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삭다'와 '썩다'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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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가 1인 2역을 한다? 언뜻 보면 말이 안 되지만 실제로 그런 단어들이 있다.
'품, 신, 배, 띠, 켜' 등이 그렇다.
이 한 음절짜리 단어들은 명사이긴 하지만 뒤에 어미만 붙이면 '품다, 신다, 배다, 띠다, 켜다' 등의 동사로도 쓰인다.
이런 단어들은 1인 2역을 하지만 소리 하나가 살짝 바뀐 두 단어가 의미상 상당한 유사성을 지니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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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가 1인 2역을 한다? 언뜻 보면 말이 안 되지만 실제로 그런 단어들이 있다. ‘품, 신, 배, 띠, 켜’ 등이 그렇다. 이 한 음절짜리 단어들은 명사이긴 하지만 뒤에 어미만 붙이면 ‘품다, 신다, 배다, 띠다, 켜다’ 등의 동사로도 쓰인다. 이런 단어들은 1인 2역을 하지만 소리 하나가 살짝 바뀐 두 단어가 의미상 상당한 유사성을 지니는 경우도 있다. ‘낡다’와 ‘늙다’가 그렇고 ‘붉다’와 ‘밝다’도 그렇다.
그렇다면 ‘삭다’와 ‘썩다’는 어떨까? 앞엣것들은 모음 하나만 다른데 이 둘은 모음뿐만 아니라 자음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상으로는 묘하게 통하는 바가 있다. 삭은 것이든 썩은 것이든 본래의 완전한 상태는 아니다. 미생물이 번식하면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인데 앞엣것은 ‘발효(醱酵)’를 일으키는 미생물이 작용하는 것이고, 뒤엣것은 ‘부패(腐敗)’를 일으키는 미생물이 작용하는 것이다.
발효를 일으키는 미생물은 흔히 효모균이라 하는데 고유어로는 ‘뜸팡이’다. 발효균의 작용으로 가공된 해산물 중 대표적인 것은 ‘젓’ 혹은 ‘젓갈’이다. ‘젓’은 발효시킨 결과물 자체를 뜻하고, ‘젓갈’은 그것으로 만든 반찬을 뜻하기도 하지만 실제 용법에서는 구별되지 않는다. 과거에 밥을 고봉으로 먹을 때는 짭조름한 젓갈이 꼭 필요했다. 젓갈의 맛 때문이기도 하지만 몹시 짜니 밥도둑일 수밖에 없었다.
‘삭다’와 ‘썩다’는 자음과 모음 모두 다르니 두 끝 차이인데 음식에서는 비교가 아예 불가능하다. 삭은 음식은 감칠맛이 더해지지만 썩은 음식은 큰 탈만 일으킨다. 발효식품이 건강식품으로 대접을 받으면서부터 ‘삭다’ 또는 ‘삭히다’도 대접을 받는다. 그렇다면 사람도 그리 대접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나이가 들수록 삭는 것은 추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간미가 깊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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