긴다는 것이다. 신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수리부엉이는 변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암수가 평생 붙어 산다.
그리고 번식철이 아닌데도, 육아에 전념하는 와중에도 종종 진한 애정행각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봄철에 낳은 새끼들을 다 키워서 장성시킨 뒤 늦여름부턴은 남편과 아내가 모두 기진맥진해 일시적인 ‘갱년기 증상’을 보이지만, 이후 원기를 회복한 뒤 다시 뜨거운 애정과시 모드로 돌입한다는 것이다. 신 박사는 “오리과의 원앙이 부부금슬의 상징처럼 알려져있지만, 사실 원앙 수컷은 짝짓기 뒤 가족을 본체만체하는 전형적인 바람둥이”라며 “수리부엉이만큼 강한 부부애를 과시하는 동물은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부엉이·올빼미류의 사냥법은 무기로 치면 스텔스기, 포유동물로 치면 매복 공격으로 사냥하는 호랑이나 표범에 종종 비유된다. 맹금류의 라이벌인 수리나 매가 주로 대낮에 하늘서 땅으로 급강해 덮치거나, 공중을 휘휘 돌다가 먹잇감을 나꿔채는 방식으로 사냥을 하는 ‘추격전’의 모습을 보인다면, 대개 야행성인 올빼미류는 장시간 끈질기게 잠복해있다가 목표물을 향해 순식간에 급습해 사냥 자체는 최단시간에 끝내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똑같이 잡아먹히는 약자 입장이긴 해도 수리와 매의 추격에 공포와 절망 속에 쫓기며 도망치다가 붙잡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전혀 예상도 못한 상황에서 올빼미·부엉이의 급습으로 생을 마감하는게 그나마 조금 덜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동요 ‘겨울 밤’의 첫 가사(부엉부엉새가 우는 밤/부엉 춥다고서 오는데~)가 보여주듯 우리나라에서 이들 족속은 주로 ‘어둠’ ‘음습’ ‘밤’ ‘침잠’의 이미지로 인식돼왔다. 반면 서양에선 ‘똘똘한 새’라는 인식이 뚜렷하다.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와 영국 아더왕 전설에 등장하는 마법사 멀린의 어깨에 앉은 새가 올빼미다. 서양사 속 올빼미는 현자(賢者)의 모습을 지닌 캐릭터로 종종 그려진다. 그러나 실제 이들의 지적 능력에 대한 조류 전문가들의 평가는 다소 박하다. 이미지 덕을 꽤나 봤다는 것이다. 조류 전문가인 경희대 생물학과 유정칠 교수는 “사실 정말로 똑똑한 지능을 보여 연구자들의 집중 연구대상이 되고 있는 새는 까마귀이고, 올빼미·부엉이류의 뇌는 이들보다 작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올빼미·부엉이는 문화 콘텐츠로 활발히 소비된다.1998년 일본 나가노 올림픽에서는 스노렛츠라는 네마리 올빼미가 마스코트로 선정됐다. 마치 어린아이가 개발괴발 대충 그린듯한 거친 동선 때문에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렸던 마스코트 중 하나지만 그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세계적인 온라인 여행 정보 업체인 트립어드바이저의 회사 로고도 올빼미를 형상화해 여행객들에게 친숙하다. 소설과 영화로 대성공을 거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는 올빼미·부엉이가 호그와트 마법학교 학생들과 바깥 세상을 이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반려동물 이상의 존재로 그려지면서 해외에서는 반려동물로 올빼미를 키우려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돼지, 뱀, 도마뱀, 거미 등 반려동물의 범위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맞춰 언젠가 국내에도 ‘반려 올빼미’가 공식적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런 일은 부디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둠 속 창공을 날며 위용을 뽐내는 이 새들이 좁은 새장에 갇혀 살아가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답답해진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일 때가 가장 아름답고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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