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식물 건강의 해' 우표에 담긴 고민 [우정이야기]

2020. 6. 3. 09:5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간경향]

메뚜기가 떼를 지어 이동 중이다. 올해 초 소말리아·에티오피아·케냐 등 동아프리카 지역을 폐허로 만들더니 이젠 파키스탄과 인도를 휩쓸고 있다. 인접국인 중국에서는 천적인 오리 떼를 보내 서쪽 국경을 지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메뚜기 100만 마리는 하루에 1톤 정도의 농작물을 먹어치우며, 규모가 큰 메뚜기 무리는 하루에 10만 톤을 해치운다고 한다. 수만 명의 1년치 식량이기도 하다. 동아프리카에 등장한 메뚜기는 그 이상이다. 2월에 추정된 개체 수만도 4000억 마리에 이른다. 취동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사무총장은 “(메뚜기 떼와의) 전쟁은 길어지고 새로운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몇 달 동안은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20년 ‘세계 식물 건강의 해’를 맞아 발행된 기념우표들. 한국·스위스·룩셈부르크·튀니지·세르비아·라트비아 순 (윗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하필이면 올해는 유엔이 ‘병충해로부터 식물을 구하자’며 선포한 ‘세계 식물 건강의 해’이기도 하다. FAO에 따르면, 메뚜기 떼 같은 병충해로 인해 인류는 해마다 작물의 40%를 잃고 있다.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전남 해남에서는 2014년 풀무치 수십억 마리가 간척지 논에 나타나 수확을 앞둔 벼에 피해를 입혔다. 한국은 수년째 ‘소나무 재선충’ 피해를 입는 국가이기도 하다. 이 같은 고민은 서구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세계 식물 건강의 해’ 기념우표를 발행한 스위스는 콩풍뎅이(Japanese beetle)가 포도나무 잎을 갉아먹는 사진을 우표에 넣었다. 한국의 우정사업본부도 5월 29일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살충제로 해충을 박멸하자.’ 한 세기 전 인류가 선택한 답은 간단했다. 1940년대 초반 대량 합성된 DDT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농업계에 광범위하게 쓰이기 시작했다. ‘해충과의 전쟁에서 인류가 승리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꽃의 수분을 돕는 벌들은 사라지고 저항성을 갖는 해충이 등장했다. 먹이사슬의 상층에 위치한 동물도 살충제에 중독돼 죽어갔다. 암과 기형 등의 문제도 발생했다. 20세기 후반, 병충해에 강한 유전자 조작(GM) 작물이 등장했지만, 생태계 교란·안전성 논란 등의 문제는 끊이지 않는다.

기후변화·산림파괴 등은 병충해가 활동하기 좋은 조건을 만들고 있다. 메뚜기 떼가 극성인 것도 기후변화로 사막지역의 건기와 우기가 불규칙해지면서 수천억 마리의 메뚜기가 동시에 부화했기 때문이다. 6년 전 해남 풀무치 떼도 그해 여름의 늦고 건조한 장마가 원인이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가 간 무역과 이동이 늘면서 특정지역의 해충이 옮겨와 골칫덩이가 되기도 한다. ‘식물 건강’의 문제는 복잡한 고르디우스 매듭처럼 얽히고설켜 있어 어떤 고리부터 끄집어내야 할지 선택이 쉽지 않다. 고리를 찾는다 해도 곧 엉켜버린다.

보이는 적은 ‘병충해’지만,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건 ‘우리’였다. 유엔도 이번에는 생태학적인 해결책을 찾아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특히 농민들에게는 천적을 이용하는 등 친환경 방제를 권고했다. 유엔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기아 종식’·‘기후변화 대응’·‘지속 가능한 농업’ 등 인류 공동의 목표 17개를 정해 발표하기도 했다. ‘세계 식물 건강의 해’는 이러한 움직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해충이 아닌 꿀벌을 집어넣은 세르비아의 기념우표, 산림과 농작물, 동물과 사람을 그린 한국의 기념우표 등은 이런 고민을 담고 있다.

이재덕 뉴콘텐츠팀 기자 duk@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

인기 무료만화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