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양산(陽傘)의 재발견
[경향신문]
비 올 때 쓰는 우산과 햇빛을 가리는 양산은 18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구분 없이 썼다. 영어로 우산인 ‘umbrella’가 초창기부터 더 오래 사용됐는데, 라틴어 어원 ‘umbra(그늘, 그림자)’에서 알 수 있듯, 햇빛 가리개의 용도가 더 일반적이었다. 양산 사용은 고대 이집트와 페르시아, 인도, 중국, 그리스, 로마 등 동서양에서 기원전 2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역사가 길다. 등장 초기 양산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하늘을 받치는 신성한 물건으로 여겨 일상보다는 성직자나 왕실의 행차나 의식에서 의전용으로 사용됐다.
이후 오랫동안 양산은 상류층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다. 패션을 완성하는 액세서리나 비를 막는 용도였다. 남성들은 비를 막는 행동이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해 비를 그냥 맞거나 모자를 썼다. 19세기 중반 이후 철제 살과 대, 방수재질의 가벼운 우산이 생산되면서 비로소 우산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비 오는 날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양산은 되레 중·노년 여성들의 다소 예스러운 패션 아이템으로 간주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양산의 쓰임새가 부쩍 주목받고 있다. 대전시는 코로나 속 주요 폭염대책으로 양산 쓰기 캠페인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폭염 피해 예방은 물론 양산의 거리만큼 자연스럽게 거리 두기 효과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폭염 취약계층에겐 아이스팩과 양산을 지원한다고 한다. 남성들에게 양산을 쓰라고 먼저 권장한 것은 일본 정부로, 2018년 폭염이 기승을 부리자 이런 캠페인을 벌였다. 이후 국내 지자체들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양산 쓰기가 대중적으로 정착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폭염과 코로나의 이중공격을 받는 이 여름은 분위기가 다르다. 자외선 차단크림이 남녀를 막론한 필수품이 된 것처럼 양산도 필수품에 근접하고 있다. 폭염에 양산을 쓰면 주변 온도는 7도, 체감온도는 10도까지 낮춘다고 한다. 온열질환과 피부질환 방지, 자연스러운 거리 두기를 한번에 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다. 양산 쓰기는 마스크 쓰기와 더불어 나와 공동체의 건강을 지키는 친환경 코로나 대책이 될 수 있다. 겨울철 내복 입기처럼 양산 쓰기도 ‘개념남, 개념녀’의 상징이 될까.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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