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레깅스가 점령한 등산복, 나도 입어볼까

신소윤 2020. 6. 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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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커버스토리] 인왕산 등반 & 2030 유행
밀레니얼 세대가 재편한 등산복 트렌드
레깅스+긴 양말+엉덩이 덮는 바람막이
인왕산에 오른 2030 레깅스족이 주도
'등산복 같지 않은 등산복' 출시 봇물
필라테스 강사 정현주씨가 서울 삼성산에 올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등산은 더는 고릿적 취미가 아니다. 등산복 브랜드들은 국내 등산 문화를 재편한 밀레니얼 세대의 취향에 주목한다. 자기애가 강하고 ‘워라밸’을 중시하는 이들은 기존 등산복 공식을 깨고 마음 가는대로 입고 산에 올랐다. 새로운 등산 패션이 탄생했다.

ESC가 20~30대 등산객을 취재해보니 대세는 남녀를 불문하고 레깅스다. 지난달 27일 서울 인왕산에서 만난 대학생 김다희(19)씨는 레깅스에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허리에 바람막이 점퍼를 묶어 입었다. 최신 등산복 패션의 정석이다. 블랙야크 남윤주 마케팅팀장은 “레깅스에 두껍고 긴 스포츠 양말을 올려 신고, 그 위에 티셔츠나 엉덩이를 살짝 덮는 바람막이 점퍼 또는 아노락(가슴까지 지퍼가 달린 경량 후드 재킷)을 입거나 허리에 묶는 게 요즘 20~30대 등산객 패션의 전형”이라고 설명했다.

남성 등산객도 대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왕산 야간 등산을 즐기는 직장인 문영철(37)씨는 “등산복을 입으면 뭔가 아재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능성 레깅스에 반바지 차림으로 산을 찾는다. 코오롱스포츠 김영미 디자인 실장은 “젊은 남성의 등산복 패션 경향은 상의는 편안하게, 하의는 붙게 입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남성의 경우 살짝 통이 넉넉한 바지형 레깅스를 입거나 레깅스와 반바지를 함께 입고, 위에는 맨투맨이나 반소매 티셔츠 등 일상복을 많이 입는다”고도 덧붙였다.

인왕산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있는 등산객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레깅스가 산으로 간 이유는 애슬레저(athletic·운동+leisure·여가)의 유행과 맞닿아 있다. 애슬레저는 일상과 레저를 즐길 때 모두 입을 수 있는 옷차림으로 세계적으로 유행 중이다. 달리기, 요가나 필라테스 할 때 주로 입던 레깅스가 거리에 나오고, 이 유행이 그대로 20~30대와 함께 산을 타고 올라간 것이다.

애슬레저 유행과 레깅스 열풍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세계를 해설하다-스포츠를 입다>에 잘 그려져 있다. 다큐멘터리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편한 옷차림에 열광하는 이유를 분석한다. 애슬레저 유행을 잠깐 붐이 일었다가 사라지는 패션으로 치부하지 않고 의복 문화 역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으로 바라본다. 레깅스 유행이 먼저 일어났던 미국의 경우 ‘충격적인 노출로 보이는 것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고 평가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개인적인 편리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의 확산이 옷차림의 변화를 이끌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등산복으로 레깅스를 선택한 사람들 또한 이런 변화를 좀 더 앞당긴 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20~30대 등산객들이 레깅스를 등산복으로 택한 이유는 다양하다. 헬스트레이너 김슬기(30)씨는 패션보다 편의성을 따져 레깅스를 입는다. “헐렁한 바지를 입으면 낙엽이나 돌멩이 같은 것들이 들어가 불편하다”며 “근육을 딱 잡아줘 무릎에 가중도 덜 가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여름에는 통풍이 잘되는 기능성 레깅스를 입고, 겨울에는 보풀이 있어 좀 더 따스한 레깅스를 입는다.

일상복과 구분 없이 입을 수 있다는 편리함 때문에 레깅스를 택하기도 한다. 퇴근 후 야간 등산을 즐기는 블랙야크 남윤주 마케팅팀장은 “등산 계획이 있는 날이면 출근할 때부터 레깅스에 박스 티셔츠를 입고 출근한다”고 말했다.

