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형의 애정만세] 짠하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하는 이상한 호칭 '아저씨'

한은형 소설가 2020. 6.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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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어떤 아저씨의 독자가 되었다. 아저씨는 자기 블로그에 글을 쓰신다. 아침마다 커피 원두를 손으로 가는 것에 지쳐, 이제는 기계식 커피 그라인더를 들여봐야지라는 마음에 이것저것 알아보다 그 블로그에 닿게 되었다. 아저씨는, 내가 사려는, 하지만 사용기를 잘 찾아볼 수 없는 문제의 커피 그라인더를 쓰고 계셨던 거다.

아저씨의 커피 이야기를 보다가 다른 이야기까지 보게 되었다. 아침마다 한 덩이의 빵을 구워 하루의 양식으로 삼는다든가, 그 빵을 아침에 굽기 위해 매일같이 저녁에 반죽을 한다든가, 집에서 꽤나 먼 요리교실에 – 그것도 여자들만 있는 요리교실에 – 다닌다든가 하는 소소한 이야기를 말이다.

8개월이나 기다려 그 요리 교실에 가게 되었다며 감상기를 남겨 놓으셨는데, 요리 교실에 가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요리 교실의 요리 이야기가 아니라 낯선 동네인 요리 교실에 가면서 아저씨가 보는 풍경에 대해 적으셨던 거다. 꽃을 본 이야기, 아저씨의 동네와 다른 동네의 공기, 요리 교실의 낯선 기물들과 낯선 관계들에 대하여. 글을 읽다가 생애 최초로 요리 교실에 등록하고 싶어졌다. 아저씨의 마음과 같다. 요리를 배운다기보다 낯선 동네, 낯선 사람들, 낯선 관계로부터 오는 활력을 얻고 싶어졌달까.

블로그를 뒤지다 우연히 만난 어떤 아저씨. 아저씨가 올린 요리 교실 감상기는 요리 이야기가 아니라 낯선 동네의 요리 교실에 가면서 보는 풍경들로 가득했다. 꽃을 본 이야기, 아저씨의 동네와 다른 동네의 공기, 요리 교실의 낯선 기물들과 낯선 관계...글을 읽다가 생애 최초로 요리 교실에 등록하고 싶어졌다. /촬영=고운호 기자

아저씨의 서재 사진을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 아저씨의 독자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저씨는 서재의 책들을 3막으로 분류하고 계셨는데, 이러하다. 배움의 1막, 생업의 2막, 숙성의 3막. 아마도 학창 시절의 책으로 보이는 그 누렇게 변색된 하드카버 책들은 ‘법(法)’과 ‘론(論)’으로 끝나는 고담준론 세계의 것이었다. 생업의 2막의 책은 ‘무역’과 ‘재무’ ‘선물 옵션’ 같은 단어가 들어가는 돈의 세계의 것이었고. 숙성의 3막이 무엇보다 내 관심을 끌었으니, 외서를 빼고는 내가 거의 갖고 있는 책들이기 때문에 그랬다. ‘수프와 빵’, ‘향신료의 지구사’ ‘지중해 샐러드’ ‘타르틴 브레드’.

아저씨는 자신의 책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1막과 2막의 책은 누런데 3막의 책은 하얗고, 1막과 2막의 책은 빨랐지만 ‘정적’이라면 3막의 책은 느리지만 ‘동적’이라고. 또 1막과 2막의 책은 책장에 가지런히 있는데, 3막의 책들은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고도. 인생의 책들을 3막으로 나눈 아저씨의 분류법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지금 몇 번째 막을 지나고 있는지, 또 한참 시간이 흘러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면, 나의 1막과 2막과 3막을 뭐라고 이름 붙일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아직 그런 식으로, 내가 어떤 단계를 지나가고 있다거나, 내가 사서 꽂아놓는 책들이 어떤 식으로 변화를 겪어왔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저씨의 동작이나 말투에는 오랜 세월 사회에서 살아온 인생이 꽉 차 있습니다. 그것은 시시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며,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는 등 천차만별이지요. 그 숨겨진 멋, 젊은이들은 아직 갖추지 못한 분위기를 전하고자 그들을 취재하고 관찰하여 도감으로 정리했습니다. 지금까지 신경 쓰지 않았던 ‘아저씨’를 즐기는 가이드. 앞으로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힌트를 찾게 될지도 모릅니다.” 나카무라 루미가 쓰고 그린 ‘아저씨 도감’이라는 책의 ‘책 사용법’이다. 그러니까 ‘아저씨 사용법’인 셈이다. 이 ‘블로그 아저씨’는 어떤 타입에 속하는지, 또 내가 알고 지내는 아저씨들은 어떤 타입에 속하는지 새삼 궁금해져 집안 어딘가에 박혀 있던 이 책을 끄집어냈던 것이다.

아저씨 타입을 다 소개할 수는 없고, 대략 소개하자면 이렇다고 한다. 평범한 양복 아저씨, 잘난 아저씨, 귀찮을 것 같은 아저씨, 여름의 아저씨, 얼빠진 얼굴의 아저씨, 아저씨스러운 아저씨 등등. 내 관심을 끈 것은 ‘예술가 아저씨’다. 다른 아저씨들과 달리 ‘디자인 계통’과 ‘순수 예술 계통+페스티벌 계통’으로 세분화되어 있기도 하지만 역시나 내가 알고 있는 별난 아저씨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현란한 셔츠를 입고 짙은 선글라스를 쓴 풍채 좋은 아저씨를 보고는 소설가 P를, 천연 염색으로 된 전통 복장을 입고 외출한 아저씨를 보고는 개량 한복을 입고 나와 나를 난처하게 했던 소설가 H를,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청청 패션’을 세련되게 소화하는 백발 아저씨에는 뮤지컬 제작자 K를 매칭할 수 있었다.

아저씨. 참으로 이상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짠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처연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하는 단어… 3인칭의 누군가를 “그 아저씨가 말이야.”라고 불렀던 적 말고, ‘아저씨’라고 누군가를 불러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혈연관계로 이어진, 그러니까 촌수가 아저씨라서 아저씨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오촌 말고는. 아빠의 삼촌들의 아들들인, 그러니까 아빠의 사촌인 남자들을 아저씨라고 부를 때마다 나는 말할 수 없게 간지러웠다. 왜냐하면 나이는 여섯 살에서 여덟 살 위의 남자들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게 나도 이상하고, 듣는 그들도 이상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아저씨’들을 십대로 기억하는데 이제 그들은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니까 숙성 중.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tvN 제공

넷플릭스에 스트리밍 되기 시작한 이선균과 아이유가 나온 ‘나의 아저씨’를 보다가 ‘나의 아저씨’들을 생각했다. ‘순리대로 살지만 소년의 순수성과 어른의 지혜를 갖춘 아저씨’ 어쩌구 하는 드라마 소개 문구를 보다가 나의 아저씨들은, 내 기억에는 십대 소년이었던, 작은 할머니들이 전화를 걸어 문제집은 풀었는지, 간식은 먹었는지를 챙기던 그 아이들은, 어떤 얼굴로 사회 생활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던 것이다.

‘아저씨 도감’에는 아저씨 타입을 진단하는 진단표가 있는데, 이런 항목들이다. ‘가끔은 바다가 보고 싶어진다’ ‘출장지에서 손수건을 사서 곧바로 쓴 적이 있다’ ‘두건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 ‘향수에 흥미가 있다’ 등등. 나의 아저씨들이 어느 쪽인지 전혀 모르겠다. 물론 이런 시시한 심리 테스트 같은 것으로 누군가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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