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포커스] 수천만원으로 수억짜리 집 사는 '갭투자' 사라지나

김창성 기자 2020. 6. 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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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부동산시장 과열 차단을 위한 대책을 지난 17일 발표했다. 사진은 손병두(왼쪽부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김현미 국토부 장관, 김용범 기재부 1차관. /사진=장동규 기자
[기로에 선 ‘전세’]③ 주택담보대출 요건·전세대출보증 이용 제한 강화

# 맞벌이인 A씨 부부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 자식 교육만큼은 제대로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하다. 둘 다 국내 대기업을 다녀 소득이 높은 데다 결혼 당시 양가 부모님의 금전적인 지원으로 대출없이 대치동에 10억원대 전셋집을 구했다. 돈 걱정이 크게 없는 자신과 달리 집주인은 마이너스통장 등의 대출이 많은 갭투자자라는 사실을 전세계약을 진행하며 알았다. 이들 부부가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 가야 할 때 집값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돌려줄 능력이 있을 것인지 불안하다.

주택시장에 활개치던 ‘갭투자’(전세 낀 주택 매입)가 사라질지 주목된다. 정부의 대출규제 강화 이후 기승을 부리던 갭투자가 집값을 비정상적으로 끌어올렸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정부가 갭투자의 기반인 전세마저 겨냥해 칼을 빼들었다.

최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앞으로 주택시장 불안 조짐이 나타날 경우 언제든지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고 주저없이 시행할 것”이라고 강조한 대로 부동산시장은 다시 새로운 규제를 맞닥뜨렸다. 그동안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매매나 청약에 집중됐던 것과 달리 이번엔 서민 주거수단으로 통하는 전세가 타깃이 됐다.



너도나도 갭투자… 부작용 속출


갭투자는 전세보증금을 지렛대 삼아 주택을 매수하는 투자방식이다. 매매가와 전셋값의 차이만큼 투자해 세입자가 사는 집을 매수한다. 예를 들어 매매가격이 6억원인 주택의 전셋값이 5억원이면 전세를 끼고 1억원만 있어도 집주인이 될 수 있다.

갭투자자의 집에 사는 세입자는 집값이 떨어지면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없는 위험에 놓인다. 반면 집주인은 집값이 상승하는 시기에 단기 차익을 노리고 갭투자를 했다가 집값이 하락하면 오히려 손해를 입을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로 대출마저 막히면 사실상 직접 거주도 불가능하게 된다. 주택시장에 이 같은 갭투자가 성행하며 부동산 광풍이 불던 시절에는 불과 몇천만원으로 뛰어드는 투기가 넘쳤다.

갭투자가 성행한 이유는 적은 자금을 투자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특수한 전세계약 방식이 기반이 된다. 집값에 맞먹는 고액 전세가 소액 투자를 가능하게 한 것. 수만명의 인터넷카페 회원을 거느린 부동산 스타강사 A씨는 갭투자로 소형주택을 여러 채 사들여 부자가 됐다고 홍보했다. 그 과정에서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불법행위가 드러났고 지난해 불법대출 혐의로 구속됐다. A씨의 말만 믿고 갭투자에 뛰어든 수천명은 역전세난에 갇혀 꼼짝 못 하는 처지가 됐다.

갭투자자 중에는 20~30대도 상당하다. 청약가점이 낮아 새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소외된 데다 사회에 막 나와 높은 집값을 감당할 만한 여유 자금도 없기 때문. 이렇듯 갭투자가 단순 투기에서 내집마련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상황에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자 정부가 결국 칼을 빼든 것이다.
정부가 지난 17일 부동산시장 과열 차단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사진은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밀집 지역. /사진=뉴시스 DB


갭투자 차단, 효과 거둘까


정부의 6·17부동산대책에는 규제지역 확대와 대출규제 강화, 갭투자 차단 등이 포함됐다.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요건과 전세대출보증 이용 제한을 강화한 것은 갭투자 차단을 위한 대표적 규제다. 다만 정부가 국민의 내집마련 사다리마저 끊었다는 논란도 있다.

이번 대책 내용을 보면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시세 9억원 초과 주택 구입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경우 1년 내 전입 의무를 부과했다. 앞으로 모든 규제지역에서 주택 구입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무주택자는 1년 내 해당 주택에 전입해야 한다. 1주택자는 기존 주택을 팔고 신규 구입주택 전입을 6개월 안에 완료해야 한다.

전세대출보증 기준 강화도 갭투자 차단을 위한 조치다. 시세 9억원 초과 주택 보유자에 대한 전세대출보증을 제한하고 전세대출을 받은 후 9억원 초과 주택 구입 시에 대출을 즉시 회수할 방침이다.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시세 3억원 초과 아파트를 신규 구입하는 경우도 전세대출보증 제한 대상에 추가된다. 전세대출을 받은 후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3억원을 넘는 아파트를 구입하는 경우 전세대출 역시 회수 조치키로 했다.

전세가 집을 소유하지 않는 세입자의 주거수단임에도 이렇게 규제의 대상이 된 건 집값을 올리는 주범이 갭투자라는 판단에서 시작됐다. 실제 서울 강남에선 고액 전세 세입자가 갭투자한 집주인보다 부자인 사례를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정부의 이번 대책에 대해 부동산업계 전문가의 해석은 엇갈린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풍선효과로 가격이 급등했던 지역의 매수세가 주춤해져 거래 위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개발호재를 노리고 갭투자하는 수요가 감소해 실거주 중심의 시장 재편이 기대된다”고 낙관했다. 그는 “1주택자 갈아타기를 위해선 종전 집을 팔고 새집을 매입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며 “전세 거주를 위한 무주택자 대출의 경우 큰 제한이 없지만 주택 구입 시 불이익이 커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반면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무주택자와 1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돼 정책의 방향성이 무주택자와 실수요자를 위한 방안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부분의 지역과 계층에 규제가 가해져 앞으로 주택시장에 불법거래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김창성 기자 solral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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