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투자에 몰렸던 2030 실수요는 어디로.. "점점 멀어지는 내집 마련"

유병훈 기자 2020. 6. 1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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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결혼을 준비하는 직장인 A씨(28)는 지난 17일 정부가 발표한 21번째 부동산 대책 기사를 보고 격분했다. 정부가 아파트 매매가와 전세금의 차이(Gap)를 이용해 집을 사들이는 이른바 ‘갭 투자’를 정조준하면서 신혼집 마련 계획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6·17 대책은 규제지역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경우 6개월 이내에 전입하도록 했다. 또 투기과열지역 내의 3억원 초과 아파트 구입 시에는 전세 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하도록 했다. A씨는 "지방 근무로 당분간 부부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 우선 전세를 끼고 집을 사려고 했는데 계획이 틀어졌다"면서 "다주택자들이 집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을 동안 손도 쓰지 못한 정부가 3억원대 아파트를 사려는 무주택자에게까지 이렇게 규제를 들이밀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1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갭투자를 부동산 가격 불안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하고 6·17 대책을 통해 갭투자를 억제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정부의 이 같은 인식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일 발표한 ‘2019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자가보유율(집을 소유한 비율)과 자가점유율(자가에 실거주하는 비율)의 차이로 추정한 수도권 갭투자 비율은 지난 2017년 2.9%에서 4.5%로 급등한 이후 2018년 4.3%, 2019년 4.1%로 4%대를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도권에서 갭투자가 늘어난 시점이 수도권 집값이 들썩이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하는 것으로 본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번 갭투자 열풍 뒤에 20대와 30대도 있었다는 점이다. 국토부가 국회에 제출한 올해 1~4월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 내 3억원 이상 아파트의 ‘아파트 입주계획서’에 따르면, 매수 목적을 ‘임대 계획’으로 신고한 건수로 추정한 갭투자자(2만1096명)는 전년동기(9386명)대비 두 배 이상 급증했다. 그중에서도 2030세대의 갭투자 증가세가 확연했다. 20대 갭투자자가 지난해 초 416명에서 올해 초 1199명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난 데 이어, 30대도 2327명에서 6297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투자수요는 아니다. 20대와 30대의 특성상 내 집 마련을 하려는 실수요자가 상당하다. 여력이 안 돼 일단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경우를 비롯해 근무 여건 때문에 당장 들어가기 어려운 경우 등 다양한 실수요자가 포함돼 있다.

대책이 발표되자 온라인 부동산 카페나 오픈 카카오톡방 등에서는 2030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부동산 관련 오픈 카카오톡방의 한 이용자는 "투기는커녕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매수부터 하고 전세금을 모으는 30대들이 실수요자가 아니면 누가 실수요자인가. 왜 규제 대상이 되어야하는가"라며 "다주택자 규제는 더 강화할 자신이 없으니 애먼 돈 없는 청년들에게 짐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했다. 2030세대가 활동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정부가 2030이 집을 사지 못하게 하니 더 불안해져서 집을 사고 싶게 만든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이번 갭투자 규제로 2030세대의 실수요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2030세대로서는 갭투자라도 못하면 주택시장에서 끝까지 낙오될 수 있으니 (갭투자에) 뛰어든 것인데, 그런 측면까지 규제로 옥죄어야하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2030세대의 접근권은 완전히 가로막힐 것"이라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2030세대의 갭투자는 투기수요라기보다 장기적 주택구매를 미리 앞당긴 것으로 봐야 했다"면서 "오늘 발표로 2030세대로 대표되는 ‘돈 없는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길은 없어진 것"이라고 했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장도 "2030세대가 청약가점을 통해 분양받기는 너무 요원한 일이다"라면서 "가점을 위해 10~20년 기다리는 동안 자산가격이 너무 올라가면 매입이 불가능한 면도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오늘 갭투자 대책은 기존에 여유자금이 있던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영향이 없어 투자수요 억제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면서 "오히려 실수요자들에게 운신의 폭이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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