코오롱 ‘나이트하이커 경량 재킷’(사진 왼쪽)과 ‘로드랩 레깅스’를 입은 등산객. 코오롱 제공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시각적으로 예뻐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것)하다는 이유도 있다. 주 1회 등산을 즐기는 필라테스 강사 정현주(34)씨는 “인스타그램에서 등산 코디, 등산복 패션 등을 검색하면 대부분 레깅스다. 실제로 레깅스를 입고 산에 가면 몸을 움직이기 편하고, 사진을 찍었을 때 날씬하고 예쁘게 나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레깅스보다 조거팬츠(발목 부분에 고무줄 따위를 넣어 아랫부분을 좁게 디자인한 바지)를 더 자주 입는다. “도심의 낮은 산을 갈 때는 레깅스로도 충분하지만, 본격적인 산행을 할 때 바위에 걸터앉거나 험한 길을 지나다 찢어질까 염려가 된다”는 게 이유다.

애슬레저 유행의 연장선에서, 정씨처럼 레깅스 대신 다른 옷차림을 고른 이들도 있다. 지난 달 27일 인왕산에서 만난 대학생 김은현(19)씨와 김현아(19)씨는 트레이닝 바지에 반소매 티셔츠와 모자가 달린 점퍼를 입고 산에 올랐다. 두 사람에게 이날 패션 콘셉트를 물으니 “기자님,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한 패션) 아시죠?”라고 되물었다. 이들은 “대신 너무 평범해 보일 수 있으니 요즘 또래들이 좋아하는 브랜드인 엘엠시(LMC), 오베이(Obey) 로고가 크게 적힌 티셔츠를 챙겨 입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요즘 등산복은 일상복과 운동복의 경계에 있다. 블랙야크 ‘요세미티 티셔츠’와 ‘오버행 레깅스’. 블랙야크 제공

이런 패션을 추구하는 이들은 ‘나 오늘 산에 간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걸 지양한다. 등산 연령층의 저변이 넓어지면서 등산이 더는 큰마음 먹고 하는 일이 아닌, 일상의 틈새에서 즐기는 아웃도어 활동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은 탓이다.

20~30대 등산 문화에서 패션은 중요한 화두다. 보여주기를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 때문이다. 1990년대생 온라인 서비스 기획자 곽나래씨는 자신의 책 <90년대생 소비 트렌드 2020>에서 ‘에스앤에스(SNS)에서 건강하고 매력적인 나를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강해지면서 ‘운동 또한 보여주기 좋은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여러 등산 브랜드들은 20~30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등산복 같지 않은 등산복’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컬럼비아는 등산용 바람막이 점퍼지만 허리 부분 하단에 로고를 크게 박아 ‘스트리트 패션’ 분위기를 낸다. 등산화의 투박함을 누그러뜨린 트레킹화 등도 출시했다. 밀레와 네파는 아웃도어용 레깅스를 선보였고, 코오롱스포츠는 산의 난도에 따라 레깅스 압박감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세 종류를 내놨다. 블랙야크는 남성 레깅스족을 위해 반바지 일체형 레깅스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코오롱스포츠 김영미 실장은 “도심의 산을 서너 시간 오를 때는 일반 면 티셔츠를 입어도 충분하지만, 등반 횟수가 적은 젊은 등산객들도 경험이 쌓이다 보면 등산복의 기능적 요소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패션 트렌드에 기능성을 더한 제품으로 등산복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있으면 좋은 인왕산 등반 장비

헤드 랜턴 야간 등산을 즐기는 도심의 산악인이라면 하나쯤 마련해두면 좋다. 휴대전화에 있는 손전등 기능을 믿고 산에서 내려오다간 액정이 깨지는 불상사를 맞을 수 있다. 전문 아웃도어용 제품은 5만원대 정도, 다이소 등에서는 3~50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등산용 스틱 등산하다가 길에서 주워 의지한 나뭇가지에 고마움을 느낀 적이 있다면 구매를 고려해볼 만하다. 등산 스틱은 등산할 때 하체에 집중되는 하중을 상체로 분산시킨다. 등산 마니아인 블랙야크 남윤주 팀장은 “좀 과해 보이긴 하지만 한번 가지고 다니기 시작하면 등반 때마다 가져가게 된다”고 말한다. 산을 오르는 다리가 2개에서 4개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헤어밴드 더위가 찾아오는 계절이다. 땀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보다 ‘가성비’가 좋은 등반용품이 없다. 땀이 눈에 흘러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등산화 도심에서 가벼운 등반을 할 때는 운동화도 충분하지만, 등산화와 운동화는 이름 그대로 각각의 목적이 다르다. 낮은 산이라도 흙길 위주이거나 경사가 가파르면 등산화의 존재감은 더 빛난다. 가을철, 습기를 머금은 낙엽 길을 걸을 때도 큰 도움이 된다. 오직 등산 갈 때만 신어야 할 법한 투박한 디자인 대신 겉모습은 운동화 같지만, 접지력과 통기성이 좋은 가벼운 워킹화도 최근 많이 출시됐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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