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L 타임머신 ⑰ 1971-1972] 크루이프와 아약스, 유럽을 지배하다

조남기 2020. 5. 27. 13: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UCL 타임머신 ⑰ 1971-1972] 크루이프와 아약스, 유럽을 지배하다

(베스트 일레븐)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UEFA 챔피언스리그의 가치를 월드컵보다 높이 평가했다. 전 세계의 우수한 축구 선수들이 모이는 ‘축구의 본향’ 유럽에서, 최고의 조직력과 기량으로 똘똘 뭉친 최고의 팀이 격돌하는 이 대회의 수준이 4년에 한번 치르는 월드컵을 상회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대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의 몫은 저마다 다르겠으나, 유로피언컵이라 불렸던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UEFA 챔피언스리그의 히스토리와 권위가 월드컵에 결코 모자람이 없다는 건 대부분이 인정하는 사실일 것이다. 그 빛나는 역사를 추적해본다. 유로피언컵이 첫 선을 보이게 된 1955-1956시즌부터 2018-2019시즌까지 빅 이어를 두고 다퉜던 세계 최강의 팀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편집자 주


BACKGROUND

1971-1972시즌을 앞두고 대회 방식에 변화는 없었다. 유로피언컵(現 UEFA 챔피언스리그)이 도입기를 지나 안정기로 접어든 때여서다. 32강이 조별 라운드가 아닌 홈 & 어웨이 승부 방식이었다는 걸 제외하고는 현재의 UEFA 챔피언스리그나 그때의 유로피언컵이나 차이는 없다. 원정 다득점도 모든 라운드에 적용됐고, 승부차기도 도입됐으며, 참가팀이 32개가 넘어가 규모가 작지만 예선전도 있었다.

해당 시즌 본선 32강에 합류하기 위해 예선에서 맞붙은 클럽은 발렌시아(스페인)와 유니온 룩셈부르크(룩셈부르크)였다. 결과는 발렌시아의 압승이었다. 발렌시아는 1·2차전 합산 4-1로 승리를 거두며 사뿐하게 32강에 안착했다.

1971-1972시즌의 특이점이 있다면 유로피언컵 전체에서 터진 득점이 예년에 비해 퍽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경기당 2.78골이었다. 매 시즌마다 거뜬하게 경기당 세 골을 넘어가던 시기와 달리 1971-1972시즌부터는 경기당 득점이 서서히 감소폭을 보였다. 아무래도 모두가 원정 다득점 룰에 익숙해지며 실점을 최소화하기 위한 실리적인 축구를 구사했기 때문이지 싶다.


ROAD TO FINAL

당대 유럽은 페예노르트(네덜란드)와 아약스(네덜란드)가 연거푸 유럽을 정벌하며 바야흐로 ‘더치 전성시대’가 열렸던 때였다. 그 위용은 이 시즌 본선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페예노르트는 키프로스 챔피언 올림피아코스 니코시아을 무려 17-0으로 폭격하며 16강에 올랐다. 함께 본선을 노니는 클럽이지만 엄연한 ‘레벨 차’가 있음을 방증한 경기였다.

16강에서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발하기도 했다. 보루시아 뮌헨글라트바흐(독일과)와 인터 밀란(이탈리아)의 대진이 짜였는데 1차전이 그만 무효 처리되고 말았다. 당시 보루시아 뮌헨글라트바흐는 1차전에서 인터 밀란을 7-1로 제압해둔 상태였다. 그러나 인터 밀란의 로베르토 보닌 세나가 경기 중 어디선가 날아온 코카콜라 캔에 맞는 일이 발생해 UEFA는 경기를 무효화했다. 경기장은 하필 보루시아 뮌헨글라트바흐의 홈이었다. 이후 두 팀은 1차전부터 다시금 경기를 치렀고, 그 결과 인터 밀란이 최종 스코어 4-2로 8강에 진출했다. 보루시아 뮌헨글라트바흐로서는 캔을 투척한 누군가 때문에 다잡은 다음 라운드 진출을 놓친 셈이었다.

8강에서는 페예노르트가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아약스·셀틱(스코틀랜드)·인터 밀란 등 이른바 올라갈 만한 팀은 다 4강에 도착했지만, 페예노르트는 이 관문을 넘어서지 못했다. 상대가 유럽 무대의 전통 강호 벤피카(포르투갈)였기 때문이다. 벤피카는 1·2차전을 합쳐 다섯 골을 퍼부으며 페예노르트의 1971-1972시즌 여정을 조기에 끝내버렸다.

