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의 문학으로] 6·25 70돌, 전쟁문학의 자리

최재봉 2020. 6. 1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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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봉 ㅣ 책지성팀 선임기자 

한국문학이라면 곧 식민지배를 거쳐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어둡고 무거운 세계를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외국 독자들에게 각인된 한국문학의 이미지가 특히 그러해서,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문학이 세계 무대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할 무렵에는 식민·분단·전쟁이 아닌 다른 소재와 주제의 작품을 알려달라는 주문이 많았다.

민족문학의 특수성이 세계문학의 보편성으로 이어진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문학의 특수성을 보장하는 것은 단연 굴곡진 현대사라 할 수 있다. 분단과 전쟁으로만 범위를 좁히더라도, 6·25 전쟁이 겨레의 삶과 심성에 끼친 영향은 막대한 것이었고 한국문학사의 걸출한 작품들이 그로부터 나왔다. 최인훈의 <광장>에서부터 박완서의 <나목>, 조정래의 <태백산맥>, 김원일의 <겨울 골짜기>, 황석영의 <손님> 등은 그 일부일 뿐이다.

전쟁 체험 세대가 뒷전으로 물러나고 기억조차 아스라해지면서 요즘은 전쟁을 다룬 소설을 보기가 예전처럼 쉽지 않다. 최근작으로는 인민군 출신 인물의 수기를 바탕으로 한 안재성의 실록소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가 떠오를 뿐이다. 전쟁을 간접적이거나 부차적으로 다룬 작품들이라 해도 김훈의 <공터에서>와 임철우의 <연대기, 괴물>, 최수철의 <포로들의 춤>, 조선희의 <세 여자> 정도에서 더 나아가지지 않는다. 어느덧 한국문학에서 전쟁 이야기는 희소재가 된 것이다.

전쟁문학의 역사는 유구하고 면면하다. 서구문학의 시원에 자리한 <일리아스>부터가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을 그린 서사시다. 중국에 <삼국지>가 있다면 러시아에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있다. ‘대망’으로도 알려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의 ‘국민 소설’ 반열에 올랐다. 한국에서도 동학농민전쟁을 다룬 송기숙의 <녹두장군>, 베트남전쟁을 무대로 한 안정효의 <하얀 전쟁>, 임진왜란을 배경 삼은 김훈의 <칼의 노래> 등이 전쟁문학의 전통을 이어왔다.

“전쟁은 지옥이다. 하지만 그 말은 전쟁을 절반도 설명 못 하는데, 왜냐하면 전쟁은 미궁이자 공포이자 모험이자 용기이자 발견이자 신성함이자 연민이자 절망이자 갈망이자 사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전 참전 경험을 담은 미국 작가 팀 오브라이언의 소설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에서 전쟁은 이렇게 설명된다. 전쟁은 지옥이되 지옥 이상이라는 것, 그 안에는 인간 경험과 감정의 거의 모든 측면이 들어 있다는 것이 오브라이언의 생각이다. 전쟁은 곧 삶인 것이다.

“전쟁의 목적은—살인이요, 전쟁의 수단은—스파이 행위, 배반과 그 장려, 주민의 황폐, 식량을 얻기 위한 군의 약탈, 강도, 군사상의 계략이라고 불리는 속임수와 거짓말이며, 군인 계급의 기풍이란 자유의 결핍, 즉 규율, 무위, 무지, 잔인, 방탕, 음주지.”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을 배경으로 한 <전쟁과 평화>에서 주인공 중 한 명인 안드레이 공작은 전쟁을 이렇듯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사실 소설 앞부분에서 그는 착한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일상에 싫증을 느껴 하루빨리 전쟁에 나가고자 안달한 바 있었다. 참전 초기에 그는 “즐겁고 재미있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의 분위기를” 띠며 실제 전투 참가를 전후해서는 “물결치는 환희의 감정”과 “크나큰 삶의 희열”을 맛보기도 한다. 그런 그가 전쟁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로 돌아선 것은 전투 중 입은 부상으로 결국 죽음을 맞게 되는 자신의 운명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아, 전쟁은 분명 미친 것들이 창안해 낸 미친 짓 중에서도 으뜸가는 미친 짓이다.” 전쟁 중 폭격으로 두 오빠를 잃은 <나목>의 주인공 이경은 이렇게 절규한다. 전쟁은 분명 광기와 탐욕의 소산이자 낭비와 허무의 극치다. 그럼에도 우리가 전쟁문학을 쓰고 또 읽는 까닭은 무엇일까. “좀 터무니없지만, 죽음이 코앞에 닥쳤을 때만큼 당신이 살아 있는 때도 없다. 당신은 가치 있는 게 무엇인지 깨닫는다. 이제 막, 마치 처음인 양 당신은 당신 자신과 세상 속에서 으뜸인 것, 잃어버릴지 모를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다.”(<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그렇다. 지옥이자 죽음인 전쟁은 또한 사랑과 삶의 거울상이기도 하다. 6·25 70주년에 새삼 전쟁문학의 역사를 더듬고 그 빈자리를 아쉬워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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