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 김광규 [이광표의 내 인생의 책 ③]
[경향신문]

고백하건대, 시(詩)를 쓰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쑥스러운 얘기지만 그때는 밑줄 쳐가면서 시를 읽곤 했다. 대학 시절, 시를 써서 동인 모임에 가져가면 종종 이런 말을 들었다. “김광규 시랑 분위기가 비슷한데.” 김광규 시집을 사들고 하숙방에 돌아와 그의 시를 읽었다. 내 시를 꺼내 다시 읽어 보니 분위기가 좀 비슷한 것 같았다.
그때 읽었던 시집 가운데 하나가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이다. 초판은 1979년에 나왔다.
정치적 상황은 엄혹했고 그 때문에 참여적인 시가 많았던 시절. 그런데 김광규는 평이한 일상의 언어와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시로 표현했다. 그의 시는 그래서 다른 시들과 많이 달랐다.
이 시집에서 가장 유명한 시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이다.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로 시작한다.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그러나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 /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김광규는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라고 반복해 묻는다. 저 반성이 어디 4·19세대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지금도 울림이 크다.
김광규의 시는 단순하고 담백하다. 군더더기를 다 발라내고 꼭 필요한 핵심만 남겨 놓은 듯하다. 그래서 구차하거나 사치스러운 꾸밈이 없다. 그의 시의 가장 큰 덕목은 ‘삶을 대하는 자세’다. 거기서 성찰과 반성이 나온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 본 김광규의 시. 누군가의 쓸쓸한 뒷모습이 보인다. 거기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이광표 | 서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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