아약스는 페예노르트를 잡고 올라온 벤피카를 4강에서 탈락시켰다. 골이 많이 나지 않는 1·2차전이었는데 합산 결과는 1-0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터진 아약스 쉬작 스와트의 결승골이 두 팀의 명운을 갈랐다. 벤피카는 페예노르트라는 거목을 고꾸라뜨렸음에도 불구하고 요한 크루이프를 필두로 ‘토털 풋볼’을 펼치는 아약스만큼은 넘어서진 못했다. 한편 반대편 대진에서도 지루한 공방전이 계속됐다. 인터 밀란과 셀틱은 1·2차전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했고, 승부차기 끝에 인터 밀란이 결승전 티켓을 손에 쥐었다.


FINAL MATCH

결승전은 크루이프가 주인공이었다. 크루이프는 후반전 기회가 왔을 때마다 골을 퍼부어 아약스의 2-0 우승을 이끌었다. 인터 밀란은 어떻게든 상대의 골망을 갈라보려 했으나, 필드 위의 11명이 마치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듯한 아약스의 신비로운 축구엔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아약스는 토털 풋볼의 창시자 리뉘스 미헐스가 바르셀로나로 떠나고 감독이 슈테판 코바치로 교체되는 이슈가 있었지만, 워낙 팀 철학이 굳건하게 뿌리를 내려둔 터라 지휘관 교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상에 당도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아약스는 레알 마드리드(스페인)·벤피카·인터 밀란에 이어 네 번째로 유로피언컵 2연패에 성공했으며, 네덜란드 클럽은 페예노르트와 아약스의 기록을 합쳐 세 시즌 연속으로 유럽을 정복했다. 이때는 네덜란드 풋볼이 그야말로 ‘대세’였다.


HOW TO WIN THE COMPETITION

1971-1972시즌의 아약스는 정말이지 완벽한 팀이었다. 1970-1971시즌의 위닝 스쿼드를 바탕으로 선수단의 자신감이 한층 더 무르익은 채 유럽에 뛰어들었다. 경기 결과만 보아도 이 시절의 아약스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32강 1·2차 디나모 드레스덴(동독)전 2-0, 16강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프랑스)전 6-2, 8강 아스널(잉글랜드)전, 3-1, 4강 벤피카전 1-0, 결승 인터 밀란전 2-0. 아약스는 유로피언컵 아홉 경기를 치르며 실점을 단 세 번으로 틀어막았고 14골을 넣었다. 골도 골이지만, 아홉 경기 3실점은 수비력이 정말 대단했다는 뜻이다. 높낮이가 있는 리그 팀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 각국 챔피언과 싸우며 남긴 기록인데, 이는 토털 풋볼의 응집력에 극에 달했음을 의미한다. 아약스는 이 시즌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에서도 30승 3무 1패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득점원이 다양했던 점도 아약스가 우승으로 가는 길에 큰 도움이 됐다. 이 시즌 아약스는 아홉 경기에서 총 다섯 명이 골맛을 봤다. 크루이프 외에도 결정적 순간에 뭔가를 보여줄 선수들이 수두룩했다는 뜻이다. 마지막 우승 원동력은 역시나 크루이프다. 크루이프는 대회 풀타임을 뛰면서 다섯 골을 터뜨려 득점왕에 올랐고, 특히나 결승전에서 두 골을 뽑아내며 영웅으로 등극했다. 크루이프는 유럽에서 오랜 시간 빛을 냈지만, 가장 화려했던 한 시즌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1971-1972시즌이지 싶다. 그라운드의 지휘관이자 토털 풋볼의 중심, 그리고 해결사, 그게 바로 요한 크루이프였다.


UNFORGETTABLE PLAYERS

아약스가 워낙 밝은 빛을 내 타 팀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았다. 그럼에도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은 더러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아스널의 레이 케네디다. 아스널은 8강에서 아약스를 만나는 바람에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없었지만, 케네디는 홀로 고군분투하며 아스널의 자존심을 지켰다. 아약스전에서 유일한 아스널의 득점을 담당했던 존재도 케네디였다. 케네디는 1971-1972시즌 유로피언컵에서 네 골을 터뜨리며 득점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아스널에서 다섯 시즌 동안 213경기를 소화하며 71골을 넣었던 케네디는 훗날 뜻밖에도 리버풀로 이적한다. 아스널 레전드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과감한 도전을 택했던 그다. 결론적으로 케네디의 선택은 옳았다. 아스널의 핵심 선수를 빼온 리버풀은 케네디를 포함해 환상의 스쿼드를 꾸렸고,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잉글랜드와 유럽의 왕좌에 군림했다. 케네디는 유럽 트로피를 얻지 못하던 아스널에서와 달리, 리버풀 이적 후 세 번이나 유로피언컵 정상을 차지했다.

글=조남기 기자(jonamu@soccerbest11.co.kr)
사진=ⓒgettyImages/게티이미지코리아(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UEFA·구글 캡처
그래픽=박꽃송이·김주희(www.besteleven.com)

축구 미디어 국가대표 - 베스트 일레븐 & 베스트 일레븐 닷컴
저작권자 ⓒ(주)베스트 일레븐.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www.besteleven.com

Copyright © 베스트일레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